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마찌꼬바'의 재발견...도시 제조업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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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2.20. 오후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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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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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심한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도시센터 선임연구원 [허환주 기자]
 
냉면집이 하나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재개발 사업을 중단시켰다. 을지로에 있는 을지면옥 이야기다. 서울시는 지난 1월 23일, 을지면옥 등 서울 세운상가 일대 노포(老鋪)들을 강제 철거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 전통'의 을지면옥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판이 쏟아지자 내린 결정이다. 

서울시는 을지면옥이 속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을 올해 말까지 중단하고 합의점을 찾는다는 계획이다. 물론, 서울시가 단순히 냉면집 하나 살리자고 재개발 사업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그간 시민단체들은 이 지역에 상존하는 공구상가의 보존을 지속해서 요구해왔다. 서울시는 토지주, 상인, 시민사회단체, 전문가와 협의를 거친 뒤, 도심전통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 사업은 1,2년 사이에 진행된 게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인 시기에 계획이 세워졌고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그리고 2009년 세운상가 철거와 주변 8개 구역 대규모 통합개발을 뼈대로 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했다. 세운 2·3·4·5구역 모두 약 3만3000㎡ 규모의 통합개발안이 통과된 셈이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사업 성격은 조금 달라졌다. 소상공인 생존권 위협, 옛 도시 조직 훼손 등 비판이 제기되자 2014년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했다. 세운상가는 보존하고, 주변 지역은 통합개발이 아닌 171개 구역으로 쪼개서 개발하기로 했다. 

결론만 말하면 전면개발 사업에서 세운상가를 살리느냐 이마저도 없애느냐가 박 시장과 오 시장간 차별점인 셈이다. 무엇이 됐든 결국 을지로 일대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오피스 건물과 오피스텔, 그리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이 연말까지 제동이 걸리면서 여러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 개발론자들은 토지주 권리를 행정이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개발반대론자들은 을지로의 역사적 가치와 이곳에 있는 공구상가 상인들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쟁점과 대립은 그간 서울 도심 재개발 현장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 사회의 법은 소유권 중심으로 체계화 돼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용산참사도 이러한 논쟁 속에서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심한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도시센터 선임연구원이 이번 사안을 두고 도심 내 전통적인 재개발 분쟁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혹은 제안)을 내놓았다. 도심 내 제조업의 역할론이다. 그간 잊고 있던 이른바 '마찌꼬바'(일본어 町工場, 작은 공장을 의미하며, 건설업, 언론계 등이 그러하듯, 일본에서 들어온 단어가 그대로 고착화 돼 '속어'처럼 사용되고 있다)들에 관한 이야기다. 

도시 내 제조업 공장은 많은 물건을 만들어낸다. 식당의 맞춤형 조리 기구, 특수 냉장고부터, 실용적 인테리어 작품이나, 특별한 건축 자제까지. 우리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시제품'이 아닌 '발명품'들이 이 공장들에서 나온다. 서울에서 그런 작은 제조업 공장들이 몰려 있는 곳 중 하나가 을지로 일대다. 우리가 잊고 있던 '도시 제조업'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서울 곳곳에서도 '마찌꼬바'들은 변신 중이다. 젊은 '발명가'들이 자생해 공방을 만들고, 나이 든 '베테랑'들의 작업장에선 끊임없이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이런 곳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작품들은 자영업자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도시의 모습에도 끊임없이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심 연구원은 영국 런던을 예로 들었다. 세계적인 금융도시이지만 그곳의 구도심에도 제조업 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심 연구원은 "사람들이 모이는 도심에는 각종 노하우, 지식, 그리고 새로운 수요에 대한 정보가 함께 모이기 마련"이라며 "그 속에서 도심 내 제조업은 시대에 맞춰 변화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도심 내 제조업의 역할론을 언급했다. 

아래는 심 연구원과의 인터뷰 전문. 

▲ 을지로 공구가게. ⓒ프레시안(허환주)

"서울 내 제조업은 조선시대부터 있어왔다"

프레시안 : 서울 내에 제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주 잊는 듯하다. 지금은 사라졌거나 쇠락했으나 여전히 존재한다. 세운상가를 필두로 하는 을지로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은 4대문 안 노른자 땅이다. 여기에 대한 의미를 짚는 게 필요할 듯하다. 을지로 지역에 공구상 등 제조업은 언제 들어왔는가. 

