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월 ‘제3공화국’ 방영 직전
이영신 작가 주선 시내 일식점에서
김성진 전 문공부 장관 등 20여명
박근영 앞에 무릎 꿇은 전 상공장관
“공주님! 늦어서…죽을죄 졌습니다”
술잔 도는 중 박지만의 도발적 질문
“왜 누나에게 ‘박근영씨’라 하시죠?”
‘인간 박정희’부터 26부작 방영 시작
‘다큐 방식’ 80명 섭외해 50명 등장
장도영 미국 은둔 30년만에 첫 인터뷰
“부인 이름 ‘백형숙’ 기억한 덕분에…”
우리나라는 고귀한 피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이뤘다. 그 과정을 드라마로 엮어가고 있다. ‘동북아에서 떳떳하고 일관되게 평화와 민주를 얘기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는 없다. 다른 나라들이 이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핵 문제 해법과 꾸준한 동력이 나온다.’ <제1공화국>에서 정치드라마의 문을 열었고 <제2공화국>에서는 정치드라마의 완성도를 꾀했다. <제3공화국>은 ‘군인들의 세계’를 관통하여 ‘군사문화 병영으로의 회귀 저지’가 첫 목표이다. 지금도 촛불의 물결 뒤에서 쿠데타와 계엄령이 암약하는 오늘의 ‘군사문화’를 척결해야 한다. 아울러 ‘역사민주시대’이며 ‘역사소비시대’에 맞는 방송 문법이 나와야 한다.
‘박정희가의 사람들’을 만났다. <제3공화국> 방송이 임박한 그해 1월말 즈음, 이영신 작가와 함께 만나러 간 그곳은 서울 도심에 잘 차려진 일식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10·26 때 ‘박정희 유고’를 발표하던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이 첫눈에 보인다. 그때보다 좀 여윈 듯하지만 근엄했다. 초청자로 식탁 맨 앞에 앉아 있고 20여명이 죽 자리했다. 상석에 둘째 딸 박근영(박근령), 그 옆에 외아들 박지만도 앉아 있다. 우리는 그 맞은편 자리에 안내되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둘을 소개하자, 두 사람은 앉은 상태에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방바닥을 파서 발을 뻗게 하는 일식점의 구조로 보아 일어서기가 좀 불편했을 것이다. 둘이 떡하니 앉아서 손을 내밀고 우리는 구부려 인사드리는, 그 모양새는 어색했지만, 그러나 밝고 반갑게 맞이하였다. 의례적인 날씨 이야기부터 오갔다.
박정희는 18살에 첫 아내 김호남과 결혼한다. 두 사람의 딸 박재옥은 증언한다. “중매로 하신 거죠. 부모님 강요에… 신혼, 결혼 생활은 없었다고 봐야죠.” 박정희는 부관 한병기를 박재옥과 맺어주며 아버지 노릇을 다했다.
박정희는 초등학교 교사 시절 총독의 삭발령에 항의하며 연회석의 술상을 엎어버렸다. 정작 70년대 장발 단속령을 선포하는 박정희. “어떻게 시대 상황에 순응할 것인가. 왜왕의 개가 되든 돼지가 되든… 만주에 가겠다.” 1940년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고,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42년 4월 일본 육사에 들어간다. 박정희는 일본 군복을 입고 해방을 맞는다. 1년 남짓 무위도식하고 있었다. 46년 9월24일, 조선경비대 2기로 들어가 8연대의 원용덕에게 신고한다. 그때 박정희는 이대 출신의 원산 여자 ‘미쓰 리’에게 매혹을 느끼고 동거에 들어간다. 그 뒤 ‘여순사건’은 박정희를 사상논쟁의 핵심부에 빠져들게 한다. 김안일·백선엽의 ‘숙군작업’에 동조, 황태성·이재복 등 남로당 관련자들을 고발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동족간의 비극을 가져올 것을 통감한다”며 수많은 명단을 내밀었다. 그 공로로 풀려난다.
‘다큐’의 핵은 증언이다. 기획 때 후보로 선정된 인물은 100명 정도, 섭외를 마친 인물이 80명, 인터뷰를 딴 인물이 60명, 방송에 등장한 인물이 50명이다. 한두명을 빼면 대체적으로 ‘반박정희’ 정서다. 박재옥·한병기를 필두로 김점곤 권상하 최영택 이영근 석정선 선우종원 황용주 최영희 박영옥 김재춘 박치옥 윤길중 김용식 한태연, 일본과 미국에서 시마모토 겐조, 나카소네, 최서면, 마셜 그린, 하우스먼 그리고 장도영.
장도영: 6·25 때 내가 박정희를 살렸다. 백선엽에게 조직 명단을 제공, 남로당계를 발본색원하였고, 남로당 활동 사실을 조사 과정에서 다 밝혀 목숨을 건졌다.
(해설: 육참총장 장도영은 5·16 때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장도영: 여수에서 일어난 반란 때, 경장비로 포병부대를 제압했는데 그때 몇년이 걸렸으며 몇십만이 피해를 보았는가?
(해설: 5·16 그날, 귀하는 국민 배신행위를 저지른 것 아닌가?)
장도영: 난 그것밖에 들은 게 없어요.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다’.
(해설: 그때 이한림의 1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참모총장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장도영: 1군사령관이 군단장에게 다시 사단장에게 전화했다고 합시다. 출동해서 서울까지 오는 데 몇시간 걸릴까요? 만일 군사 동원해서 다시 돌아온다 해도 그때로서는 민주공화국으로 돌아오기 힘들어요. 그러나… 이것이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볼 때… 커다란 죄를 범한 거다.(통렬한 참회의 눈빛이다.)
마셜 그린: 이한림 1군사령관에게 서울을 포위하자 했다. 윤보선은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미국대사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학생운동권도 아무 반응이 없고, 야권 지도자도 침묵했다. 모두들 두려워 내 성명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그의 이런 한국 인식은 오랜 시간 한-미 관계를 냉각시켰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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