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취중고백, 일제강점기 ‘한일전 우승’ 엄복동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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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왕 엄복동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개봉을 앞두고, 주연배우 비의 “엄복동 하나만 기억해달라”는 취중고백에 엄복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 자전거왕 엄복동

1920년대 조선에서는 ‘하늘에는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안창남은 조선인 최초의 비행사, 엄복동은 자전거 왕으로 불린 유명한 자전거 선수다. 1892년 아버지 엄선량과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엄복동은 국권 상실의 암울한 시대에 운동경기를 통해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준 인물이었다.

◆ 일본 선수를 이기다

엄복동이 자전거 선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13년부터다. 엄복동 선수가 처음 우승한 대회는 1913년 3월 10일 조치원(현재 세종시 소재)에서 열린 ‘육군기념제 자전거경주연합대회’이고, 유명해진 것은 같은 해 4월 13일 서울 용산에서 열린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부터다.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주최로 개최된 이 대회에는 조선 선수들뿐 아니라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도 유명 선수들이 참가했다.

자전차왕 엄복동


일본에서는 모두 일곱 명의 선수가 왔는데 경기 이틀 전에 대회를 주최한 신문사들이 이들을 자동차에 태우고 시내를 일주하며 떠들썩하게 환영식을 열었다. 서울에 있는 일본 상점들은 일본 선수들을 적극 후원했다. 신문들은 이 대회가 “조선인과 일본인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우리도 조선인 선수들을 후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조선인 선수가 진다면 그것은 ‘민족의 대수치’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4월 13일 열린 대회는 대성황을 이뤘다. 시민들의 발길이 남대문에서 용산 연병장까지 길게 이어졌고, 관중이 10만 명 이상 몰렸다. 경기는 선수 등급별로 열렸는데 최고 선수들이 달리는 일류 선수 경기에는 조선인 중에서 엄복동, 황수복 선수가 출전하고 일본인 선수도 네 명이 출전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엄복동 선수는 처음부터 일본 선수를 앞질렀다. 일본 선수들이 추격했지만 엄복동 선수는 이들을 모두 앞섰으며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엄복동은 운동장을 스무 바퀴 도는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등도 조선인 황수복 선수가 차지해 경기는 조선 선수들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관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했다.

엄복동은 이날 서울 대회에서 우승한 뒤 4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그해 11월 2일 서울 동대문 훈련원에서 열린 ‘추계 자전거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연전연승했고 사람들은 그를 ‘자전거 왕’이라고 불렀다.

◆ 엄복동의 은퇴 이후

자전차왕 엄복동


엄복동은 1929년 체력 저하를 이유로 사실상 현역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이후 그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선수 시절 적지 않은 상금과 상품을 탔던 엄복동은 광복 후에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 경기 모습이 담긴 사진을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6·25 전쟁 발발 이후 그의 종적은 묘연했다. 경기 동두천 부근 야산에서 폭격을 당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엄복동’을 둘러싼 논란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언론 등 시사회를 통해 미리 공개된 뒤 주인공 엄복동에 대한 논란으로 잡음이 일었다. 대회 우승을 휩쓸던 시기와 달리 1920년대 후반 엄복동이 자전거 수십 대를 훔쳐 팔았다가 감옥에 갔다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1926년 엄복동은 자전거를 훔쳐 원산항을 통해 밀수출하려다 적발돼 1년간 감옥 신세를 졌다. 그는 광복 이후인 1950년 3월에도 자전거를 훔치려다 적발된 적이 있다. 김유성 감독은 엄복동에 대한 논란이 일자 “시나리오를 쓸 때는 몰랐고 취재 도중에 알았다”며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민족적 울분을 털어준 성장 이야기로 봐달라”고 호소했다.

비 인스타그램


◆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앞서 25일 새벽 주연배우 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술 한 잔 마셨습니다. 영화가 잘 안 돼도 좋습니다. 하지만 ‘엄복동’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영화가 별로일 수도 있습니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연기했습니다”라고 적었다. 몇몇 네티즌들은 비의 취중 고백에 “영화가 얼마나 재미가 없었으면 개봉도 하기 전에 주연이 이런 글을 적느냐”는 댓글을 남겼다. 비의 글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졌다.

논란이 일자 비는 ‘자전차왕 엄복동’ 영화 포스터와 함께 “엄복동 하나만 기억해달라고 진심을 다해 전한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연기했다”며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다. 그만큼 영화가 재밌다”고 글을 수정했다. 일제강점기 전조선자전차대회에서 일본 최고의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엄복동의 일대기를 담은 ‘자전차왕 엄복동’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이현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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