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 1990년 당시의 오프닝, 클로징 영상. 초창기인 1990년 5월부터 1991년 초까지는 밑의 이 시그널이 아니라 다른 시그널을 사용하였다.

▲ 1995년 당시의 오프닝 영상. 매우 익숙한 시그널이 들린다.[1]



▲ 현재 사용중인 오프닝 영상. 방영 시점은 2015년 2월.[2]

1 개요

MBC의 장수 프로그램이자 간판 시사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1990년 5월 8일 (화) 방영 시작.

가끔 방영시간이 바뀌었으며[3] 근래에는 화요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영되고 있다.

다른 방송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랄한 비판이나 구린내 나는 의혹을 얄짤없이 파헤치는 것으로 유명한데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 미국 소고기와 광우병의 관계, 한반도 대운하의 효율성 검증 등 TV 언론에서 다루지 못할 주제도 다룬다. 그래서 이 방송을 막으려고 했지만 대부분 막지 못했다. 방송을 막은 적은 딱 한 번, 매우 거대한 병크를 저질러가면서 막았는데, 그게 바로 1999년 5월에 있었던 한국 최악의 방송사고 MBC 습격사건이다.

2 역사

1990년에 프로그램이 첫 등장한 이후 프로그램이 까발리는 사회적인 문제들 때문에 상당한 시청률을 얻었고 이 때문에 취재한 참여한 PD들의 취재기를 모은 책인 <PD는 해결사?>도 나왔다.

다만 이 시절에 방영한 몇몇 보도 내용은 지금 보자면 쥐구멍에 들어갈 만한 흑역사도 있다. 1993년에 보도했던 YWCA와 장단을 맞춰가며 성인 애니로 등장한 란마 1/2 및 일본 애니 관련 보도는 당당하다고 하지 못한다.

2.1 황우석 사건

그러다 여타 방송사들도 각종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2000년대 넘어와서는 이전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다가 2005년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다시 떠올라 온 국민의 시선을 끌었다. 여러 공방 끝에 결국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가 거짓이었음을 밝혀내어 온 국민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PD수첩은 다시금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PD수첩이 옳았다고는 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취재 과정으로 인해 동시에 비난도 엄청나게 받았다.

당시 사건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황우석팀의 연구원들에게 생명공학 3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 예정이고 인터뷰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사전 동의 없이 몰카를 돌렸으며 이에 연구원들이 몰카 녹취를 방송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자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며 이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황우석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하며 연구원들에게는 협력한다면 PD수첩에서 계속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협박과 회유까지 하였다. 결국 이러한 일들이 밝혀지자 MBC는 공식적으로 PD수첩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의혹에 대하여 결국 PD수첩측이 옳았음이 밝혀지면서 PD수첩은 폐방 위기에서 기사회생하게 된다.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PD수첩과 황빠들과의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는 PD수첩의 보도가 맞았지만, 그 과정은 논란의 여지를 만들어 내었다.라고 할 수가 있다

2.2 광우병 논란

2000년대의 PD수첩이 두 번째로 커다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8년에 정부의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린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PD수첩은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정부의 다른 정책에 관해서도 과감한 비판을 감행하는 등 다른 시사 프로그램과는 비판 강도에서부터 넘사벽급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얼마 안 가 저 방송이 이후 의도적으로 번역을 바꿨다거나 실제 다른 영상을 광우병 관련 영상인 것처럼 조작했다는 의혹이 터졌고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건 중 하나다. 이는 당시 그 부분의 번역을 담당했던 번역가가 실명을 내놓고 이 영상에서 말한 건 광우병이 아니라 표기가 거의 비슷한 다른 병이었고 자신은 그걸 분명히 말했는데 PD수첩이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광우병으로 표기했다고 말해서 그만큼 주목을 받았다. 이 덕분에 의혹이 터진 지 얼마 안 되어 번역가가 지적했던 부분의 번역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 사실임이 드러났지만 이게 고의적인 것인지 실수인지나 번역가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일이 있다든가 하는 말이 나오면서 말이 많았다.

이 의혹 자체는 PD수첩이 잘못한 걸로 정리되었으나 그 기획의도에서 정부를 비난하려고 왜곡보도를 했다, 과장하고 잘못된 증거를 제시하긴 했으나 광우병이 그만큼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등의 공방만은 아직까지 남아서 정부와 PD수첩 제작진은 계속 충돌 중이다.
제작진을 다시 징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조능희 PD가 인사위에 세번째로 회부됐고 정직 4개월 처분을 받았다.
PD수첩 제작진을 옹호하는 쪽은 언론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 언론 탄압이라고 비난하고 정부는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정부를 의도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증거를 조직해 왜곡보도했다며 비난하고 있다.

