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만능주의’ 실시간 소통 강화로 깬다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첫 번째 인사는 ‘무난’…검경수사권조정 문제는 ‘글쎄’
“업무중심으로 조직 혁신, 전문성 존중받게 만들 것”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강신명 경찰청장이 지난 25일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개시했다. 사상 최초·최연소 경찰대 출신 경찰청장이라는 타이틀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실추된 경찰의 명예를 회복하고 경찰 조직을 장악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어 향후 행보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 청장은 취임식에서 경찰의 기본 책무인 안전과 질서는 물론 관할주의·계급주의 타파를 천명했다. 경찰 내외부에서는 취임사에 담긴 강 청장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향후 경찰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남 합천 출신인 강신명 경찰청장은 대구 청구고와 경찰대(2기)를 졸업했다. 이후 울산지방경찰청 정보과장, 경기지방경찰청 정보2과장, 서울지방경찰청 경무부장 등을 거쳐 경찰청 정보국장과 수사국장 정보·수사 분야의 요직에서 근무했다. 또 경북지방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도 지냈다.

강 청장은 경찰청장 임명 직전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을 거쳐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임명됐다. 청와대 근무 후 자연스럽게 경찰청장에 오르자 야당에서는 청와대를 다녀온 뒤 고속승진했다며 이를 문제 삼기도 했다.

하지만 강 청장은 인사청문회 당시 “다른 부서도 그렇지만 비교적 우수한 공무원이 파견을 가고 최선을 다해서 승진의 영광을 얻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답하며 논란을 피했다.

강 청장이 취임하자 일각에서는 조직 장악력,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문제 삼으며 강 청장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현재 경찰청에는 강 청장 윗 기수인 경찰대 1기 졸업생이 70여명 남아있는 상태다. 이들을 어떻게 잘 어우르느냐에 따라 강 청장 임기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인사 ‘화합과 균형’ 선택

취임 직후 조직 장악은 필수다. 특히 주변에서 강 청장의 취임 이후 조직 장악력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 많았던 만큼 강 청장은 첫 번째 인사에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결국 강 청장은 선배와 후배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는 지난 29일 경찰청 치안정감, 치안감에 대한 승진·전보 인사를 내정 발표했다. 서울경찰청장에 구은수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 경찰청 차장에 홍익태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경찰대학장에 황성찬 대구경찰청장이 각각 승진 내정됐다. 최동해 경기경찰청장과 이금형 부산경찰청장은 유임됐다. 당초 최 청장과 이 청장은 경찰대를 거치지 않아 ‘물갈이’가 예상됐었다.

경찰청장의 바로 밑 자리로 경찰 조직에 다섯 자리뿐인 최고직인 치안정감으로는 3명이 승진내정됐다. 치안정감의 임기는 2년이다. 현재 치안정감인 이인선 경찰청차장과 안재경 경찰대학장은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치안정감 중에서도 요직으로 꼽히는 서울경찰청장에 내정자된 구은수 사회안전비서관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1985년 간부후보 33기로 임관했다. 그는 조직 안팎에서 ‘경비통’으로 불린다. 전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가장 많은 서울 종로경찰서 서장을 역임했다.

구 내정자는 대표적인 ‘경호통’으로 조직 내에서는 부드러움과 호방함을 겸비한 덕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청와대에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현 정부의 정치 철학과 정책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경찰청 차장으로 내정된 홍익태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은 ‘기획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특히 경찰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홍 내정자는 외유내강형이며, 부하직원을 격려하며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다.

황성찬 경찰대학장 내정자는 경찰대 1기 출신으로 치안정감에 오르게 됐다. 당초 경찰대 2기 출신인 강 청장이 경찰의 수장에 오르면서 선배들인 ‘경찰대 1기’들이 줄줄이 명예퇴직을 신청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그러나 ‘경찰대 선배’인 황성찬 내정자를 승진 내정하면서 조직의 화합과 균형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치안감의 경우 4명이 승진하고, 3명이 전보하는 인사가 내정됐다. 치안감 승진 인사로는 장향진 서울청 기동단장이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으로, 김치원 경찰청 교통국장이 경찰청 정보국장으로, 허영범 서울청 수사부장이 경찰청 보안국장으로 각각 내정됐다.

관행·학습 털어내야 조직정비 가능

이철성 경남지방경찰청장은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으로, 이상식 경찰청 정보국장이 대구경찰청장으로, 백승엽 경찰청 보안국장은 경남경찰청장으로 각각 전보 내정됐다.

