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다움’ 강조한 민주원 폭로… ‘미투’ 2차 가해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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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2.21. 오후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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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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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인 민주원씨가 자신의 남편과 김지은씨가 주고 받은 메시지를 근거로 “이들은 연애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공개한 메시지와 주장은 2심 재판부도 꼼꼼히 검토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안 전 지사의 강제추행을 무죄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협박이나 강요만을 위력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위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판결을 냈다. 안 전 지사는 법정구속 상태다.

민씨는 20일 밤 자신의 SNS에 “나의 일관된 주장이 왜 배척 당했는지 궁금하다. 재판에서 사실이 충분하게 검토됐는지 다시 묻고 싶다”며 “안희정씨와 김지은씨에 의해 뭉개져 버린 여성이자 아내로서의 내 인격이 항소심에서 다시 짓밟혔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 명예를 되찾기 위해 다시 글을 올린다”며 “김지은씨의 거짓말이 법정에서 사실로 인정되는 것만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안 전 지사와 김씨가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2017년 9월 스위스 출장지에서 세번째 성폭행이 있던 날로, 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경 이야기다. 안 전 지사가 “자니?”라고 묻자 김씨가 “안 잔다”고 답했다. 이어 “(내 방에) 올래?”라고 묻자 김씨가 “자다가 깨셨느냐”고 되묻는다. 이후 안 전 지사의 방에서 성관계가 있었다. 민씨는 “이 문자를 처음 보았을 때 치가 떨렸다”며 “두 사람은 연애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민씨는 안 전 지사의 메시지에 김씨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침실로 뛰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지은씨가 바로 슬립만 입고 맨발로 안희정씨의 객실로 왔다고 한다. 물론 김지은씨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며 “무슨 옷을 입고 갔는지, 무슨 신발을 신고 갔는지 묻는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며 아무 대답도 못했다고 한다. 다른 건 다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성폭행을 당할 때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을 못할 수 있느냐. 그런 사람 진술을 왜 무조건 믿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Only yes means yes (예스만이 예스를 의미한다)

설령 민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슬립을 입고 방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에서 행해진 성관계가 성폭행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성관계에 있어서 노(No)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노를 의미한다. 예스(Yes)라고 말하지 않은 경우 역시 노를 의미한다. 오로지 예스만이 예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도 이른 바 ‘노 민스 노(No Means No)’ 룰 입법이 속도를 내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 8월 22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내용의 형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경우 부동의 의사를 표명했는데도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 처벌할 수 있다.

김씨 진술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스위스 출장 당시 자신의 호텔방에서 간음을 시도했다. 김씨는 최대한의 방어로 “아니오,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 전 지사가 재차 간음을 시도해 무기력해진 상태였다고 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21일 “‘슬립, 맨발, 연애, 서로 사귀었다’ 등 피고인의 주장을 피고인 배우자가 그대로 하고 있다”며 “출장 중에 타국에서 모두가 머무는 숙소에서 속옷차림으로 긴 복도를 걸어갔다? 피고인의 판타지를 피고인 배우자가 확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는 “당시 상황에서 이뤄진 구체적 행동이나 말, 특히 이전과 달리 강하게 저항했다고 생각하는 부분, 간음 이후 김씨가 가진 생각이나 감정 등에 관해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진술할 수 없는 세부적인 사항까지 묘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밖의 쟁점들

김씨는 스위스 출장지에서 귀국한 후 안 전 지사에게 “ㅋㅋㅋㅋㅋ 그래도 스위스 다녀오고서는 그나마 덜... 피곤해 하시는 것 같아요. 릴렉스와 생각할 시간을 많이 드린 것 같아서 뿌듯해요~~ 정말 고생많으셨어요ㅜㅜ” “넹 ㅎㅎㅎㅎ > . <”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민씨는 “세 번째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그 가해자를 릴렉스시켜드려서 뿌듯하고 즐겁다는 문자를 보냈다”며 “이래놓고 상대를 성폭행범으로 고소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민씨의 주장들은 1심 재판부의 가장 큰 오류로 지적됐던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정색한 표정으로 얼굴에 ‘나 피 해 자 야’라고 쓰고 살아야 했다고 사후적으로 요구한다면 어떤 성폭력 피해자도 구제 받지 못한다”며 “피해자가 맞다면 그 자리에서 술병이라도 들어서 저항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강변했다.

재판부 역시 “피해자가 이모티콘 등을 사용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 없이 습관인 것을 고려하면 애교섞인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수행비서로서의 일을 수행한 이상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그런 행동(친근한 메시지)을 했다고 해서 성범죄 피해자로 도저히 볼 수 없다거나 피해자 주장의 신빙성을 배척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가 스위스에서 벌어진 성관계를 성폭행으로 본 데는 김씨와 안 전 지사의 지인인 구모씨의 진술이 한몫을 했다. 김씨는 성폭행 피해 직후 한국에 있는 구씨에게 전화로 피해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했다.

구씨는 “피해자로부터 지속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피해자로부터 해외 출장 당시 힘들어 울 것 같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후 안 전 지사가 피해자와의 성관계를 인정했다. 성관계가 있었다면 합의된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민씨는 또 “김씨가 안 전 지사를 남자로 좋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의 지인 성모씨는 “그렇다기보다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팬심이나 존경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반박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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