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만 4번…"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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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2.14. 오후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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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만 4번을 완주한 도예가 김소영 작가. 그가 그동안 걸은 순례길 거리를 합하면 무려 4040km에 이른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고향'이나 다름 없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 김소영 작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 한국에선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 길은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여정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매년 30만 명 이상의 순례자가 찾는 여행자들의 3대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하지만 도저히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한 달을 넘게 가야 하는 장기여행이라는 점도 걸리고, 매일같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해 여행이라기보다는 고행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반적인 여행과는 180도 달라 준비 단계에서부터 벽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버킷리스트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올려놨지만 아무래도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순례길만 총 4번을 완주한 김소영 씨를 만났다. 그는 순례길에서의 기억을 기반으로 삼아 수공예 액세서리, 도자기 등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도예가이기도 하다. 김 작가가 그동안 걸은 순례길 거리를 합하면 무려 4040km. 예비 순례자들을 위한 조언을 듣기 전 그녀가 순례길에 '푹' 빠진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에게 첫 순례길은 한계를 깨는 도전이자 호기심이었어요.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부턴 산티아고와 애증의 사랑에 빠졌어요. 이제는 중독이 돼버렸죠. 세 번째로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는 '이런 곳이 고향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 토박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시골 같은 느낌의 고향이 없었거든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고향에 방문하듯, 산티아고가 저에겐 그런 존재가 됐어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예비 순례자들이 가장 먼저 건너야 할 관문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지 알아보는 일이다. 김 작가는 순례길 출발 전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체력'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매일 20~30km씩 한 달을 내리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말 그대로 고행길이다 보니 그렇다. 김 작가도 7년 전 처음 순례길을 걸었을 땐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떠나 크게 고생했다고. 그는 "체력은 자신 있었지만, 첫 순례길에서 발바닥이 짓눌리듯 아파서 해발 1500m의 피레네를 넘는 첫날에는 배낭을 던져버리고 싶었을 지경이었어요. 그리고 도자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생긴 골반 근육통증이 중간에 재발해 걷지 못하고 누워있기도 했죠"라며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그만큼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기 전 체력을 기르고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경험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첫 순례길에서 체력의 중요성을 절감한 그는 두 번째 순례길에 오르기 전 1년 반에 걸쳐 운동으로 몸을 다졌고, 세 번째부턴 노하우가 생겨 1200km를 넘게 걸어도 다리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순례길은 정신력과 체력의 싸움이에요. 건장한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길이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그때마다 참고 또 걸어가는 것이 중요해요.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체력이 좋지 않아도 참고 조금씩 꾸준히 걸으면 언젠가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돼 있어요."

체력이 준비됐다면 그다음은 산티아고 순례길 '필수템'들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다. 김 작가가 꼽은 필수 준비물 네 가지는 배낭, 등산화, 양말, 등산 스틱이다. 발바닥 물집 예방을 위한 바세린과 발가락 양말, 베드버그에 물렸을 때 바르거나 먹을 약, 부상 예방과 보호를 위한 스포츠테이프 등도 그가 추천하는 아이템이다. 물론 이외에도 각종 상비약품, 침낭, 실내화, 여분의 옷, 우의 등 하나씩 꼽자면 끝이 없다. 순례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 필수적인 것,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제대로 나눠 배낭 무게를 본인 몸무게의 10%로 맞추는 것이 최적이라는 게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노트북 하나가 든 가방만 메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가 아파오는데 한 달 넘게 생활할 짐이 든 배낭을 메고 수 시간을 걷는 일은 말 그대로 고역이다. '배낭을 당장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여정'이라는 게 순례길을 다녀온 여행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니 말이다. 물론 순례길에는 여행자들의 배낭을 다음에 묵을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로 운반해주는 짐 배달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다치거나, 배낭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라면 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그러나 김 작가는 "몸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웬만하면 메고 걷는 걸 추천한다"며 "고통이 곧 성장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냥 걸으면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배낭을 메고 걸을 때 더 많이 경험하게 돼요. 아무런 힘듦 없이 편히 걸으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순례길에서 즐거움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꼭 처음부터 끝까지 배낭을 짊어지고 걸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다양한 코스가 있지만 프랑스길(까미노 프란세스)과 포르투갈길이 대표적이다. 두 개의 루트 중에서도 프랑스길이 다수 순례자의 선택을 받는다. 2013년도 공식 자료를 보면 프랑스길을 걸은 순례자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김 작가는 프랑스길이 다른 루트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문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 또한 네 번의 순례길 모두 프랑스길을 통해 다녀왔고, 순례길 초심자들에게도 프랑스길을 추천했다. 프랑스길을 이미 완주한 사람들에게는 포르투해안길을 권했다. 네 번째 프랑스길을 완주하고 포르투해안길 280km를 더 걸었던 그는 "포르투부터 산티아고까지 걸었는데 해안가를 따라 걷는 여정이라 정말 아름다웠다"고 상기했다.

