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센세이션 일으킨 ‘음식강산’의 저자 식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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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27   |  발행일 2014-06-27 제41면   |  수정 2014-06-27
“난 매일 古문헌과 전쟁을 벌인다, 대한민국 음식의 原籍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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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 구석 자리에서 숨어 있는 한식 관련 자료를 뒤지는 것이 일상이 된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씨. 그는 중구난방인 각종 한식의 정확한 원류를 밝혀 한식의 세계화에 일조하고 싶어한다. 그가 서울 을지로 3가의 한 호프집에서 노가리를 안주로 호프를 마시며 집필 구상을 하고 있다.

한국에는 적잖은 ‘나그네 식객’이 있다.

멀게는 최초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부터 거론할 수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음식칼럼니스트로 분류된다. 그가 1611년 지은 ‘도문대작’(屠門大嚼·푸줏간 앞을 지나가면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 실제로 먹지는 못하고 먹고 싶어서 먹는 흉내만을 내는 것으로 자족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에는 전국의 특산품과 명산지에 관한 정보가 있다. 물론 허균이 직접 강산유람하듯이 그 음식을 먹고 다닌 소감을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적었다. 그의 아버지 초당 허엽도 미식가. 강릉 경포대 근처로 유배됐을 때 평소 좋아하던 두부를 먹고 싶은 나머지 경포대 해수로 연두부를 해먹었는데 이게 훗날 강릉의 명물 ‘초당 순두부’가 된다.

나그네 식객은 일명 ‘푸드스토리텔러(Foodstoryteller)’.

유전자가 남달라야 한다. 풍류와 한량스러움이 묻어 있고 거기에 인문학적 안목, 그걸 대중적으로 삭혀낼 줄 알아야 된다. ‘팔자’여야지, 노력해선 식객의 경지를 얻기 어렵다.


◆ 프롤로그…음식칼럼니스트

한국 음식칼럼니스트의 신지평을 연 두 사람이 있다.

백파 홍성유와 김순경씨(74)다.

2002년에 작고한 백파는 1987년 전국 각지의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한 ‘한국 맛있는 집 999점’에 이어 99년 ‘한국 맛있는 집 1234점’을 발간했다.

김씨는 84년 월간 자동차생활 창간호부터 두각을 드러낸다. 90년대에는 한국일보, 국민일보, 두산 사보 ‘백년 이웃’ 등에 연재를 시작, ‘길따라 맛따라’ ‘길과 맛’을 자신의 고유 브랜드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이어서 주간지 한겨레21의 ‘음식이야기’에 8년, 월간조선에 ‘별미여행’을 5년, 연합뉴스(YTN) 르페르에 7년, 요리전문지 쿠켄에 한식이야기를 5년 실었다. 저서로는 우리맛 101가지, 한국의 음식명가 1300, 이맛을 대대로 전하게하라, 한국인이 사랑하는 내고향 최고의 맛집, 자랑스런 한식진미 100집 등 10여권이 있다. ‘한국의 음식명가 1300’은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화제를 모았다. 2011년부터 매월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떠나고 있다.

음식칼럼니스트와 대립각을 세우는 한 종족이 있다. ‘맛칼럼니스트’이다.

국내에선 황광해·황교익·박찬일씨가 3인방이다.

서울 뒷골목 식당 족보를 훤히 꿰고 있는 황광해씨는 80년대 경향신문에 있으면서 전국 바캉스 부록을 만들 때 전국을 누비면서 맛집기행기를 적었다. 황교익씨는 농민신문 기자 출신으로 전국 농산물의 원산지적 지식을 갖고 한식의 바른꼴을 탐구해나가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악식가의 미식일기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박찬일씨는 잡지기자였다가 99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요리학교 ICIF를 수료하고 귀국해 청담동 ‘뚜또베네’, 신사동 가로수길 ‘논나 ’ 등을 성공시켰다. 셋은 주요 일간지는 물론 음식 전문 방송 초대손님 1순위로 급부상했다.


◆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음식강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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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출간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식의 원류를 탐구한 박정배의 ‘음식강산’.

지난해 발간돼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음식 전문 서적은 ‘음식강산’(한길사)이다.

한길사 발행인 김언호씨가 저자인 박정배씨(51)를 붙들고 한식이야기 시리즈물을 만들어보자고 간청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갔다. 그가 서울 지하철 3호선 을지로 3가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을지면옥으로 오라고 했다. 냉면을 먹고나자 근처 명물 호프집도 소개해주었다. 일명 ‘노가리 골목’에 있는 맥줏집 ‘만선호프’였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특성상 닫혀 있어야 될 호프집은 희한하게 낮술꾼으로 흘러넘쳤다. 왕노가리 한 마리(1천원)를 시키고 호프를 한 잔(3천원)씩 먹었다. 하루에 1천600~2천마리의 노가리가 팔린단다.

사실 지난해 그가 펴내 매우 주목을 받은 음식강산 때문에 적잖은 음식칼럼니스트가 긴장했다.

그는 특정 음식의 ‘원적(原籍)’을 찾아주는 데 청춘을 바치고 있다. 그의 한식에 대한 인문학적 정보력은 깊고 광범위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한민국에서 책과 자료를 가장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국회도서관으로 출근을 해서 자료와의 전쟁을 벌입니다. 주장은 디테일한 사실 위에서 빛을 발하죠.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자료를 찾아내야죠.”

한식 탐구의 첫 관문은 방대한 양의 조선왕조실록. 해석본이라고 하지만 고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제대로 익혀내지 못한다.


