“카프카와 헤세가 애독했던 작가 로베르트 발저”
미지의 ‘나’를 찾아가는 고독한 산책
삶의 단면들
스위스의 작가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 1878~1956)는 평생 고독 속에 칩거했다. 현존 작가 마르틴 발저(M. Walser)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인들 중에 가장 깊이 은둔했던 시인’이다. 로베르트 발저에게 운명적 친화성을 느꼈던 소설가 제발트(Sebald)는 발저의 인생행로에 남은 흔적이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가볍다’고도 했다. 문학사에 자신의 이름이 남기를 바라는 작가는 흔히 작품 외에도 자신의 행적에 관해 소상한 기록을 남긴다. 단적인 예로 괴테의 경우 방대한 일기와 편지 등을 남겨서 거의 평생에 걸쳐 하루하루의 행적까지도 추적이 가능하다. 반면에 발저에겐 극소수의 가까운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 외에는 그런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 『발저가 발저에 관해』(1925)라는 산문에서 발저는 ‘나는 주목받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발저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노출을 꺼렸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의 인생경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굴절되어 나타난다. 여기서는 우선 발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직간접으로 참고가 될 만한 전기적 사실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발저는 몰락한 중산층 집안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파리에서 인쇄기술을 배워 와서 고향 도시 빌에서 소규모 제본소 겸 문구류 가게를 운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발저는 김나지움 예비과정(우리식의 중학교)에 다니던 14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때부터 20대 초반까지 발저는 은행의 사무보조원, 보험회사 경리사원 등으로 일했는데, 한 곳에 오래 눌러 있지 못하고 자주 직장을 옮겼다. 이러한 직장생활의 경험은 이 책의 4부에 수록된 『사무원』, 『오전 근무』, 『뷔블리』, 『게르머』, 『헬블링의 이야기』 등에서 밀도 있게 다루어진다.
발저의 성장기에서 특기할 사실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을 앓아서 집안의 근심거리였고, 발저보다 네 살 위의 누나 리자(1874~1944)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일찍부터 주부 역할을 대신했다. 발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아마 한 번도 진지한 사랑의 모험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저가 20대 중반부터 평생 가까운 ‘지인’으로 교제했던 프리다 메르메(1877~1969) 부인과의 관계를 보면 그가 세상을 꺼렸던 만큼이나 여성도 거의 결벽증으로 대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정신병원에서 보낸 28년
발저는 생의 마지막 28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1929년 그는 불면증과 환청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다가 발다우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발다우 병원에서 4년을 보내고서 1933년에는 본인 의사에 반하여 헤리자우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다. 발다우 병원에 머물던 기간에는 집필활동을 계속했지만, 헤리자우 병원에 들어간 후로는 완전히 절필했다. 종신 강제수용을 해야 할 정도로 그의 정신분열증이 심각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아마도 가족의 병력이 분열증 확진 판정과 강제수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베른대학교 지리인류학 교수였던 둘째 형 알프렛 발저(1870~1919)는 자살했다. 그리고 교사로 재직하던 넷째 형 에른스트 발저(1873~1916) 또한 정신병 진단을 받고 18년 동안 발다우 병원에 수용되었다가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헤리자우 병원에서 발저는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오후에는 채소를 다듬거나 봉투를 접거나 청소를 하는 등 규칙적인 의무노동을 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독서나 산책을 했다. 특히 산책은 발저에게 평생 몸에 배인 습관으로, 그의 거의 모든 글에는 산책의 리듬이 바탕에 깔려 있다. 발저는 전설적인 도보여행의 기록을 남겼다. 20대에 잠시 슈투트가르트에서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다시 스위스로 귀향할 때는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서 갔다고 한다. 또 베른에서 제네바까지 170킬로미터를 걸어가기도 했고, 베른에서 빌까지 25킬로미터를 자정부터 이른 아침까지 한밤중에 걸어가기도 했다. 요양원에서도 산책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한겨울에 눈이 오는 날씨에도 외투도 없이 산책을 했다고 한다.
