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할아버지가 호자 돌림이고,
아버지가 인자 돌림이며
저는 섭자 돌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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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님의 질문에 답변을 드립니다.
어디 장씨인지 궁금합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호자 돌림이고,
아버지가 인자 돌림이며
저는 섭자 돌림입니다.
답변 : 장씨는 많은 본관이 있어 정확히 찾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직 본관을 모르시고 계시면 인동 장씨의 경우 많은 파가 있어 더우기 돌림자를 제대로 쓰시지 않을 경우 찾아 드릴 수가 없으므로 이런때는 님이 현제 살고 게시는 동사무소나 읍면사무소에 가셔서 가족관계증명서, 호적등본, 제젝등본 중에 하나를 발급받아 본관을 아신다음에 질문해 주십시오.
덕수 장씨(德水 張氏)와 절강 장씨(浙江 張氏)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씨(張氏) 비조(鼻祖) 즉(卽) 도시조(都始祖) 모든 장씨(張氏)는 장정필(張貞弼) 공(公)이다.
장씨(張氏)의 본관(本貫)은 문헌(文獻)에 63개 본(本)이 기록(記錄)되어 있으나, 현재(現在)는 30본 미만(未滿)으로 추정(推定)된다.
그 중에서 덕수 장씨(德水 張氏)와 절강 장씨(浙江 張氏)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씨(張氏)는 도시조(都始祖)인 장정필(張貞弼)의 후손(後孫)으로 알려져 있다. 《안동장씨세보(安東張氏世譜)》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등에 의하면 장정필(張貞弼)은 중국(中國) 절강성 출신으로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고 전(傳)한다. 덕수장씨(德水張氏)는 뿌리를 회회계(回回系)에 두고 있으며,《덕수장씨족보(德水張氏族譜)》와 《고려사(高麗史)》등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封)해지고 덕수현(德水縣)에 살게된 원(元)나라 사람 장경(張卿:일명 장백창)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통일신라(統一新羅)의 청해진 대사 장보고(張保皐)를 그의 부 백익의 1대로 하여 신라(新羅)시대(時代)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현전하는 문헌(文獻)들과는 상충되는 바가 있어 이들을 '13세 별록'이라 하여 별도(別途)로 취급(取扱)하고 있다.
하여! 우리나라 장씨(張氏)는 덕수(德水)와 절강 장씨(浙江 張氏)를 제외한 인동(옥산), 안동, 순천, 구례, 봉성, 단양, 목천, 울진, 결성, 흥성(흥덕), 하산, 려흥, 부안 등 제장씨는 장정필(張貞弼)의 혈손(血孫)으로서 그를 도시조(都始祖)로 하고 있으나 각(各) 관계(關係)보간에 연대의 차이(差異)가 있으니 박고 정정함이 좋을 것으로 안다.
하나 다른 말씀 드리고 싶지만 너무 모르는 본관(本貫)이 많이 밑에 몇 대(代) 본관(本貫)의 시조(始祖)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인동 장씨(仁同 張氏)
시조 : 장금용(張金用)
仁同(인동)은 우리 仁同 張氏(인동 장씨)의 始祖(시조)이신 三重大匡公神虎衛上將軍(삼중대광공신호위상장군) (諱金用(휘금용))府君(부군)께서 肇基(조기) 卜居(복거)하신 고을로 千有餘年(천유여년)을 世居(세거)해온 祖上(조상)의 얼이 심어져 있는 유서 깊은 고장으로 仁同 張氏(인동 장씨)의 貫鄕(관향)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인동 장씨는
2000년에는 총 184,863가구 591,31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 안동 장씨(安東 張氏)
시조(始祖) : 장길(張吉)
시조(始祖)의 초(初) 휘(諱)는 길(吉)이요 후(後)에 다른 나라에서 쓰던 이름으로 공(功)을 높이는 것은 의가 아니라고 정필(貞弼)이라 개명 하였다. 관직(官職)은 통합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統合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公信) 태사(太師) 충헌공(忠獻公)이시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안동 장씨는
2000년에는 총 25,552가구 83,96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3. 흥성 장씨(興城 張氏)
시조(始祖) : 장청계(張淸溪)
始祖와 中始祖, 派祖 (시조와 중시조, 파조)
선조(先祖) 중에는 시조(始祖)가 있고 또 중시조(中始祖)가 계신다. 시조(始祖)는 우리 흥성(興城) 씨족(氏族) 중 가장 윗 선조(先祖)를 말한다. 현재(現在) 전국(全國)에 살고 있는 흥성(興城) 장씨(張氏)는 모두 시조(始祖)의 후손(後孫)들인 것이다.
시조(始祖) 유(儒)는 고려시대(高麗時代)에 광평시랑(廣評侍郞)을 역임(歷任)한 분으로 자(字)는 청계(淸溪)이시다.
