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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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그 역사
  • 저자
    리영희
  • 출판
    열화당
  • 발행
    2008.01.01.
책 소개
1988년 으로 출간한 책을 서대문 형무소 개소 백 주년을 맞아 판형을 확대, 일제시대 도면과 자료사진을 추가하고 서대문 형무소에 관한 글 세 편을 더해 개정증보판을 냈다. 초판 당시 조선일보 사진기자였던 김동현·민경원이 촬영한 93컷의 사진은 서대문 형무소의 바깥 풍경에서 형무소 생활의 흔적이 묻어 있는 옥사(屋舍)와 감방, 취사장, 목욕탕까지, 단 한순간에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사형장에서 수감자들의 낙서가 새겨진 감방 벽까지를 구석구석 비추고 있어, 지금은 허물어지고 일부만 남은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증언한다. 사라져 버린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일제 때의 자료사진과 도면, 유관순·강우규·안창호의 수형기록표 등 30컷의 자료 도판들로 높은 기록성의 가치를 지니며, 우리나라 감옥사의 한 단면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책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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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테고리
    사진작가/사진집
  • 쪽수/무게/크기
    1670g148*210*0mm
  • ISBN
    9788930102827

책 소개

1988년 으로 출간한 책을 서대문 형무소 개소 백 주년을 맞아 판형을 확대, 일제시대 도면과 자료사진을 추가하고 서대문 형무소에 관한 글 세 편을 더해 개정증보판을 냈다.



초판 당시 조선일보 사진기자였던 김동현·민경원이 촬영한 93컷의 사진은 서대문 형무소의 바깥 풍경에서 형무소 생활의 흔적이 묻어 있는 옥사(屋舍)와 감방, 취사장, 목욕탕까지, 단 한순간에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사형장에서 수감자들의 낙서가 새겨진 감방 벽까지를 구석구석 비추고 있어, 지금은 허물어지고 일부만 남은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증언한다.



사라져 버린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일제 때의 자료사진과 도면, 유관순·강우규·안창호의 수형기록표 등 30컷의 자료 도판들로 높은 기록성의 가치를 지니며, 우리나라 감옥사의 한 단면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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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민족사의 모순과 역설의 현장



"현저동(峴底洞) 101번지, 이름갈이를 여러 번 했으면서도 우리의 뇌리에 끝내 서대문형무소로 박혀 버릴 수밖에 없는, 근대적 시설을 갖춘 한국 최초의 감옥. 그러기에 당연히 감옥의 대명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 서대문형무소는 암울했던 우리의 현대사를 증언해 주는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요, 바로 민족저항사와 민족수난사 그리고 민주화의 열망이 농도 짙게 집약된 곳이기도 하다." ―나명순, 「서대문형무소 소사」 중에서



근대적인 시설을 갖춘 한국 최초의 감옥, 서대문형무소. 1908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을 사진과 글로 조명해 보는 기록성 높은 책 『서대문형무소』를 선보인다.

1905년의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형정권(刑政權)까지 강탈한 일제는 감방의 태부족을 느끼고 무악재 고개 밑, 서대문 밖 인왕산(仁王山) 기슭 금계산(金鷄山) 자락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신식 감옥을 짓는다. 1907년 간수 출신의 일본인 시텐노 가즈마(四天王數馬) 설계, 대한제국 탁지부(度支部) 시공으로 착공하여 이듬해 "경성감옥(京城監獄)"이란 이름으로 개소(開所)한 이래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특히 1919년 삼일운동 이후에는 천육백아흔두 명이 한꺼번에 입감되어 형무소 수용인원이 삼천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해방과 육이오를 거치고 1960년 사일구 의거 직후에는 정치인, 군장성, 정치깡패 등이 수감되었고, 1961년 오일륙 쿠데타 직후에는 반혁명사건 연루자들이 대거 투옥되었으며, 이후 19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거쳐갔으니, 서대문형무소는 우리 근현대사의 그늘진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민족사의 모순과 역설의 현장이라 할 수 있겠다. 1908년 현저동 101번지에서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이래, "서대문감옥"(1912-1922), "서대문형무소"(1923-1949), "서울형무소"(1950-1960), "서울교도소"(1961-1966), "서울구치소"(1967-1987) 등 격변하는 시대를 따라 그 이름도 숱하게 바뀌어 온 이곳은, 가장 오랜 기간 불렸던 이름 탓인지 작가 나명순의 말처럼 "우리의 뇌리에 끝내 서대문형무소로 박혀 버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풍부하고 다각적인 기록



