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방송 이사장 아들은 정말 '여장'하고 마약을 가져가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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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3.22. 오후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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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춘 EBS이사장 아들 독립영화감독 신모씨

지난해 2심 재판정에 들어가봤더니...

검찰측 "여성 가발 쓰고 마약 받으려던 남자 신씨"

신씨측 "누군가 음해, 폭압적 수사로 인생 망가져"

‘마약 밀수’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독립영화감독 신모(38)씨가 뒤늦게 ‘관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가 유시춘 EBS 이사장의 아들이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조카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은 21일 "아들은 결백하다"며 "모함에 빠졌다"고 했다.

2017~2018년 진행된 신씨의 ‘마약 밀수’ 사건은 내용도, 재판 과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사건이 2심에서 180도 뒤집혀 실형이 선고됐다. 작년 10월 대법원은 신씨를 유죄로 확정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신씨의 작년 2심 재판을 수차례 방청하며 적은 취재 메모를 통해 당시 사건 내용을 재구성해 봤다.

일러스트=이철원

2017년 11월 초 인천국제공항에 국제통상우편을 통해 엽서 크기의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그 속엔 대마 9.9g이 들어 있었고, 세관 통관 과정에서 걸렸다. 이 우편물은 곧바로 ‘통제배달물’로 분류됐다. 통제배달(Controlled delivery)은 밀수물품을 중간에서 적발하지 않고 감시·통제 속에서 유통되도록 한 다음 최종 유통단계에서 적발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마약류 등 불법 화물이나 범죄 혐의가 있는 우편물 등에 대해 관련자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쓰는 수사기법이다.

우편물 ‘받는 사람’은 ‘보리’라고 적혀 있었고, 주소는 서울 강남구의 신씨 작업실이었다. 2017년 11월 21일 검찰 수사관은 우편배달부를 위장해 이 우편물을 들고 찾아갔다. 이 작업실은 연예기획사인 M사의 일부를 임대해 쓰고 있었고, 사무실 안에는 대부분 M사 직원뿐이었다. 신씨도 없었다. 모두들 ‘보리'라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검찰 수사관은 M사 대표 김모(49)씨에게 "이 우편물 속에는 마약이 들어있다. 실제 누가 받아가는지 좀 확인해 달라"고 당부한 뒤 일단 발길을 돌렸다.

검찰 수사관이 돌아간 뒤 김씨는 신씨의 작업실을 둘러보다가 화이트보드에 한 귀퉁이에 시나리오와 작업 일정, 그리고 ‘보리’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리’는 신씨가 준비 중인 영화 ‘백색광선’의 주인공 이름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김씨는 이튿날(11월22일) 직원 손모씨와 함께 CCTV를 확인했다. 한 남성이 여성 가발과 복면 차림에 핸드백을 맨 여장(女裝)을 하고 우편함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신씨의 모습과 흡사했다.

2013년 ‘엘리베이터 강제추행’ 사건 범인이 여장을 한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이 사진은 신씨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뉴시스

깜짝 놀란 김씨는 곧바로 검찰에 알렸고, 다음날인 11월 23일 검찰은 압수수색을 벌였다. 김씨의 말대로 화이트보드에 적힌 ‘보리’라는 글씨와 신씨의 수첩에서 ‘대마초’라고 적힌 글귀 등을 확보했다. 특히 신씨 작업실 안에서는 대마를 갈 때 사용하는 ‘그라인더’(grinder)와 대마를 말아서 피울 때 사용하는 담배종이도 발견됐다. 김씨는 검찰에 "신씨는 원래 사무실에 잘 안 나오는데 우편물이 배달될 무렵 사무실에 상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면서 "신씨에게 잘못 배달된 우편물이 있어서 되돌려 보내야겠다고 했더니 ‘나는 받을 게 없지만, 우리 회사 PD가 받아야 할 물건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이상한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신씨는 그 자리에서 마약밀반입 혐의로 체포됐다. 신씨가 대마를 실제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정황을 근거로 입건한 것이다. 그는 "내 우편물이 아니다" "업계에서 내가 주목을 받아서 음해하려는 사람이 많다" "‘던지기’(마약 단속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의 가방이나 주머니 등에 마약을 던져 누명을 씌우는 수법)를 당한 것이다"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검찰은 조사 결과 신씨가 우편물이 배달되기 20일 전쯤 보름 동안 아이슬란드를 다녀왔고, 이 때 머리를 짧게 깎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신씨가 마약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기 위해 머리를 짧게 깎았다고 의심했다. 이런 정황 증거들을 모아 검찰은 신씨를 재판에 넘겼다.

신씨는 법정에서 "반인권적 폭압적 수사로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며 "4개월간 구속된 것은 강압적인 수사이고, (검찰이) 언론에 흘리겠다며 협박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또 "나는 대마초를 밀수입하지 않았고, 사건의 재수사를 통해 파괴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달라"고도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신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신씨가 대마를 밀수입했을 가능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들이 나타나지만, 밀수 혐의가 유죄가 되려면 신씨가 대마라는 걸 알고 밀수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씨가 우편물에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수령하려고 했다는 사실까지는 인정하기 어렵다"며 "설령 그렇다 해도 신씨가 대마를 어떻게 사들였고, 금전거래 내역이 있지 않는 이상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판결은 앞서 신씨가 또 다른 마약 밀수 사건에서 무죄를 받았던 수법과 비슷했다. 신씨는 지난 2014년에도 ‘Sin Isu’란 수령인으로 마약을 수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 선고를 받았다. 당시엔 신씨의 모발에서 마약 양성 반응도 나왔지만 신씨는 무조건 부인하는 전략을 택했다. 신씨는 "해외여행 때 만난 외국인이 건넨 쿠키를 먹었을 뿐 대마를 피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씨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대마를 밀수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게 무죄 선고 이유였다.

하지만 신씨의 부인 전략은 ‘두번째 사건’ 2심에서 벽에 부딪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해외에서 배송지를 신씨 회사로, 수령인을 ‘보리’로 특정해 우편물이 보내졌다. 신씨가 해외에서 공범과 공모해 국내로 배달했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신씨가 과거에 대마를 흡연한 바 있고, 현장에 대마 흡연 도구가 발견된 점 등은 앞으로도 흡연하려 할 가능성을 보여주며 신씨가 우편물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한층 높여준다"며 신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던지기’를 당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살면서 두 번이나 ‘던지기’ 수법으로 음해를 당할 수 있느냐"며 오히려 그를 꾸짖었다. 대법원은 그의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

아들의 마약 사건이 다시 관심을 끌자 신씨의 어머니 유 이사장은 21일 본지에 "아들이 한 달에 3~4번 나가는 회사로 대마초가 배달됐는데 아들 이름으로 오지도 않았고, 아들이 받지도 않았다"며 "더욱이 마약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고, 1심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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