1956년 12월 25일 성탄절 오후에 발저는 눈길에 산책을 나갔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크리스마스 이야기』(1919)에서 눈길에 누워서 영영 잠들고 싶다고 했던 대로 그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1937년 6월 27일 대화에서 발저는 자신의 작품을 비판하는 평론가들이 모두 헤르만 헤세에 열광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역설적이게도 헤세는 발저의 작품을 늘 높이 평가했고, 발저가 받은 유일한 문학상을 주선했던 장본인이다. 헤세는 ‘발저의 독자가 1만 명만 되면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발저의 산문과 단편의 특징
발저는 서른 살 전후에 세 편의 장편소설-『타너 가의 남매들』(1906), 『조수』(1908), 『야콥 폰 군텐』(1909)-을 발표한 것 말고는 주로 산문과 단편소설을 썼다. 작가적 이력을 회고한 글 『나의 노력』(1928/29)에서 그는 장편소설을 포기한 이유를 ‘장황한 서사의 얼개를 짜는 일이 짜증나서’라고 밝히고 있다. 나날의 생계를 걱정하느라 긴 호흡으로 장편에 매달릴 여유가 없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발저의 산문은 주로 취리히, 베른,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 프라하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되었다. 특히 프라하에서는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죽기 전에 남긴 유언에서 자신의 미발표 원고를 모두 불태워 없애라고 했는데, 그 유언을 어기고 카프카 사후에 그의 원고를 보존하여 출판한 장본인이 바로 막스 브로트다.)가 발저를 위해 지속적으로 지면을 할애해주었다. 다른 생계수단이 없었던 19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짧은 산문과 단편 원고료가 유일한 수입원이었는데, 1926년에는 무려 60여 편을 발표하여 거의 매주 1편씩을 썼던 셈이다. 그렇게 생시에 발표한 산문과 단편이 모두 1천여 편에 이르며, 유고로 남은 미발표 원고도 5백 편이 넘는다.
발저의 산문은 대개 화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지만, 전통적인 이야기 장르의 근간이 되는 특이한 사건이나 플롯은 최소한으로 축소된다. 발저의 산문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자전적 성격과 허구적 요소가 결합된 양상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산문은 ‘자전적 허구’(Autofiction)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발저의 산문은 시각적 특성이 강하다. 산과 호수의 나라 스위스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매일 그 풍경 속을 거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라이펜 호수』, 『은둔자의 오두막』, 『저녁 산책』 같은 글을 보면 발저에겐 자연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가 처음 발표한 산문 『그라이펜 호수』는 발저의 산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연묘사의 원형을 보여준다. 하늘과 태양이 호수에 비쳐 호수와 하나가 된 풍경 속에서 오리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고, 화자인 ‘나’도 호수에 풍덩 뛰어들어 오리처럼 헤엄친다. 화자가 자연의 일부로 변신하는 과정, 그리고 그 온몸의 느낌을 서술하는 이 텍스트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 자신이 곧 텍스트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런즉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내가 처음부터 다시 말하더라도 지금과 똑같이 말할 것이다.” 더 이상 언어로 형용될 수 없는 언어도단의 유일무이한 체험이 곧 자연과 하나가 되고 내 몸이 텍스트로 탄생하는 과정이다.
발저가 ‘언어 속에 잠재하는 미지의 생기’를 드러내는 서술기법 중 하나는 서로 무관하거나 대비되거나 대립되는 사물이나 이미지를 하나의 장면으로 병치시키는 방식이다. 예컨대 『세상의 끝』에서 무작정 ‘세상의 끝’에 다다르기 위해 16년 동안이나 방랑하는 소녀는 ‘세상의 끝’을 이렇게 상상한다.
세상의 끝이 처음에는 높은 성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깊은 낭떠러지, 때로는 아름다운 푸른 초원, 때로는 호수, 때로는 반점이 수놓인 수건, 때로는 냄비 에 가득 담은 걸쭉한 죽, 때로는 맑은 허공, 때로는 온통 하얗게 펼쳐진 설원, 때로는 출렁이는 바다처럼 마냥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황홀경, 때로는 우중충한 잿빛의 길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또는 안타깝게도 하느님도 모르는 그 무엇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의 끝’을 ‘높은 성벽’이나 ‘깊은 낭떠러지’로 이해하면 그것은 엄청난 장애나 절체절명의 위기가 된다. 반대로 ‘세상의 끝‘을 ‘아름다운 푸른 초원’이나 ‘바다처럼 출렁이는 황홀경’으로 떠올리면 ‘세상의 끝’은 궁극의 안식처와 통하는 어떤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이 대극적 이미지가 어떻게 동시에 ‘세상의 끝’을 가리킬 수 있을까? 우리의 인생에서 그 둘은 상극으로 경험되지만, 발저는 양자가 공존할 가능성은 없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의미가 선명한 이런 이미지들과 ‘반점이 수놓인 수건’이나 ‘냄비에 가득 담은 걸쭉한 죽’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 ‘수건’이나 ‘죽’은 ‘하느님도 모르는 그 무엇’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누구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러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발저는 우리의 타성적 사고와 지각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삶의 진경과 세상의 이치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