심한별 : 역사학자들이 훨씬 잘 아시겠지만 나는 도심, 특히 서울에 제조업이 들어온 시기는 조선시대라고 생각한다. 당시 운종가(현 종로) 시전에서는 대궐과 관공서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납품했다. 육의전도 이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들 물품을 만들려면 재료가 필요하지 않겠나. 요즘처럼 거대규모 산업단지가 있어 재료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상업과 제조업은 하나의 사업에서 구분되지 않거나 공간적으로도 이웃했다. 수도인 한양에 대궐과 관공서가 있고 그에 따른 제조업이 존재하는 흐름이다. 그때부터 도심 내 제조업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을지로, 즉 세운상가 쪽에는 왜 공구상가들이 형성됐나.  

심한별 : 이는 한 가지만이 아니라 몇 가지 단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이후의 이야기도 있지만 을지로 일대가 지금 모습으로 형성된 것은 1968년 세운상가가 세워진 이후부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여기에 공구상인과 공인(工人)들이 모였는가'이다. 그런 활동(공구상)이 필요로 하는 무엇인가가 여기에 있기에 관련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됐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심한별 : 을지로 일대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도심, 즉 중심지였다. 나는 그러한 중심지, 즉 도심이 주는 혜택이 단지 물리적 접근성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보접근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심한별 : 물건을 살 사람, 팔 사람, 그리고 다른 물건의 동향, 새로운 기술... 이런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정보접근성이다. 또한 기술자의 경우는 처음부터 자기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일반적이다. 관련업종의 사람과 만나면서 점차 숙련과정을 거친 뒤, 자기 기술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가 제공하는 여러 요인이 작용해 경제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을 도시가 만들어내는 지식과 정보중심성(접근성)이라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런 관점에서 을지로 공구상가 일대는 정보접근성이 강한 듯하다. 

심한별 : 도심 내 특정 업종이 모여 있으면서 이 기능이 더 강화됐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렇게 모인 게, 사실 그런 정보접근성도 있겠지만, 도시 내 다른 지역보다 적은 비용으로 이곳을 들어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을 듯하다. 

심한별 : 아마 을지로 일대는 서울에서 재개발 지구 지정이 제일 먼저 된 곳일 것이다. 재개발 제도도 여러 번 바뀌어 연원을 따지면 한도 없지만, 개념상으로는 전후 복구 때부터 재개발 구상이 나온 곳이 이곳이다. 1966년 서울시 계획문서에도 이곳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돼 있다. 도심재개발 사업 즉,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주는 낙후된 건물에 굳이 돈을 쓸 필요성을 못 느낀다. 토지주는 재개발이 되기만 하면, 이 사람들이 없어지고 다른 것이 생기리라 생각하기에 그대로 내버려 둔 거다. 그게 지난 몇십 년간 이어져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낙후되고 불편한 공간이 더욱 악화됐고, 공구상인들은 그에 따라 도심이지만 비교적 싼 가격에 여기를 쓸 수 있었다. 

프레시안 : 사실 이쪽 일대를 가보면 알겠지만, 건물이나 도로가 매우 낙후돼 있다. 좁은 골목길은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다. 

심한별 : 그것 때문에 이곳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가 낙후됐다고 생각한다. 좋지 않은 환경, 그리고 낙후된 시설이기에 이곳에서 진행되는 작업도 구식일 거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심한별 : 환경이 노후하면, 그 안에서 진행되는 작업도 함께 묶어서 '노후하다', '낙후됐다'. '영세하다'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인식인 듯하다.  

프레시안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서 봐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심한별 : 그런 인식은 '4차 산업이 진행되는 이 시대에 대장간에서 주물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런 식으로 연결된다. 

"도심 경제활동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정책적 질문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하드와 소프트를 분리해서 바라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을지로 일대는 매우 지저분하고 건물도 낙후된 게 사실이다. 개발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심한별 : 나 역시도 그런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네트워크가 형성된 제조업 공간이 반드시 도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존에 형성된 네트워크 공간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연결생태계가 어디론가 가려면 개별 주체들은 물론, 거래하는 이도 모두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이동에는 각각 이동비용도 맞아야 하고, 다른 거래처도 다 맞춰야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각 의사결정을 해서 한 장소로 간다는 건 특별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프레시안 : 재개발을 하면, 세입자에게 임대주택을 주는 제도도 있다. 이곳도 그런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심한별 : 이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구로공구상가가 그랬고 가든파이브, 용산전자상가가 그랬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설사 그렇게 이전했다 해도 연결망이 복원될지는 미지수다. 