"당신은 혹시 길이 여덟 자, 너비 넉 자 크기의 관 속에 들어가 누워 본 일이 있습니까? …여름이면 낮에도 컴컴한 이 관 속 방바닥에서 '식사'라는 것을 차려 놓고 먹을라치면, 막힘이 없이 통해 있는 변소의 구멍에서 누런 구더기떼가 줄줄이 기어 나와 더불어 생존하기를 요구합니다. …시체를 넣는 관이 아니라, 지난 세월, 비인간적인 독재정권 아래서 수천, 수만의 청치수, 사상수, 양심수, 확신수 들이 처넣어져서 신음해야 했던 이 나라의 교도소와 형무소의 감방, 독방의 모습입니다. …이 관은 21세기를 바라보는 세계 문명사회의 가려진 치부입니다."―리영희, 「서대문형무소의 기억」 중에서



이 책은, 1987년 경기도 의왕으로 옮겨 간 직후 그 자리에 남은 서대문형무소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글을 묶어 1988년 <열화당 사진문고 23?>으로 펴낸 바 있다. 그리고 꼭 스무 해가 흐른 오늘, 서대문형무소 개소 백 주년을 맞아 판형을 확대하고 일제시대 도면과 자료사진을 추가했으며, 백범 김구 선생, 시인이자 소설가인 심훈 선생, 독립운동가 김정련 선생이 쓴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글 세 편을 더해 개정증보판으로 다시금 선보인다.

초판 당시 조선일보 사진기자였던 김동현.민경원이 촬영한 93컷의 사진은 서대문형무소의 바깥 풍경에서 형무소 생활의 흔적이 묻어 있는 옥사(屋舍)와 감방, 취사장, 목욕탕까지, 단 한순간에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사형장에서 수감자들의 낙서가 새겨진 감방 벽까지를 구석구석 비추고 있어, 지금은 허물어지고 일부만 남은 이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증언한다. 소위 "반공법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세 차례나 투옥되었던 언론인 리영희의 「서대문형무소의 기억」은 감옥에서의 생활상을 사진만큼이나 상세하게 그리고 있으며, 자료사진.도면과 함께 읽는 작가 나명순의 「서대문형무소 소사(小史)」에서는 서대문형무소에 얽힌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함께 그 파란만장한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있다.

1911년 "안악사건"으로 투옥된 김구(金九) 선생은 『백범일지(白凡逸志)』에 서대문형무소에서의 일상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그 중 발췌한 글 「나의 옥중생활」을 통해 일제시대 당시 감방의 모습과 일본인 간수들의 횡포, 애국지사들이 겪었던 고통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은,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 삼일운동에 가담하여 검거 투옥된 심훈(沈熏) 선생이 어머니께 쓴 편지글로, 감방 동료의 죽음을 지켜본 후 극한의 고통 속에서 오히려 굳건해지는 민족정신을 이야기한다. 1930년 일본 총독부 우편차를 습격해 징역 구 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독립운동가 김정련(金正連) 선생의 「형무소의 도산(島山) 선생」은, 당시 형무소에 수감된 동지들끼리 주고받던 암호인 <타벽통보법>을 도산 안창호(安昌浩) 선생에게 가르쳐 주려다 발각될 뻔하여 곤욕을 치렀던 사건을 그리고 있어, 서대문형무소가 민족 탄압의 장소인 동시에 해방운동의 방안이 모색된 장소였음을 알게 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서대문형무소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일제 때의 자료사진과 도면, 그리고 유관순?강우규.안창호의 수형기록표 등 30컷의 자료 도판들로 인해 더욱 높은 기록성을 갖게 되었으며,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감옥사의 한 단면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우리 근현대사의 깊은 상처를 간직한 음지, 한국의 바스티유



