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안마사의 피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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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문화부 jebo@imaeil.com]

초(楚)나라 항우와 한(漢)나라 유방이 천하를 두고 다투던 때, 항우에게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끼던 장수 범증 마저 떠나 버리고 결국 유방에게 쫓겨 동쪽으로 도망가던 도중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명장 한신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 음악이 들려왔다(사면초가, 四面楚歌). 사기가 죽은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게 하는 구슬픈 노래와 피리소리였다. 한 나라가 심리전으로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에게 고향 음악을 연주하게 한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면서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은고?" 하고 탄식했다. 항우는 800기의 잔병을 이끌고 오강(烏江)까지 도망갔다가 결국 건너지 못하고 그 곳에서 자결하고 마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한다.

"비 오면 하루 벌이로/ 한 끼를 때운다는 장님 안마사가 젖은 지폐를 헤아릴 때/ 누군가 지붕에 올라 깨진 피리를 불고 있었다." (고정국, 밤에 우는 것들에 대하여.)

구멍이 8개뿐인 피리는 인간의 마음에 80개의 구멍을 뚫는다. 누구는 죽게 만들고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게 만든다. 우리 동네에 밤마다 피리를 불며 나타나는 시각장애 안마사가 있었다. 그는 매일 밤 신천동 판자 집을 나와 동신교를 건너 시내로 돈벌이 하러 온다고 했다. 동인국민학교, 2군사령부를 지나 동인동, 삼덕동 부자촌에 오면 손님이 있다. 때로는 중앙통을 건너 향촌동에 가면 술꾼들이나 술집 여급들이 그의 손님이 되기도 한다.

밤에 시각장애자가 길을 다니는 걸 보면 조마조마하다. 게다가 검은 안경까지 끼고 다니니 남의 조바심은 더해진다. 맑은 겨울 별 밤하늘을 맴도는 피리소리는 남의 애간장을 다 태운다. 차라리 이탈리아 시각장애자처럼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 북이나 치고 다녔으면 마음이 편했을 것을….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인 '관현맹'과 나라를 위해 기도드리는 스님인 '맹승 제도'가 있었다. 스페인에서도 복권판매의 전매권을 시각장애인 단체에 주었고 일제 강점기 때도 안마는 의료법으로 시각장애인에게만 자격을 주었다. 복지는 힘든 이에게 더 많이 돌아가야 되는데 우리는 융통성 없는 헌법재판소 판사가 안마사 자격증을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위헌이란 판결을 내려 장애우 안마사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게 하였다.

"고향 압헤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호들기를 꺽거 불든 그 때는 옛날(1934년 고복수. 타향.")

피리는 대나무로 만드는데 향피리, 당피리 그리고 세피리로 나눈다. 그 값이 비싸 어린애들이나 머슴들은 풀잎으로 피리소리를 내기도 하고 버드나무 껍질로 호드기를 만들어 불었다.

달성군청이 대구백화점 부근에 있을 때 큰 버드나무도 옆에 있었다. 시내에 사는 아이들은 그 버드나무 물오를 때 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었다. 가지를 손으로 부드럽게 여러 번 비틀어 껍질이 몸통에서 떨어지게 만든 다음 빼어낸다. 원통으로 빠진 껍질의 한 쪽을 작은칼로 겉껍질을 긁어 낸 다음 양쪽 끝을 깡총하게 다듬으면 호드기가 된다.

대구의 밤, 시각장애자의 피리소리는 없어졌다. 봄 호드기 소리도 없어졌다.

대구에서 태어나 신천에서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이용복이 안마사가 되지 않고 한국의 레이 찰스라는 소리를 듣는 대가수가 되었다는 사실로 살아진 밤가객들의 아쉬운 추억을 다독여 본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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