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내리는 이른 봄길을 신채호의 자취를 찾아 산내 쪽으로 향한다. 대전이 규모가 커지면서 옛날에는 대덕군이던 곳이 대덕구가 되자 신채호의 생가가 있는 산내면 도리미 마을이 대전에 편입됐다. ‘조선상고사’를 읽어 신채호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이곳에 한 번 가보고자 했다.
나는 대전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크면서는 신채호를 청주 사람으로만 알았다. 여덟 살 때 할아버지를 따라 충북 청원에 가 성장했고, 단재기념관도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충북 쪽은 일찍부터 역사와 문학에 깨어 기억해야 할 것을 기념하는 전통이 살아 있다. 중국에 여행 갈 일이 있어 뤼순(旅順) 감옥으로 알려진 곳을 견학한 적이 있다. 거기서 안중근과 함께 신채호의 사진을 만났다. 이 감옥에서 두 분 다 장한 생애를 마친 것이다. 한 분은 여기서 사형 집행을 당했고, 다른 한 분은 순국하시고 말았다. 위층에서 아래층까지 다 감시할 수 있는 팬옵티콘식의 감시대에 서서 두 분 선혈의 뜨거운 삶을 추억했었다. 어찌하여 이분들은 나라를 떠나 먼 곳을 떠돌았으며, 중국 땅에서 일본 관헌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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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
홍보관을 나와 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 복원해 놓은 생가로 향한다. 비는 내리는 데 우산은 쓰고 싶지 않다. 나무 가운데 탱자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댁 울타리가 탱자나무, 하지만 해마다 전지를 해 큰 나무는 보지 못했었다. 나는 키 큰 탱자나무 가지 딱딱한 가시를 만져본다. 어쩐지 이 나무는 신채호의 꼿꼿한 성품을 닮은 것만 같다. 안중근이 1879년생, 한용운도 1879년생, 안창호는 1878년생, 그들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서세동점’의 대기운 속에서 조국이 바람 앞 등불 같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세상에 나왔다. 의식이 또렷한 사람이라면 시국에 눈뜨지 않을 수 없는 시대였다.
“인간에게는 싸움뿐이니라. 싸움에 이기면 살고 지면 죽나니 신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신채호는 1916년에 독특한 단편소설 ‘꿈하늘’을 썼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문구다. 인간 세상은 싸움뿐이요 싸움에 이기면 살고 지면 죽음뿐이라는 이 비정한 사상은 그가 맞닥뜨린 세상에 대한 그의 인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놈’이었다. “한놈은 대개 처음 이 누리에 내려올 때에 정과 한의 뭉텅이를 가지고 온 놈이라. 나면 갈 곳이 없으며, 들면 잘 곳이 없고, 울면 믿을 만한 이가 없으며, 굴면 사랑할 만한 이가 없어 한놈으로 와, 한놈으로 가는 한놈이라.” 이 ‘한놈’은, 바로 신채호 자신이었다. ‘사천년 제일대 위인 을지문덕’을 쓴 작가 신채호 말이다. ‘꿈하늘’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놈’은 말한다. “다른 것 아니라 대개 정이 많고 고통이 깊은 사람이라야 우리의 놀음을 보고 깨닫는 바 있으리니, 네가 인간 삼십여 년에 눈물을 몇 줄이나 흘렸느냐? …”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본 이 비정한 역사사상가가 사실은 ‘무정’한 세상을 눈물로 구원하고자 한 작가였던 것이다. 신채호가 세상에 나온 곳 그 길가에 선 가시 많은 탱자나무 한 그루, 그것은 속으로 정 많은 눈물 흘리는 신채호 바로 그였다. 그곳을 돌아 나오는 길, 나는 먼 이역에서 세상 떠난 선생을 위한 눈물 한 줄기를 가슴으로 흘렸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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