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보이콧"에 "행정처분" 맞불…이번엔 자사고發 교육계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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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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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자사고 평가하는 교육청11곳 재지정 점수 높여
전북 합격기준 80점 제시…상산고 동문·학부모 반발
충북지사 “지역인재 유출 막아야” 자사고 신설 추진
전문가들 “자사고 없애면 강남 명문고 쏠림” 회의론
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 총동창회와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가 6일 전북도 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교육청의 자율형 사립고 평가 계획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을 둘러싼 갈등이 악화일로다. 전국 자사고의 절반 이상이 재지정 평가를 앞둔 상황에서 시·도교육청들이 잇따라 합격 기준을 올리면서다. 올해 평가대상인 자사고 24곳은 교육당국이 의도적으로 `자사고 죽이기`에 나섰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지역 자사고 교장들은 평가기준 전면 재검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평가거부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당국은 법령에 명시된 재지정 평가를 거부할 경우 시정명령에 이어 정원감축 등 행정처분에 나설 수 있다는 반응이다.

◇ 자사고 평가 교육청 모두 커트라인 높여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 자사고 42곳 중 24곳이 재지정 평가를 받는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5년마다 자사고를 평가, 기준 점수에 미달하면 일반고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주관하는 11개 시도교육청이 재지정 기준을 모두 10점 이상 상향 조정했다는 점이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경기·전남·대구·강원·경북·인천·충남·울산 등 10곳은 기준점을 60점에서 70점으로, 전북은 이를 80점으로 올렸다.
2019년 재지정 평가 대상 자사고 현황(자료: 교육부)


지난 2014년에 이어 5년만에 2주기 평가를 받게 된 24개 자사고는 교육청들이 일제히 재지정 기준을 올리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 자사고 13곳은 교육당국이 평가지표를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평가 보이콧에 나설 계획이다. 오세목 전국자사고교장협의회(서울 중동교 교장)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평가지표를 재조정하지 않으면 평가 자체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자사고 평가는 교육감의 권한이라면서도 평가 거부 시에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법령에 정해진 의무사항이며 이를 거부할 경우 시정명령·행정처분이 가능하다”고 했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교육청의 시정명령을 거부하는 학교는 정원감축·모집정지 등의 행정제재를 받을 수 있다.

◇ 전주 상산고 동문·학부모 총궐기 예고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갈등이 지역사회로 번진 곳도 있다. 전국 단위 자사고인 상산고가 위치한 전북 전주시가 대표적이다. 전북교육청은 올해 초 자사고 평가계획을 안내하면서 재지정 기준을 80점으로 제시했다. 다른 교육청 10곳의 재지정 점수(70점)보다 10점이나 높다.

상산고 총동창회와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러한 평가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청의 올해 자사고 평가계획은 상식에 반하고 법리에 어긋난다”며 “전북교육청의 평가계획 수정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학부모와 총동창회는 이날부터 1인 시위에 돌입한 데 이어 오는 15일 총궐기대회를 예고하고 있다. 상산고도 자사고 평가거부, 집단소송 등을 준비 중이다.

전북교육청은 자사고 평가기준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자사고가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으로 소질과 적성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정목적에 부합하려면 재지정 기준점수가 80점은 돼야 한다”며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교육감 권한이며 이를 낮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 진보교육감 대거 포진, 자사고 논란 지속될 듯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14명의 진보성향 후보가 대거 당선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2015년에도 자사고에 대한 첫 평가가 있었지만 이를 통해 지정 취소된 자사고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교육부가 자사고 지정 취소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교육감 독단으로 자사고 지정취소를 하지 못하도록 2014년 1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교육감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려면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게 골자다.

서울의 경우 조희연 교육감 1기 재직기간(2014~2018년) 동안 일반고로 전환한 자사고는 우신고와 미림여고뿐이다. 이마저도 재지정 평가 탈락에 의한 게 아니라 학생충원난을 겪던 학교 측이 스스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한 경우다. 우신고는 2010년 자사고 전환 이후 지속적으로 학생충원에 어려움을 겪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는 2012년 동양고, 2013년 용문고, 2015년 미림여고·우신고에 이어 지난해 대성고까지 총 5곳이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했다.

◇ “자사고 없앤다고 서열화 해소되나” 회의론도

올해부터 2020년까지 진행될 2주기 재지정 평가는 1주기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14명의 진보교육감이 지난해부터 임기를 시작했으며 중앙정부도 진보진영이 집권 중이다. 특히 자사고 폐지를 포함한 고교체제개편이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교육부의 입장도 선회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최근 교육부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자사고 등이 대입 경쟁을 부추기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부분은 기준에 맞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사고 폐지로 고교서열화 해소가 가능하다는 지적에 회의감을 보이는 전문가들도 많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사고를 폐지하면 고교서열화가 해소된다는 논리는 소위 ‘SKY 대학’을 없애면 대학 서열화가 없어진다는 논리와 비슷하다”며 “자사고가 없어지면 오히려 강남의 명문고 쏠림현상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의 자사고가 인재 유출을 막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충북은 이러한 이유로 지역 명문고 유치를 내걸고 자사고 설립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이시종 지사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충북도에 따르면 이 지사는 지난달 14일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찾아 “지역 우수 인재가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사고가 필요하다”며 “충북에 자사고 신설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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