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51] 광야(曠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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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참아 그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즈런한 계절(季節)이 피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1904~1944)



그림자 길게 늘이고 선 한 뜻 있는 청년을 그려 봅니다. 광활한 저 만주 벌판 끝 보이지 않는 한 모퉁이, 연암(燕巖) 선생이 사내로서 울기 좋다고 한 그 호곡장(好哭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이 청년을 서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마음 복판에 징소리처럼 울리는 그 '뜻'은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봅니다.

까마득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청년은 한갓 티끌과 다를 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한번 양(陽)하고 한번 음(陰)한 것이 도(道)임을 모를 리 없는 이 고고한 정신은 '광야'와 '산맥'과 '강물'을 가로질러 오는 '눈 나리'는 속의 '매화향기'를 호흡합니다. 그리고 가슴 깊이 새깁니다. '천고의 뒤'를 기약할 노래입니다. 제 생애가 곧 '광야'가 되는 순간입니다.

'3월 1일 함성' 백 주년입니다. 제 이득에 눈먼 좀스러운 논쟁들 다 치우고 여기 '초인'이나 한번 간절하게 불러보는 것은 어떠한지요.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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