이은 검찰 수사 발표에서 담당 작가가 주고받은 이메일의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현정부에 대해 작가가 매우 큰 반감을 갖고 있는 내용이었다라는 점이 문제됨과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 침해 문제가 문제되었다.

검찰 측은 이를 근거로 PD수첩이 의도적으로 정부를 비난하기 위한 고의적 오역의 근거로 내세운 반면 당사자와 PD수첩 지지자들은 과연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 본 사안의 중요 수사의 근거인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언론에 공개해야 할 만큼 결정적 근거인지를 통해 지나치고 강압적인 수사라고 비난하였다.

2010년 1월에 열린 서울중앙지법의 1심에서는 해당 보도 자체는 허위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피고측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으나 검찰과 한나라당 측에서 강력히 반발했다. 판결의 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자. #

또한 1심 판결문에는 번역에 임의의 조작을 가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오히려 이후에 번역문 그대로를 오역이라 주장한 쪽은 번역가 자신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기사 참조.

2010년 12월 2일 서울중앙지법 2심에서는 1심과 같이 무죄판결을 내렸다. # 다만 1심과 다르게 일부 보도 부분(다우너소, 아레사빈슨, 유전자MM형이 광우병 걸릴 확률)이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판단, 일부 언론에서는 이 사실만 부각하여 마치 유죄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정부에서 MBC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반론보도 청구소송(민사재판) 2심(서울고법)에서는 '일부 대목에서 MBC 측이 과장하여 보도한 사실이 인정된다' 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어쨌든 현재는 이러한 논란거리들 덕에 빠와 까가 극렬하게 나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2.3 기타 사건들

옹호하는 쪽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 과감히 접근하고 낱낱이 파헤치는 PD 수첩의 과감성과 언론의 비판 기능에 찬사를 보내는 반면 반대 쪽에서는 취재윤리를 어긴다든지 정치색이 다분한 기획의도를 가진 프로그램 제작이라든지 등을 이유로 또 다른 권력형 언론의 등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PD수첩에도 씻을 수 없는 굴욕이 있다. 1999년 5월 12일, 후에 무안단물로 유명해진(...)이재록 만민중앙교회의 습격을 받아서 신도들이 MBC 주조정실을 점거해 기계를 다 부쉈다. 결국 방송 시작 7분 만에 방송이 중단되어 Nice boat.동물의 왕국이 긴급 송출되는 한국 방송 역사상 유례 없는 초대형 방송사고를 당했고 결국 그 주에 재방송을 하였다. 당시 상황을 전하는 뉴스를 보려면 클릭. 재방송 때는 습격이 없었다고... MBC 습격 사건 참고.

2010년 4월 20일 부산 지방 검찰청의 스폰서 검사들의 모습을 취재하면서 다시 한 번 큰 주목을 받았다. 현직 검사장과 검찰 감찰부장의 실명과 녹취록까지 공개하면서 검사들의 비리를 파헤친 것. 그로 인하여 현재 검찰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중. 경과를 봐서 후속 보도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0년 6월 29일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이 일반 민간인을 대상으로 불법 사찰을 가한 사건을 보도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퇴직 은행원이자 중소기업을 운용하던 김모씨가 블로그에 정부 비판 UCC를 스크랩하자 며칠 뒤 거래처 은행에서 퇴사 압력이 들어오고 국무총리실에서 직접 세무조사를 나왔고 곧이어 장관이 관할 경찰서장에게 직접 죄목을 미리 정하고 증거를 찾아보라고 지시한 것이라서 큰 문제. 사실상의 표적수사가 이뤄졌지만 탈세나 자금 횡령 등의 기대하던 증거가 나오지 않자 애매한 "대통령 명예훼손" 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이 이루어졌고 이에 피해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일본으로 망명한 상태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국회 감사에서 이에 대해 질문을 하려고 하자 이 일의 표면상 책임자인 이인규 총리실 윤리지원관은 질문이 시작되기 직전 회의장에서 도망갔고(...) 이 장면 역시 PD수첩에서 생생히 녹화되었다. 총리실장은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배탈로 삼성 병원에 갔다" 라고 말했지만 이 말이 나오자마자 PD수첩에서 찾아간 삼성병원 曰 "그런 사람 입원해 있지 않습니다"(...) 이후 공식 보도에서는 고혈압으로 인한 입원이었다.