‘화합과 균형’을 고려해 인사를 펼친 강 청장은 동시에 계급타파에 나섰다. 강 청장은 취임사에서 “그동안 계급 중심의 조직운영으로 인해 ‘승진 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일 따로 승진 따로’라는 비판적 시각이 조직 내에 있었다”며 “업무중심으로 경찰 조직을 혁신하기 위해 인사·교육 분야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해 일과 승진을 연계하고 전문성이 존중받는 기반을 구축하겠다고”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업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방만하고 불필요한 관행과 계급 위주 풍토에서 파생된 악습을 털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경찰 조직은 승진과 관련해 많은 문제를 겪어 왔다. 지난 17일 광주지방경찰청에서는 경감 A씨가 탄원서 형식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경감은 유서에서 “저는 고졸입니다. 그래서인지 시험승진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진급할 수 있는 특진의 길이 열려 있지만, 경찰의 심사승진은 그렇지 않고 빽은 필수요, 일을 잘해도 필수 지참금이 있어야 하는 것이 경찰의 실상”이라고 폭로했다. A 경감은 평소 “나는 승진과는 무관한 사람”이라며 승진을 초월한 듯한 말을 했지만 화물차 불법 증차 사건과 관련된 의혹 때문에 승진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서는 시험을 통한 승진 외에 주요 범인 검거나 담당 업무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 경찰관을 심사로 승진시키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심사로 특진하려면 최종 결정이 나기 전 돈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경찰 안팎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실제로 전직 경찰 출신 인사 B씨는 “승진을 위해서 드는 지참금이 1억~2억원이다”라고 밝혀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B씨가 밝힌 지참금에는 휴가비, 명절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강 청장은 결찰 조직 내에 뿌리 깊이 박힌 ‘승진 만능주의’ 즉 계급을 타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 하는 경찰 따로 있고 승진하는 경찰 따로”있는 동안에는 경찰 조직이 바로 설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강 청장은 실시간 소통 강화를 주문했다. 강 청장은 지난 25일 열린 전국지휘관회의에서 “하방경직성(아래쪽 방향으로 경직돼 있음)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며 “종심(앞에서 뒤까지의 길이)이 두꺼운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강 청장은 “일선 경찰관들이 필요하면 경찰서장 등 지휘관들에게 카카오톡이나 밴드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보고하라”며 실시간 소통 강화를 주문했다.

사건을 처리할 때 중간급 이상 간부들이 적극적으로 관여, 더욱 꼼꼼히 사안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소한 사안이라도 문건을 만들어 보고하는 딱딱한 조직문화에서는 보고가 늦어지거나 아예 누락될 수 있는 만큼 지휘관들이 열린 자세로 일선 경찰관과 항상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다.

검경수사권조정 문제 본격 논의 될 듯

강 청장 취임과 함께 검경수사권조정 문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평소 검경수사권조정 문제에 대해 “경찰의 수사개시진행권을 구체화해 현실화단계를 밟아나가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실제 강 청장은 지난 22일 오후 서울경찰청장 이임식에 앞서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2011년 검경이 협의한 경찰의 수사개시진행권을 분석해 국민의 평가를 거친 다음 더 발전하는 단계를 지향한다는 입장”이라며 “경찰이 1차 수사기관으로서 수사개시진행권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현실화단계를 밟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 검경의 협의에 따라 형사소송법상 보장돼 있는 경찰의 수사의 개시·진행권을 다시 확인한 바 있지만, 경찰이 내사 중인 사건을 검찰이 중간에 가로채는 일이 계속 발생돼 왔다.

이런 가운데 경찰 내부에서는 강 청장 취임을 앞두고 발생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공연음란죄 사건’을 두고 “검찰에 한 방 먹였다”는 여론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경찰 내부에선 ‘유병언 일가 수사’를 검찰이 주도했는데도, 책임은 이성한 경찰청장이 지고 물러났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불만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그런 시점에 ‘검경 수사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강 청장의 취임을 앞두고 현직 검사장의 부적절한 행적을 밝혀낸 것을 일종의 성과로 인식하는 시각이 있다. 검찰과 경찰이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로 얼마나 틀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청장 임기 2년 다 채울까

강 청장의 취임 이후 경찰은 첫 번째 인사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체면을 구겼지만 무난한 첫 번째 인사로 안정적으로 조직을 이끌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경찰청장 자리가 단명하는 자리라 과연 강 청장이 얼마나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2003년 경찰청장 임기 2년을 보장하는 경찰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8명의 청장이 나왔지만 임기를 채운 사람은 이택순 전 청장 1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강 청장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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