중국어(中國語)에 매우 능통(能通)하여 항상 중국(中國) 사신(使臣)을 맞이하여 외교(外交)를 담당하시었다.
그의 아들이신 연우(延祐)께서는 고려(高麗) 현종(顯宗) 때 공신(功臣)으로 호부(戶部) 상서(尙書, 현재의 재무부 장관)를 역임(歷任)하였고 돌아가신 후(後) 나라에서는 충숙공(忠肅公)이라 시호(諡號)를 내리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흥성 장씨(興城 張氏)는
2000년에는 총 14,023가구 44,70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4. 단양 장씨(丹陽 張氏)
시조(始祖) : 장순익(張順翼)
시조(始祖) 순익(順翼)은 도시조 정필(貞弼)의 현손(玄孫)으로, 고려(高麗)에서 시랑을 역임한 지현의 세째 아들이다.
그가 고려조(高麗朝)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하시중(門下侍中) 등(等)을 지내고 단양군에 봉(封)해졌으므로 후손(後孫)들이 본관(本貫)을 단양(丹陽)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代表的)인 인물(人物)로는 순익(順翼)의 아들 3형제(兄弟) 중(中) 맏아들 재일이 상장군(上將軍)을 지냈고, 차남(次男) 유일은 시랑(侍郞)을 역임(歷任)하여 가문(家門)을 빛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조사(人口調査)에 의하면 단양 장씨(丹陽 張氏)의 인구수(人口數)는 약33.000여명,
5. 결성 장씨(結城 張氏),
시조(始祖) : 장사(張楒)
결성장씨(結城 張氏)는 350여년 전(前)부터 세거(世居)하기 시작(始作)했다. 결성부원군(結城府院君) 장사(張楒)의 18세손(世孫)으로 병조참판(兵曹參判) 겸(兼)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을 역임(歷任)하였으며 장씨 8관(八貫)의 족보(族譜)를 10년간에 편찬(編纂)한 장취오(張聚五, 1684~1770)가 그의 부친(父親)인 절충장군 장시서(張時瑞, 1653~1706)의 묘(墓)를 쓰고 서울에 살았다. 그후(後) 취오의 장손(長孫) 장이검(張履儉)이 광주에서 3대를 살다가 충청도(忠淸道)로 이주(移住)하였다.
통계청의 인구조사(人口調査)에 의하면 결성 장씨는
2000년에는 총 6,708가구 21,06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6. 덕수 장씨(德水 張氏)
덕수 장씨(德水 張氏) 시조(始祖) 장백창(張伯昌, 일명 장순용(張舜龍:일명 舜), 시호는 공숙)은 아랍(이슬람)계 사람으로 원(元)나라 세조(世祖) 때 필도치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1275년(고려 충렬왕 1년) 충렬왕비(忠烈王妃)인 제국공주를 배행하여 고려에 왔다가 덕수현(德水縣)에 살면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고 덕수부원군(德水府院君)에 봉(封)해졌으며 덕수현(德水縣)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 받았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덕수(德水)를 본관(本貫)으로 하였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덕수 장씨는
2000년에는 총 6,531가구 21,00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7. 울진 장씨(蔚珍 張氏)
시조(始祖) : 말익(末翼)
강원도(江原道) 울진(蔚珍)은 본래 우진야현(于珍也縣)인데 통일신라(統一新羅)때에 경덕왕(景德王)이 울진(蔚珍)으로 개칭(改稱)하여 군(郡)으로 삼았으며, 고려(高麗) 때 강등(降等)하여 현(縣)을 만들어 영(領)을 두었다. 고종 32년(서기 1895년)에 군(郡)으로 고쳤다.
울진 장씨(蔚珍 張氏) 족보(族譜)에 의하면 시조(始祖) 말익(末翼)은 도시조(都始祖) 정필(貞弼)의 5세손으로 고려(高麗) 정종 때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고, 문하시중(門下侍中)평장사(平章事) 상주국으로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에 봉(封)해졌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울진(蔚珍)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家門)의 대표적(代表的)인 인물(人物)로는 천일(天鎰)이 고려(高麗) 문종(文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 하여 추밀직하사(樞密直學士)를 지냈으며, 천일(天鎰)의 아들 원흡(元洽)은 병부상서(兵部尙書)를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말익(末翼)의 8세손 양수(良手)는 희종(熙宗)때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이르렀으며, 전리판서(典理判書)를 거쳐 상호군(上護軍)을 역임(歷任)하였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선조(先祖) 16년(서기1583년)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고 1586년 무과중시(武科重試)에 급제(及第)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연안군수(延安郡守)가 되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울진 장씨는
2000년에는 총 6,664가구 20,79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8. 거창 장씨(居昌 章氏)
시조(始祖) : 장종행(章宗行)
본관은 거창(居昌)과 보성(寶城) 2본이 전(傳)해지나 사실상 거창장씨(居昌 章氏) 단본(單本)으로 알려져 있다. 거창장씨(居昌 章氏)의 시조(始祖) 장종행(章宗行:忠獻公)은 원래 송(宋)나라 건주(建州) 사람으로 700여 년 전에 고려(高麗)에 귀화(歸化)하였는데, 충렬왕(忠烈王) 때 봉익대부(奉翊大夫)·판도판서(版圖判書)·예문관대제학 겸 춘추관사(藝文館大提學兼春秋館事)를 지냈고 안향(安珦)의 사위로 장씨보(章氏譜)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그의 아들 두민(斗民)은 충숙왕(忠肅王) 때 광정대부 판삼사사(匡靖大夫判三司事)를 지냈으며, 충혜왕(忠惠王)이 원(元)나라에 갈 때 배행하였고, 공민왕(恭愍王) 때에는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홍건적(紅巾賊)을 물리치고 아림군(我林君)이 되었다.