2010년 8월 17일일에는 4대강 사업에 관한 의혹을 주제로 방송을 할 예정이였으나 국토부가 법원에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 법원은 국토부의 신청을 기각했으나 이번에는 김재철 신임 MBC 사장이 방송보류를 지시했다. # 국토부나 신임 사장이 세간에서 그분과 밀접한 관계라고 이야기가 나도는 것을 볼 때 뭔가 심상치 않은 모양. 제작진 측은 이런 여러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방송을 강행할 뜻을 밝혔지만 결국 결방되고 대신 <VJ특급 비하인드 스토리>(...)가 방영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20년만의 결방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시사 관련 프로그램들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MBC 사옥 앞에서는 다시 집회가 시작되었다. 사안의 크기도 크기고 현재 시사예능국 PD들이 전부 모여있는 정황을 보아 다시 MBC 노조의 총파업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때문인지 결국 1주일이 지난 8월 24일 PC수첩 4대강편이 방영되었다. 내용은 정부의 4대강 사업이라는 것이 언제라도 대운하로 전용할 수 있는 물건이며 사업 추진 과정이 거의 대국민 사기극에 가깝다는 것(...) 이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기존 홍보물에 비해 비판 수위가 약해져 있어(!) 압력 의혹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동년 10월 16일 22회 안종필자유언론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2011년 3월 3일 최승호 PD, 홍상운 앵커가 결국 다른 프로그램 외주 관리 담당자로 발령. 프로그램을 떠나게 됐다. 이번에 전출된 PD수첩 소속 PD는 전체 11명 중 6명이라고 한다.

발령직전 최승호 PD는 '소망교회' 의 문제점을 취재 중이었다. 한 달 이내에 방송할 예정이였다고 하는데 이번 발령으로 방송은 불가능해질 전망. 당신이 생각하는 그 소망교회가 맞다. 그런데 이러한 인사조치를 단행한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소망교회를 다닌 인물로 알려졌다.

최승호 PD는 2010년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으로 사회적 파장이 큰 내용을 만들었으며 그 공으로 한국PD연합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PD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2012년 MBC 170일 파업 도중 최승호 PD가 노조 집행부 소속이 아님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해고되고 PD수첩을 담당하는 PD 10명 중 1명이 정직, 5명이 대기발령받고 작가 6명 전원을 해고하는 등 사측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4]

2016년 10월 18일 방영분은 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프로야구 승부조작에 대해 다뤘는데 자칭 전직 브로커라고 나온 사람이 여러건의 사기 혐의를 받은 사람이고 승부조작 문서 내용 자체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교차검증 없이 섣불리 방송에 내보냈다고 비판받고 있다. 일간스포츠 최민규 기자에 따르면 타 방송사에서 해당 자칭 브로커에 대해 검증한 뒤 신뢰성이 없다며 방송을 포기했다고 하고 경찰에서도 팩트 부족[5]이라면서 수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PD수첩 “프로야구 승부조작 의혹, 수사기관 확인해야”라는 인터뷰에서 “시작 자체가 그런 제보자가 과연 믿을만한지에 대한 점검이었다”며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옳고 그르다를 판단한 일이 없고, 전문가를 통해 그 제보 내용을 점검했을 뿐”, “현재 장부가 우리(제작진)에게 있는 게 아니고, 브로커도 지금은 연락이 안 되고 있다”며 (명단 공개여부는) 수사기관과 그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는 등 애초에 제대로 된 신뢰성을 확보하지 않고 방송을 했음을 시인하였다. 이는 시사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팩트 체크 능력을 상실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었으며 이로인해 PD수첩은 '아니면 말고'식의 찌라시 급의 소문을 퍼다 나르는 방송으로 까지 비판받고 있다.

3 기타

여담으로 MBC 코미디하우스에서 김현철이 이것을 패러디한 PD공책이란 이름의 아주 짧은 코너를 하기도 하였다. 이게 예능프로그램 단비세바퀴에서 언급되기도 하였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패러디한 PD노트라는 수첩도 있다.
  1. 모두가 들으면 알 듯한 저 시그널은 1991년부터 2007년 5월까지 무려 16년을 사용하였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PD수첩하면 이 시그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2. 시그널은 2007년부터 사용중이다.
  3. 방영하는 요일은 첫회부터 계속 화요일에 방영되었다.
  4. 그리고 최승호 PD는 뉴스타파로 옮겨가 앵커로 맹활약하고 있다. 어차피 뉴스타파가 거의 해직 언론인들이 모여 만들고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5. 증거 부족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