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술 종류 따라 궁합 맞는 글라스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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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7.11. 오전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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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스 두께 얇고 볼 넓어야 맛과 향 제대로 즐겨/에일 맥주 풍미 살리려면 식당 맥주잔 피해야 /테두리 뭉툭한 잔은 쓴맛과 알코올 강하게 느껴져

잘토 부르고뉴 글라스
‘살얼음 처럼 섬세한 리델 글라스에 루비를 녹인듯한 액체가 흘러 들어간다’.

아기 타다시의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 1권 첫페이지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누아 와인을 대표하는 최고급 와인 도멘 드라 로마네꽁띠(Domaine de la Romanee Conti)의 리시부르(Richebourg) 1990. 백가지 꽃향기를 모아 놓은 것 같다고 묘사되는 이 와인이 담긴 잔은 가장 볼이 넓은 리델(Riedel) 부르고뉴 잔이다. 저자가 ‘살얼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실제 이 잔은 입술을 베일듯 얇고 가볍다. 피노 누아는 왜 이렇게 얇고 볼이 넓은 잔 마셔야 하는 걸까.

리델 맥주 전용 글라스
#술마다 궁합 맞는 잔 따로 있다

회사에서 맥주 전문가로 통하는 ‘맥덕(맥주덕후)’ 박모(42)씨는 요즘 홉의 함량이 높은 인디언 페일 에일(IPA) 맥주에 푹 빠져있다. 그가 집에서 맥주를 즐길때 쓰는 잔은 일반 맥주 잔이 아니라 화이트 와인 잔. 박씨는 “식당에서 주로 쓰는 맥주 잔은 폭이 좁은데다 입에 닿는 테두리가 너무 두꺼워 혀 전체에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에 에일 맥주의 풍부한 풍미를 섬세하게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와인잔은 볼이 넓어 에일 맥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리델 코카콜라 잔
리델이 코카콜라 의뢰로 제작한 전용잔은 맥주의 맛과 향을 가장 표현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 콜라보다 맥주 잔으로 인기다. 허리가 잘록한 코카콜라 병을 모티브로 밑에는 잘록하게 만들고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디자인인데 맥주의 조밀한 버블을 오래 유지시키고 맥주 원료인 홉과 몰트외에도 꽃, 과일 등 일반 잔에서는 잘 못느끼는 숨겨진 향들을 이끌어 낸다. 1512년부터 역사가 시작된 독일 글라스 기업 슈피겔라우는 3년전 세계적인 유명 크래프트 브루어리들과 협업해 맥주 종류에 따라 최적의 아로마를 이끌어 낼수 있는 IPA, 밀맥주, 스타우트 전용 잔을 개발했는데 최근 수제 맥주 열풍으로 국내에서도 입맛 까다로운 맥덕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스피릿 글라스
30대를 중심으로 싱글몰트 위스키나 코냑을 즐기는 이들이 늘면서 스피릿(spirit·증류주) 전용잔도 인기다. 아래쪽은 넓지만 테두리(림·lim)는 좁아져 휘발성이 강한 향을 잔에 계속 잘 머무르게 만들기 때문에 특히 깊고 풍부한 향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위스키나 코냑 등은 알코올 도수가 40도가 넘는데 전용 잔의 림이 꽃봉오리처럼 바깥쪽으로 살짝 벌어져 혀에 부드럽게 전달한다. 또 무거운 알코올은 천천히 올라오고 향은 도드라지도록 볼을 길쭉하게 만든 것도 특징이다. 하이볼, 포트, 그라빠, 등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은 이런 잔에 마셔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와인잔 역시 마찬가지. 포도품종에 따라 볼의 크기나 모양이 다 다르다.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남성적인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볼이 넓으면서도 긴 편이고 꽃향 등을 지닌 피노누아는 볼이 가장 넓은 잔에 마셔야 산소와 접촉하면서 향이 빠르게 피어난다. 포도 품종이나 술의 종류에 따라 글라스가 달라지는 것은 혀의 미각세포가 특정한 맛을 느끼는 정도가 부위마다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부위에 먼저 닿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게 감지된다는 얘기다. 와인업계의 한 관계자는 “같은 와인이라도 잔에 따라 산도, 탄닌, 알코올의 균형과 아로마의 집중도가 달라져 전혀 다른 캐릭터를 전달하게 된다. 특히 두께가 얇을 수록 혀의 특정 부위에 정확하게 와인이 전달되지만 림이 두껍고 뭉툭한 잔에 마시면 혀 전체에 와인을 퍼뜨리면 유독 쓴맛과 알코올이 강하게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잘토 샴페인 글라스
#결코 포기 못하는 마력의 디자인