그러나 공양왕(恭讓王) 때 돈령부부정(敦寧府副正)을 지낸 삼장(參莊)이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거창군 화면(火面:熊陽面)으로 퇴거함으로써 거창(居昌)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현재(現在) 장씨(章氏)는 대부분(大部分) 경남(慶南) 거창군(居昌郡)과 함양군에 집단부락을 이루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거창 장씨는
2000년에는 총 1,751가구 5,55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9. 옥구 장씨(沃溝 張氏) :
시조(始祖) : 장익(張榏)
옥구(沃溝)는 전라북도(全羅北道) 북서부(北西部)에 있는 지명(地名)이다. 본래(本來) 백제(百濟)의 마서량현이었으며 통일(統一)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옥구(沃溝)로 고쳐서 임피에 속(屬)하게 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초(初)에 군산(群山)창이 되면서 옥구현(沃溝顯)이 되었다.
옥구장씨(沃溝張氏)는 도시조 장정필(張貞弼)의 14세손인 장익(張榏)을 시조(始祖)로 한다. 그는 고려(高麗)에서 집현전(集賢殿) 대제학(大提學)을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歷任)하였으며 옥성(옥구의 별호) 부원군(府院君)에 봉(封)해졌다. 그러나 그 후(後)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정확(正確)한 계대(繼代)는 상고(詳考)할 수 없다. 다만 그의 후손(後孫)으로 판도판서를 역임(歷任)한 장송을 1세조(世祖)로 하고 옥구(沃溝)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후손(後孫) 가운데 장송의 손자(孫子) 장화가 고려(高麗)에서 판도판서를 지냈고, 장화의 아들 장대유가 부사를 역임(歷任)했다. 장대유의 아들 장한이 판서를, 장윤이 참의를 역임(歷任)하여 아버지와 함께 가문(家門)을 중흥(中興)시켰다.
군수를 지낸 장승조와 현감 장현손도 옥구장씨(沃溝張氏) 후손(後孫)이다. 어모장군을 지낸 장희와 장순명을 비롯 효자로 이름난 장만건, 장만준과 학자 장만웅, 현감 장위한도 가문(家門)을 빛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옥구 장씨는 2000년 현재는 5,708명이 있다.
10. 구례(봉성)장씨(求禮(鳳城)張氏).
시조 : 장악(張岳)
시조 장악(張岳, 시호(諡號)는 양간)은 장정필(張貞弼)의 21세손(世孫)이다. 그는 고려(高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며 왕(王)의 총애(寵愛)를 받았다. 나이 70에 고향(故鄕)을 생각하고 근심이 가득하자 왕(王)이 봉성군(鳳城君)에 봉(封)하고 봉성(鳳城)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 하였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구례(求禮)를 본관(本貫)으로 하였다.
- 장악(張岳)의 묘소(墓所)는 전남(全南) 구례군(求禮郡) 백운동에 있다. 등
<인구> 구례 장씨 10,670명, 봉성장씨 760명이 있다.(1985년)
문헌에 250여 개 본관이 전하나, 오늘날 계통이 자세히 전하는 본으로는 인동(仁同)·안동(安東)·흥성(興城, 興德)·단양(丹陽)·결성(結城)·덕수(德水)·울진(蔚珍)·나주(羅州)·목천(木川)·구례(求禮)·순천(順天)·옥구(沃溝)·창녕(昌寧)·부안(扶安)·절강(浙江)·진주(晉州)·전주(全州)·예산(禮山)·영동(永同)·진천(鎭川)·청송(靑松)·진안(鎭安)·옥천(沃川)·지례(知禮)·흥양(興陽)·해풍(海豊)·태원(太原, 忠州)·영천(榮川)·흥해(興海)·천녕(川寧) 등이 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성씨 및 본관 집계결과에 따르면, 인구수 99만 2,721명으로 성씨 중에서 인구순위 9위이다.
시간 관계상 생략합니다.
등 많은 장씨가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1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