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48> 경주 남산 칠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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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99호로 지정된 경주 남산 신선암마애보살 반가상이 한 손에 꽃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해주기 위해 금방이라도 연꽃 보좌를 내려 설듯 한 발을 내리고 앉아있다.


경주 남산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산이다. 산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남산은 불교에 관심이 없어도 선조들이 돌과 바위를 쪼고 두들겨서 만든 조각품이나 부처의 형상들이 곳곳마다 널려 있어 산을 밟고 가는 것이 미안할 정도다. 남산 삼릉 지역이나 용장골, 절골, 탑골 등 어디를 가나 소박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한 부처 형상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산과 길과 문화재들이 잘 조화된 남산은 등산인이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순례길과 같은 느낌을 안고 길을 가게 된다.

남산에는 숱한 탐방로가 개발되어 있다.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아름답고 의미를 담고 있는 문화재 탐방 길이 될 것이다. 동남쪽 지역의 칠불암 가는 문화유적 길을 택하여 오르고 통일전 쪽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잡았다. 승용차를 이용해 남산동 공용 주차장이나 염불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산불 감시초소에 이름을 기재하고 산에 입문한다. 남산은 소나무가 깃대종을 구성하고 있어 멋대로 자란 솔숲 사잇길이 운치를 더해 준다. 수령이 오래된 삼릉 옆 솔숲에 비해 중후한 멋은 없지만, 소나무들 생김새가 예사롭지가 않다. 여기는 재선충의 피해가 없는 곳인가보다. 초록색 비닐을 둘러쓴 무더기들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재선충도 피해가는가 보다.

통일전~문화유적길 거쳐 원점 회귀

칠불암 마당 올라서면 탁 트인 조망

사찰 위 신선암에 새긴 보살 반가상

하산길 동쪽 아래엔 금오신화 용장사

주차장 옆 ‘까마귀 설화 서출지’ 볼 만

길은 그렇게 가파르지도 않고 평탄하지도 않은 오르막이 걷기에 딱 알맞다. 둘이서 손잡고 가도 될 정도로 넉넉한 품을 지니고 있다. 산행객들이 많이 붐벼서인지 산길은 반들거리고 정비가 잘되어 있다. 국립공원이라서 그럴까? 평탄한 길이 약간 가팔라지면서 잎 떨어진 나무 사이로 요사채가 보이고 요사채 바로 옆 계곡에 샘터가 있었다. 목을 타고 내리는 시원함이 등줄기에 밴 땀을 식혀 준다. 그 서늘함이 가져다주는 상쾌함을 글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사찰 내에는 식수가 없기에 부족한 물을 이 샘물로 채워야 한다. 요사채 옆으로 난 길을 오르면 시누대가 양쪽에서 자라나 아취 형태로 서로 맞닿아 있어 대숲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고 칠불암의 일주문 역할을 하고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 시누대 숲을 통과하면 시야가 탁 트이는 조망을 안고 있는 칠불암 마당에 서게 된다. 1시간 만에 칠불암에 도착하였다. 사면에 부처를 새긴 바위 뒤 벼랑 바위에는 세 부처가 새겨져 있다. 국보 312호인 경주남산 칠불암 마애석불군은 도합 일곱 분의 부처를 새긴 곳이어서 칠불암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시원한 조망과 선조들의 장인 솜씨를 충분히 감상하면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떠나면 아쉬움이 크게 남을 것 같아서다.

그렇더라도 길을 재촉하여 부처가 새겨진 바위 앞을 지나 사찰의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면 덱 계단길로 잘 정비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평탄한 안부 갈림길에서 이정표에 따라서 왼쪽으로 가는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길 끝에 이르면 바위 벼랑 끝에 선다. 그곳 왼편 벼랑 바위에 새겨진 부드럽고 예쁜 보살 반가상을 만날 수 있다. 보물 199호로 지정된 경주 남산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이다. 오른손에는 꽃을 들고 있고 구름 보좌 위 연좌대에 반가부좌를 틀고 있다가 누구에겐가 꽃을 전해 주기 위해서인 듯 발을 풀어 연꽃 좌대 밖으로 마악 내딛고 있는 형상이다.

