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대지의 칼
일상생활 - 대지의 칼
  •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 승인 2019.03.05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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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지인과 대화 중 칼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대화의 내용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는데도 뭔가 풀리지 않는 묘한 기운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상의 삶, 많은 이야기 속에 어쩌면 모두 가슴과 손에 칼 하나씩은 들고 있는 듯하다. 순간적으로 상대를 쳐야 한다 판단하면 생각할 틈 없이 칼날을 세운다. 그리곤 이내 내리친다. 상대도 질 수는 없다 역시 방어태세이다. 이렇게 싸우는 것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가슴에 품었던 칼을 벼리고 갈고를 반복하며 칠 날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절치부심하며 오랜 시간 쌓인 것이기에 싸움도 오래가고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다.

이래저래 싸움의 연속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가 떠오른다. 가끔 지나가듯 본 상황이라 정확한 줄거리는 생각나지 않지만, 무기를 들고 상대를 제압하며 레벨 업을 시키는 장면이 떠오른다. 자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무기를 들고 있는 상대방이 있다. 처음엔 같은 수준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터라 싸움은 장시간이었으나, 상대를 제압하며 성능이 향상된 무기를 손에 쥐며, 더 많은 상대를 짧은 시간에 제압하는 장면이다. 드라마 내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가상의 싸움이 현실과 연결된다는 것에 현재 일상의 상황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 상대에 대한 경멸과 증오가 보이지 않는 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현실에서 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로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누구의 가슴 속에든, 칼은 있다. 저마다의 빛나는 칼이 있다. 그러나 좋은 칼은 결코 쉽게 칼집에서 나오지 않는 법이다. 모든 칼은 본능적으로 피를 그리워하는 법이지만, 좋은 칼은 본능을 능히 억제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다는 얘기다. 그것은 한갓 연장이나 무기로서가 아니라 도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군대 면제를 받을 정도의 병을 앓던 시절 많은 책을 읽었다. 그때 이외수의 칼을 읽었고 이후 책의 주인공처럼 칼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검도를 배웠다. 그때의 칼은 할인검이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칼이다. 그런 자세로 살려 했건만 번번이 실수를 하며 틈을 보인다. 틈을 보이면 여지없이 칼날이 들어온다. 번번이 당하지만 늘 무방비이다. 이외수의 칼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나에게 있어 2019년, 한 해는 겨울이다. 겨울은 담금질을 뜻한다. 신검인 할인검을 만들어 보자 하는 뜻이었다.

하루의 긴 싸움에서 나를 치유해주는 건, 초췌해진 아빠를 응원해 주는 가족과 집안 작은 뜰의 부쩍 늘어난 또 다른 가족이다. 올 것 같지 않은 봄의 기운은 땅이 품고 있던 양분을 켜켜이 담고 있던 덩이를 깨운다. 그리고 함초롬 싹을 올리고 있다. 그 싹은 검의 앞부분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두터운 검, 두 손으로는 들기 힘든 검의 끝자락을 보는 듯하다. 저 깊은 곳에 어떤 모습의 검이 있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며 묻혀 있는 양분의 덩이는 싹을 조금씩 더 올린다. 이제는 검의 모습이 아니다. 검인 듯 보였던 싹은 덩이가 가지고 있는 그간 켜켜이 쌓았던 양분처럼 한 겹 한 겹 밖으로 젖히고 있다. 어쩌면 전통 도검의 겹쇠처럼 말이다.

땅은 오랜 시간 기다린 것들에 양분을 주었다. 하나의 작은 씨앗에도 작은 알맹이에도 양분을 주고 자라 커다란 덩이로 만들어 주고 그 안에 강한 칼을 만들게 했다. 그 칼은 많은 것을 행복하게 해주는 할인검이었다. 그 싹은 오래지 않아 수선화로, 붓꽃으로, 상사화로 이어지는 환희의 색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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