프레시안 :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보자. 아까 도심 내에 대장간을 두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고 했다. 을지로 공구상가를 두고 두 가지 문제제기가 나오는 듯하다. 하나는 이들이 서울 도심에 굳이 있어야 하냐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대장간 같은, 즉 공구상들의 기술이 4차 산업 시대에 여전히 유의미하냐는 것이다. 첫 번째 지적부터 이야기해보자. 

심한별 : 그 지적이 타당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한쪽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반대로 '제조업 말고 어떤 업종이 들어와야 하는가'라고 묻고 싶다. 전통적인 학문에서도, 정책에서도 고차산업인 금융, 서비스업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것으로 도시를 다 채우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프레시안 : 철거 후 을지로 일대에는 오피스 건물, 오피스텔,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개발자들은 도시에 주택이 너무 부족하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 중심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기에 주택을 많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반영해서 서비스업으로 오피스를 짓고, 아파트로 주택을 늘리고 있다. 그렇게 도심의 기능을 거주의 기능으로 바라본다면 도심 곳곳을 다 채울 수 있을 듯하다. 이를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심한별 :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을지로가 있는 중구는 거주인구가 줄고, 대신 상주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여기서 공구상가를 운영하는 이들은 서울시에 거주하지 않는 이도 많다. '도심에 주거공간을 공급한다'는 논리는 '된다', '안 된다'의 차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얼마만큼 할 것이냐. 그리고 기존 경제활동은 얼마만큼 어떻게 바뀔 것인지 전망하고, 그 공간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과 맞물려서 이야기해야 한다. 주거가 필요한 게 맞다. 그렇다면 되묻는 건, 장기적으로 도심을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띄울 것인가? 

프레시안 : 그렇게 개발해서 주택을 지으면,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의 원론적인 문제도 남는다. 그곳에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 땅에 투자했던 투기꾼과 개발업체가 이익을 가져간다. 주택을 만드는 것까지 동의한다 해도, 천문학적인 이익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구조는 항상 논란이 되는 듯하다.

심한별 : 전통적으로 비판되는 지점이다. 아주 근원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문제도 있지만 더해서 도심 경제활동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조업도 사람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떤 욕구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정보가 흘러야 창조적인 개발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 접근기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제조업이 도심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허환주)

"우리가 아는 제조업은 이전 제조업과 이미 다르다"

프레시안 : 두 번째 지적이었는데, 4차 산업 시대에 '대장간이 존재해야 하느냐'는 지적이다. 공구상가의 기술은 이미 후진 기술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제조업 기술이 지금 시대에 필요하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심한별 : 그 질문도 타당하다. 새 기술이 나오는데, 공구상가만 낙후돼 있다는 프레임이 있다. 하지만 이를 비틀어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자. 기술이 발전한다고 우리가 먹는 것을 안 먹는가. 우리는 우리 일상을 구성하는 것을 중국에서 싸게 들여오면 되지 않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역을 통한 생필품 보급은 매우 단순화된 모델이다. 사실 우리 농업을 버리고 베트남에서 쌀을 수입해오면 된다. 그게 더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식량안보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전체 경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가지는 안정성 문제가 존재한다. 공구상가도 우리 제조업의 근간을 떠받드는 안정 요인이다. 또 한 가지는, 제조업이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점차 바뀐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어떤 의미인가.

심한별 : 전통적으로 제조업은 공해가 많이 나고, 쇳물을 붓고 기계를 깎고, 의류와 가구 등을 만드는 거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조업에서는 이런 것도 제조업인가 싶은 게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소위 문화경제, 즉 문화가 이끄는 경제다. 예를 들어 기자로 일하다 은퇴 후, 글을 쓴다고 하면, 자기가 쓰기 편하게 디자인된 원고지와 펜을 특별하게 주문한다. 이러한 원고지와 펜은 수요에 맞는 맞춤형 제조다. 그렇게 특정 문화, 현상에 맞춰 제조업이 진행될 수 있다. 단순히 획일화된, 표준화된 제조업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생산품의 다양성, 품질, 디자인 등에는 사회적 기호가 담기게 마련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기호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제조업의 시대가 된다. 그리고 그런 기호에 즉각 반응하는 게 도심 내에 있는 제조업이다. 