“주장은 디테일한 사실 뒷받침 돼야 빛 발해”
매일 아침 국회도서관行···수많은 자료와 한판 씨름

노가리 안주 시초는? 서울 을지로 3가 ‘노가리골목’


독립신문, 대한신보, 노걸대, 별건곤 등 조선조 고조리서와 인문지리서, 광복 직후부터 나온 신문, 잡지, 음식 관련 논문 등을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찾은 자료는 색인카드로 정리한다. 정말 지루한 절차였지만 그게 오늘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다.

그가 노가리골목의 족보를 대충 알려준다.

“왕노가리는 새끼 명태입니다. 처음 내놓은 건 을지로 3가 노가리 골목이죠. 만선호프, OB베어, 뮌헨호프 등 이곳에 몰려있는 맥줏집은 30여년 전부터 왕노가리를 냈습니다. 명태(明太)는 한국인이 예부터 두루 즐겨 먹은 생선답게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죠. 노가리, 애기태, 앵치는 명태 새끼를 말합니다. 크기에 따라 대태, 중태, 소태, 왜태(矮太·함경도 연안에서 잡히는 작은 명태)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잡히는 시기에 따라 일태, 이태, 삼태, 오태, 섣달받이, 춘태라고 부르기도 하죠.”

‘국민 생선’ 명태에 대한 최초 기록은 뭘까.

“음식계에서 정설로 여긴 기록은 1652년(조선 효종 3년) 10월8일 ‘승정원일기’에 등장한 명태 관련 내용인 ‘진상한 대구 알젓에 명태 알이 섞여 있다’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보다 앞선 기록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뒤집혀요. 현재까지 명태와 관련해 가장 오래된 기록은 함경도 회령에서 근무했던 무관(武官) 박계숙, 박취문 부자의 일기인 ‘부북일기(赴北日記)’에 나옵니다. 바로 ‘1645년(인조 23년) 4월20일 판관이 생대구 2마리, 생명태 5마리, 신삼어 5마리를 보내주었다’는 구절입니다.”


◆ 잘못된 음식사를 바로잡아라

그는 우리나라 음식 이야기가 너무 중구난방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음식에 관한 책의 내용이 학자, 요리전문가, 음식(혹은 맛집) 칼럼니스트마다 제각각입니다. 한마디로, 왜곡되고 과장된 식당들의 역사와 잘못된 음식 상식이 넘쳐납니다. 저는 그와 달리 옛 문헌과 자료를 면밀히 검토해 우리 음식의 기원과 뿌리를 촘촘히 재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카더라’ 정보 믿지 않아
방방곡곡 음식명가 방문, 확인·기록하고 사진 담아

1911년 창립 평양면옥조합···직계자손이 대구서 냉면집


‘카더라 정보’는 적지 않는다. 자연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 방방곡곡 음식명가의 실체를 확인하고 기록하고 사진을 찍는다. 덕분에 여러 가지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냉면과 관련해 1936년 평양상공회의소가 발간한 ‘평양상공명록’을 뒤져 ‘평양조선인면옥조합’이란 단체가 존재했고, 그 창립연도가 1911년임을 알아낸 것도 성과다. 남한은 물론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으로 기록이 남아 있으면서 아직도 창업자의 직계자손이 대구에서 직접 운영하는 ‘부산안면옥’의 역사에 대한 고증도 했다. 또한 21년 계삼탕, 37년 매일신보에 나온 막국수, 진주냉면에 대한 신동아의 기록도 찾아냈다. 6개월간 국가기록원을 뒤져 60년대 전기통닭의 기수인 ‘명동전기통닭’의 특허번호까지 찾아낼 정도로 근성이 집요하다.

음식강산은 만 2년에 걸친 그의 흥미진진한 음식 탐구 결과물이다.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1권)와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2권)는 어류와 해산물, 누구나 즐기는 국민 메뉴이자 축복의 음식인 국수를 소재로 다뤘다. 강원도 막국수편은 현지를 워낙 야무지게 답사하고 관련 문헌까지 제시해 현재로선 가장 객관적 글로 평가받는다.

육쪽마늘 산지로 유명한 경남 남해군 이동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마늘과 빼때기(날고구마를 납작하게 썰어 말린 것), 죽방멸치와 쥐치포를 입에 달고 살았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그의 천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1년 허균의 ‘도문대작’을 접하곤 음식탐구에 나선다. 그의 첫 직업은 다큐멘터리 PD. ‘다큐 서울’에서 일본 NHK ‘ASIA NOW’ 프로그램의 한국 담당 PD로 일하면서 푸드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일본 사케의 비밀을 캐내 ‘사케입문서’까지 펴낸다. SBS 개국프로그램 PD를 맡기도 했다. 이후엔 직원이 600여명이나 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대리사원으로 입사해 대표 자리에까지 성큼 올랐다. 첫 저서 ‘3000원으로 외식하기’(시공사)가 대중에 알려지면서 음식 칼럼니스트로 변신한다. KTX 매거진에 ‘박정배가 찾은 최고의 맛집’을, 음식잡지‘쿠켄’에 ‘박정배의 맛 따라 멋 따라 대한민국 음식지도’를 연재한다.

현재 조선일보에 음식이야기를 연재하며 음식강산 3·4·5권을 집필 중이다. 3권에선 돼지고기, 쇠고기 등 고기 이야기, 4권에선 비빔밥과 김치 등 한국음식의 원형, 5권에선 술과 음료의 세계를 소개할 계획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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