"숱한 민족의 수난사를 이젠 안으로만 간직한 채, 서대문시대 그 칠십구 년의 역사를 마감한 서대문형무소. <l한국의 바스티유>로 불리기도 하다가 이제는 퇴역한 서울구치소, 아니 서대문형무소는 그러나 오늘, 아직은 철문에 빗장을 지르고 텅 빈 채로 침묵에 싸여 얼룩진 벽돌담과 감시탑만으로 말없이 오가는 시민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나명순, 「서대문형무소 소사」 중에서



암울했던 일제시대, 군사독재정권 시절과 더불어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서대문형무소는, 1987년 11월 경기도 의왕의 신축 건물로 이전함으로써 다사다난했던 서대문시대의 막을 내렸고, 이 서대문시대 79년 동안 줄잡아 35만여 명이 이곳에 어떤 형태로든 한을 묻었다. 일제 때부터 수많은 원(怨)과 한(恨)이 서려 온 서대문의 감옥 터는 이제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개관되어 현재까지 중앙사와 제9-13사, 한센병사 등 일곱 개의 건물과 사형장을 보존하면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수치스러운 것이든 명예로운 것이든, 역사란 그 민족이 보듬고 기억해야 할 무언가이다. 서대문형무소 100주년을 맞은 지금, 이 책을 다시 선보임으로써 우리 역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이 모순과 역설의 장소를 많은 이들과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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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대문형무소 개소 백 주년 기념 개정증보판에 부쳐
초판 서문

서대문형무소의 기억/리영희

Introduction
Secdaemun Prison:
A Testament to the Brutal History of Korea in the 20th Century

사진

서대문형무소 소사 1908-1987

부록
독립지사들의 기록으로 보는 서대문형무소
나의 옥중생활/김구
감옥에서 어머님께/심훈
형무소의 도산선생/김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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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글작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학자.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연방 교회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기 한 학기씩 공동연구에 종사하였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정식부교수로 초빙되어 'Peace and Conflict' 특별강좌를 맡아 강의하였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간경화로 투병, 2010년 12월 5일 영면했다.리영희의 글은 그가 겪어 온 역사적 사건들 속에 동시대의 통념을 뒤엎는 진실의 힘을 담고 있다.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고전적 계몽서로 평가받는 그의 저서들은, 중국관계·베트남전쟁·일본의 재등장 문제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내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저자의 육성으로 전하는,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기록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부딪혀야 했던 갈등과 번민, 고통의 순간을 솔직하고 가식 없이 담아낸 그의 체험이야기는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며,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지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 『베트남전쟁』(1985), 『역설의 변증』(1987), 『역정』(1988), 『自由人, 자유인』(1990),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화』(2005) 및 일본어로 번역된 평론집 『分斷民族の苦惱』(1985),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2000)이 있다. 편역·주해서로는 『8억인과의 대화』(1977), 『중국백서』(1982), 『10억인의 나라』(198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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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글작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학자.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연방 교회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기 한 학기씩 공동연구에 종사하였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정식부교수로 초빙되어 'Peace and Conflict' 특별강좌를 맡아 강의하였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간경화로 투병, 2010년 12월 5일 영면했다.리영희의 글은 그가 겪어 온 역사적 사건들 속에 동시대의 통념을 뒤엎는 진실의 힘을 담고 있다.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고전적 계몽서로 평가받는 그의 저서들은, 중국관계·베트남전쟁·일본의 재등장 문제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내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저자의 육성으로 전하는,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기록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부딪혀야 했던 갈등과 번민, 고통의 순간을 솔직하고 가식 없이 담아낸 그의 체험이야기는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며,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지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 『베트남전쟁』(1985), 『역설의 변증』(1987), 『역정』(1988), 『自由人, 자유인』(1990),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화』(2005) 및 일본어로 번역된 평론집 『分斷民族の苦惱』(1985),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2000)이 있다. 편역·주해서로는 『8억인과의 대화』(1977), 『중국백서』(1982), 『10억인의 나라』(198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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