프레시안 : 대기업에서는 유입인구가 많은 지역 내지 거리에 안테나숍을 차린다. 그래서 이를 통해 대중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를 자사 상품에 반영하는 식이다. 

심한별 : 전통적인 제조업이라고 하면 물건만 찍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고 있다. 서비스업이라고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예전 제조업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게 현재의 제조업이다.

프레시안 : 이는 4차 산업으로 풀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심한별 : 그런 기술의 변화가 제조업에 열어준 가능성은 오히려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젊은 장인의 경우, 기술의 변화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의 폭을 더욱 넓혀줄 것이다. 

프레시안 : 제조업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일반인들은 제조업은 쇠락하는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신(新)산업을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근간인 제조업을 4차 산업 시대에 맞춰, 대중이 원하는 맞춤형으로 나아가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리고 이를 위한 키워드는 도시에 있다는 건가.

심한별 : 왜냐하면 도시에 정보가 있으니깐. 대기업도 똑같다. 본사는 다른 곳에 있다 해도, 정보가 흘러가는 곳에는 출장소를 둔다. 모든 경제활동에서 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보가 모이고 흘러 다니는 곳이 도시다. 

▲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프레시안(허환주)

"서울은 엔터테인먼트의 공간이 됐다"

프레시안 : 을지로 논란을 보면서 새삼 10년 전 용산참사 때와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심한별 : 공공(정부 등)에서 이를 캐어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를테면 도심재개발을 하기 전, 그 지역 조사를 한다. 하지만 이는 자산조사를 하는 차원이다. 실제 경제활동이나, 네트워크가 어떻게 연결돼 있고, 일자리가 몇 개 있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누군지 등은 조사하지 않는다. 시행사가 이런 조사를 하겠나. 안 한다. 그렇기에 공공에서 이런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도 그런 준비는 안 돼 있다. 법으로 지정도 안 된 일을 왜 공공에서 하겠나. 

프레시안 : 그렇게 세세하게 개발 지역 내 네트워크를 조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심한별 : 그래야 도심 전체의 중장기 도시계획이 만들어질 수 있다. 구역 내 어떤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는지 파악을 해야 이를 옮길지, 그대로 둘지, 적어도 누구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자료조차 없기에 전면 철거를 하는 식이다. 자연히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도 함께 사라지는 거다. 

프레시안 : 서울시에서는 을지로 같은 경우, 세운상가는 살리고 나머지는 밀어버리는 식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문제가 많다. 세운상가에 들어온 젊은 스타트업 사장들은 인근 공구상가에 존재하는 네트워크를 보고 이곳에 들어왔는데, 정작 공구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심한별 : 그동안 네트워크 등을 조사하는 절차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똑같이 진행되는 셈이다. 지금의 도심부 관리계획에는 역사문화보존이라는 당위적인 지향이 있다. 그런 공간을 중심으로, 즉 보존을 지향하면서도 도심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있기에, 산업이나 경제 측면은 부차적인 문제가 됐다.

프레시안 : 서울은 제조업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는 어려운 듯하다. 정확히 서울은 서비스업의 도시 아닌가. 

심한별 : 어떤 면에서 서울 도심은 이미 엔터테인먼트의 공간이다. 외국 사람들은 물론, 국내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놀러오고 구경하고 맛있는 거 먹고 축제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사실 그래서 대다수가 생산공간이라고 보지 않는 게 현실이다. 

프레시안 : 앞으로도 서울이 그렇게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간다면 문제가 생기나.

심한별 : 경제가 탄탄하면 문제가 없지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런 산업은 휘발성이 강하다. 경제가 어려우면 여행과 문화생활을 줄이지 않나. 금융회사도 사라진다. 그러면 도심 내 사무실 공실이 늘어난다. 결과는 뻔하지 않나. 다양성과 균형이 중요한데 그러지 못할 때 드러나는 문제다. 

프레시안 : 조선업 불황으로 조선업으로 먹고사는 울산과 거제 지역의 경제가 초토화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심한별 : 의학에서 쓰이는 용어가 항상성이다. 지역에 따라서 성장 전략을 써야 하는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안정성을 만들어놓고 성장정책을 펼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가 묻고 싶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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