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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열 재판장
비공개 조회수 3,223 작성일2017.10.21
박열 의사가 재판에서 재판장에게 "재판장 수고했네 내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은 어쩌겠는가"라는 말을 해서 재판장이 감동받아 그에게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가 파면당했다고 들었는데 왜 감동을받았는지 알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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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세르크
우주신
한국사 20위, 북한 동향, 정세 4위, 세계사 14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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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육신은 어찌해도 정신은 어쩌지 못한다라는 말은 기개를 나타내는 말인데, 재판장이 볼때에 누구나 주눅이 들만한 법정에서도 그렇게 의연한 말을 한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죠.


그래서 감복한 겁니다. 물론 일제시대 당시 그런 속내를 드러내놓으면 불이익을 받을텐데 그렇게 말한 판사도 대담하긴 하지만요.

201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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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maru
수호신
교육인 #강사 #복지관 한국사 12위, 한컴오피스 36위, MS워드 29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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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朴烈]

1919 18세의 나이로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했다. 이후 흑도회, 흑우회 등을 조직해 항일 사상단체를 이끌었다. 1923 4월에는 불령사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으며, 그해 9월 연인 가네코 후미코(金子 文子)의 협조를 얻어 일왕 암살을 시도하려 했다가 발각되면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선생은 검찰에 기소된 이후, 1923 10 24일부터 1925 6 6일까지 총 21회에 걸친 신문조사를 받았다. 조사과정에서 그는 일왕을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구입하려 했다고 당당히 밝혔다. 특히 그는 공판에 앞서 재판장에게 죄인취급하지 말 것과 동등한 좌석을 설치할 것, 조선 관복을 입을 것, 조선어 사용 등 4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일본사법부가 그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임에 따라 그는 조선 전통관복을 입고 출두해 반말투로 답변하는, 초유의 법정투쟁을 벌인 것이다. 나아가 미리 써 두었던 음모론 나의 선언’. ‘불령선인이 일본 권자계급에게 준다' 등의 글을 읽으며 일왕의 죄를 폭로하였다.

일본정부는 1926 3월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1주일만에 특별 감형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스스로 조작사건의 실체를 드러내 준 꼴이 아닐 수 없다. 사형판결 후에 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 하였고, 부인 가네코 후미코는 사면장을 갈갈이 찢어 버렸다.

이러한 두 사람의 저항의지에 대해 일본 재판장까지도 감동하여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가 파면 당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사형선고 1개월 전에 혼인서를 제출함으로써 영원히 삶과 죽음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불행한 세기의 연인은 각각 치바(千葉)형무소와 도치키(栃木)형무소로 옮겨짐에 따라 눈물의 이별을 해야 했다. 가네코는 옥중에서 자신의 가혹한 삶과 자유사상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책자에 고스란히 담아 출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열 [朴烈]

201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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