와인 잔은 기능적인 측면이 중요하지만 시각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와인 마니아 현모(37)씨는 ‘지구상에서 가장 얇고 가벼운 글라스’로 알려진 잘토(Zalto) 글라스 마니아다. 너무 얇아 잔을 세척하다 벌써 3개나 깨뜨렸지만 최근 새 잔을 구입했다. 현씨는 “잘토 부르고뉴 잔은 7만원대로 고가지만 한번 써본 이들은 디자인, 두께, 무게, 그립감에 홀딱 반한다. 볼 면적이 넓어 피노누아의 맛과 향을 제대로 표현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와인 맛을 더욱 좋게 느끼게 만드는 것 같다”며 엄치를 치켜 세웠다.

리델 레드타이 글라스
리델 파토마노(Fatto a Mano) 시리즈
1756년에 설립돼 2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리델은 와인 잔의 대명사다. 스템(다리)이 길쭉한 현재 와인 잔의 형태를 리델이 처음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와인의 특징을 가장 정확하게 입과 코에 전달할 수 있도록 품종별 와인 잔을 개발한 곳도 리델이다. 블랙타이와 레드타이 시리즈는 마치 와인이 스템에 흘러 내려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와인 마니아들에게는 ‘완소’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스팀에 그린, 옐로우 등 8가지 컬러를 넣은 수제품 파토마노(Fatto a Mano)도 선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지페라노 울트라 라이트
슈피겔라우의 아디나 프레스티지 라인
자페라노의 울트라 라이트는 꽃봉오리를 형상화한 아름답고 매끄러우면서 심플한 곡선이 여심을 저격한다. 자페라노 오너이자 이탈리아 무라노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 페데리코 드 마요(Federico de Majo)가 직접 디저인했는데 입으로 불어 만든 최고급 와인 잔으로 무게가 95∼105g에 불과하다.

슈피겔라우의 아디나 프레스티지 라인도 아름다운 곡선이 매혹적이다. 특히 잔 바닥을 날카롭게 깊게 파가 엣지있게 디자인한 점이 돋보인다. 이런 디자인은 샴페인 잔에에는 매우 이상적으로 날카롭고 깊게 팔수록 버블이 매우 잘 올라온다. 

일본 토요사사키 이온스트롱 파인크리스탈
#가성비와 내구성을 모두 원한다면

최근 기자가 찾은 한 와인 글라스 수입업체 대표는 인터뷰도중 잠시 뒤로 물러나달라고 요청한 뒤 1m 높이에서 와인 잔을 책상위에 떨어 뜨렸다. 하지만 깨지기는 커녕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일본 토요사사키가 강화 유리 이온스트롱 파인크리스탈(Ion-Strong Fine Crystal) 소재로 만든 와인 잔으로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두께도 얇고 디자인도 잘토를 연상케 하는데다 가격도 2∼3만원대여서 가정은 물론 레스토랑에서 쓰기 좋다.

자페라노 에스페리엔제(Esperienze)는 와인 잔 바닥에 물결처럼 원형으로 여러개 홈을 파 와인이 표면에 닿는 면적을 높였다. 와인이 더 빠르게 산소와 접촉해서 스월링 할때 더욱 짧은 시간에 맛과 향이

올라오도록한 점이 특징이다. 가격 역시 2∼3만원대로 기능과 가성비를 충족시킨다.
 
자페라노 에스페리엔제
#와인 글라스 관리법

와인 잔은 관리하기가 쉽지않다. 세척할때 깨뜨리기 쉽고 제대로 닦지 않으면 얼룩이 남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와인 잔을 세척할때는 세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세제는 기름 성분이 있어 세제를 사용하면 기름 성분과 잔향이 와인 잔에 남아 온전한 와인의 맛 즐기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특히 스파클링 잔의 경우 버플이 현저히 줄어든다. 따라서 립스틱 자국 등 때문에 부득이하게 세제를 사용할 경우 뜨거운 물로 여러차례 헹궈야 한다. 일반 세제보다는 거품양이 적은 식기 세척기 전용 세제를 권장한다.

와인을 마신 뒤 바로 닦을때는 찬물을 사용해도 쉽게 지워진다. 하지만 다음날 씻을 때는 따뜻한 물을 써야한다. 와인 잔 내부 표면에 달라붙은 와인 찌거기가 찬물로는 잘 안닦인다.

세척 후에는 극세사 린넨으로 물기를 바로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자국이 남아서 세척을 안한 것 처럼 보인다. 맨손으로 하면 손자국이 묻기때문에 장갑을 끼면 훨씬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 뜨거운 김을 쐬며 닦으면 광이 잘 난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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