칠불암 암자로 들어서기 직전 일주문을 대신해 오솔길이 대나무 숲 사이로 나있다.


경주 남산에 새겨진 마애불들은 대개 입술이 루즈를 바른 듯 발그레한 빛을 띠고 있다. 이 보살 반가상도 입술이 발그레하여 입맛을 당기게 한다. 화장을 하고 꽃을 든 여인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 행복하다. 이 보살상은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 구름 위 연좌대에서 세파 속으로 발을 내딛고 있는 찰나인가보다. 여기서도 칠불암과 마찬가지로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몰려온다. 향내 나는 멋진 보살 곁에서 멀리까지 내려다보이는 들녘을 언제까지나 눈길 마주하며 바라다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떠나야 한다. 길의 생리다. 아쉬운 마음을 끌어안고 능선 위에 올라서서 간단한 요깃거리로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고위봉 쪽 방향으로 가다가 만나는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첫 번째 봉우리에서 칠불암과 원경을 조망한 뒤 돌아서서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 금오봉 방향으로 걸었다. 능선길은 양옆으로 트인 전망이 볼만하다. 혹시나 잘생긴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가져본다. 남산에 있는 돌들은 죄다 속에다 부처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눈 밝은 석공이 돌 속에 숨어 있는 부처를 찾아내어 정과 끌로 파내어 세상에 부처를 드러내 보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 속에 숨은 숱한 부처들이 아직도 남산 곳곳에 널려 있으며 아직 용한 석공을 만나지 못해 드러나지 못했을 뿐이란 생각이 든다. 남산의 길을 가다 보면 그 생각이 앞서가며 유심히 바위를 살펴보게 된다.

이영재까지는 한 번의 오르막 이후 계속 내리막이다. 이영재까지 한 시간 가량 걸렸다. 그곳에는 통일전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지 않다. 5분쯤 더 가면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남산 횡단길이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하던 용장사는 금오봉 아래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까마귀 설화를 안고 있는 서출지는 동쪽 아래에 있다. 그러고 보니 남산에는 유난히 까마귀가 많이 날고 있다는 생각이다. 금오봉 가는 걸 포기하고 길을 따라 하산한다. 하산길 양옆 숲에는 쓰러진 나무들이 숱하다. 쓰러진 나무냐 넘어진 나무냐 아니면 누운 나무냐에 대한 생각들이 밀려온다. 평생을 서서 몸을 지탱해 오지 않았던가. 이제 누워서 편안한 쉼도 가져봄직도 하다.

회화나무가 길 위에 누웠다

그에게 숨결이 떨어져 나가듯 이제

이름이 필요 없게 되었다

돌아가서 그냥 보통명사가 편한

누운나무가 그의 이름이다

사람들이 보통명사를 밟고 넘어간다

지워진 나무가 길이 되었다

누운나무 생각으로 내려오다 보니 남산동 주민들이 이용하는 약수터가 나왔다. 시원한 약수로 몸을 식히고 조금 더 걸으니 길의 초입이 나타나고 남산동 마을이다. 마을 길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면 통일전 주차장이 나오고 서출지는 그 곁에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서출지는 오래된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쥐와 까마귀가 등장하고 서출지에서 편지가 나와 왕을 살렸다는 신화다. 조명시설을 잘해 놓아서 연꽃 피는 7월의 밤이면 몰려든 연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한다. 연못을 빙 둘러 심어 놓은 나무백일홍이 꽃을 피우면 연꽃과 푸른 연잎이 어우러져 사랑을 고백하지 않고는 떠나지 못할 마법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서출지 옆에는 맛집으로 소문 난 추어탕집이 있어 산행의 허기를 달래기에도 좋다.

죽어서도 길을 찾는 나무는

발길질에 닳아 빛나는 길이 되고

생전 가져보지 못한 잠을 잤다

길이 만든 잠은 고요하고 고요하다

비가 올 때면 젖지 않는 발을 위해

몸이 젖어 숱한 발을 받들고 다시

돌아올 빛나는 흙이 되어 갔다

우린 언제 나무처럼 자신을 비워내고 해탈한 모습으로 누울 수가 있을까? 욕심덩어리인 나를 버리고 산과 하나가 되든가 길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하는 조급한 마음이 길을 서둘러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강영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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