김소영 작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매력으로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과 '평생 잊지 못할 값진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사진 제공 = 김소영 작가]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의 의미를 넘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아성찰 여행으로 알려지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예비 순례자들 중에서는 유독 혼자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훌쩍 떠나고 싶어도 안전문제 탓에 언제나 망설여지곤 하는 게 바로 '혼행'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산티아고지만 끝없는 길 위에서 혼자 걷는 게 안전할까 싶어 여행을 미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혼자도 괜찮을지 물었다. 4번의 순례길을 혼자 걸었던 김 작가는 이제껏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겨울이나 비수기보다는 어느 정도 사람이 있을 때 가는 것이 안전상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비수기를 제외하면 혼자 떠나도 함께 걷는 사람이 많아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고. 물론 앞뒤로 한두 명의 순례자를 두고 걷는 것이 비상시에 빠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또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혼자 출발하면 이정표를 제대로 보지 못해 길을 잃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중 한국인은 9번째로 많다. 2016년에만 4500여 명이 넘는 한국인이 순례길을 걸었을 만큼 한국인 여행자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사람이 많아지면 잡음이 생겨날 수밖에 없듯 산티아고에서도 한국인에 대한 원성이 새어 나오고 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 단체여행객 수십 명이 알베르게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등 비매너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다 같이 밥을 해 먹는 공동체 문화, 음주 문화가 순례길 위에서까지 발현된 탓이다. 김 작가는 이에 대해 "순례길에서의 기본예절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포함해서예요. 구조물에 낙서하지 않기, 단체로 부엌 점령하지 않기, 설거지 꼭 하기, 숙소에서 너무 큰 소리로 대화하지 않기. 정말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아울러 알베르게 중에서도 정해진 숙박비용 없이 기부 형태로 운영되는 숙소가 있다. 순례자가 원하는 만큼 돈을 내고 묵어가는 방식이다. 이때 아예 돈을 내지 않거나 너무 적은 금액을 내는 것도 당연히 지양해야 할 일 중 하나다.

'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길을 걷다 마주칠 때마다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다. 스페인어로 '좋은 길 되세요'를 뜻하는 이 말은 순례자들의 끈끈한 정으로 묶인 산티아고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의 또 다른 묘미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순례자들과의 만남이다. 김 작가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한뜻으로 스스럼없이 만나고 친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라며 "힘든 여정을 함께해서 그런지 전우애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주친 순례자들에게 직접 만든 엽서에 편지를 써 선물로 주며 인연을 만들어왔다. 먼저 웃으며 인사하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순례길이 한층 더 즐거워질 것이라는 게 김 작가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산티아고 예비 순례자들을 위해 현실적이지만 핵심이 될 말을 남겼다.

"순례길을 걷는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꿈이 생긴다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광장에 도착했을 때 오히려 덤덤하듯 현실로 돌아오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길을 걸으며 오로지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평생 잊지 못할 값진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 그런 걸 얻을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처음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 고민을 했을 때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었는데 이젠 제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가라'라고요."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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