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아이돌 같지 않은 틴아이돌 가수 박혜성이 당시 10대 소녀들의 책받침을 도배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미스터리지만 그 해답은 당시 박혜성의 경쟁자였던 '스잔'의 주인공 김승진을 통해 풀 수 있다. 안쓰러울 정도로 빈약한 가창력, 어설픈 카메라 시선으로 아마추어리즘을 몸소 실천한 김승진은 박혜성에겐 유리한 비교대상이었다. '모 아니면 도'라는 10대들의 분기탱천하는 결단력은 '김승진 아니면 박혜성'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에서 박혜성은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었다. 그 중간의 어중간한 회색분자는 용납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은 박혜성에게 수지타산이 맞는 결과를 낳았다.
카랑카랑한 중성의 음색, 일본 연예인처럼 생긴 외모의 박혜성은 김승진의 성공과 반대의 방법을 택했다. 영어 이름의 제목을 가진 발라드 '스잔'으로 등장한 김승진과는 달리 박혜성은 우리 이름을 가진 여주인공 제목인 댄스곡 '경아'로 데뷔했다. 모든 것이 대비되는 효과를 의식한 결과다. 리듬을 강조해 경쾌함을 부각한 '경아'는 트로트의 바탕 위에 만들어진 부담스럽지 않은 댄스 노래였기에 10대는 물론 중년층에게도 어필하며 그해 10대 가수에 오르는 성공을 획득할 수 있었다.
1984년에 모델로 활동을 시작한 박혜성은 1986년에 '경아'가 수록된 1집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그 여세를 몰아 1987년에는 '도시의 삐에로'를 타이틀곡으로 내건 소포모어 음반으로 인기를 연장했고 동시에 KBS의 청춘 드라마 < 사랑이 꽃피는 나무 >에 가수 지망생으로 '진짜' 연기를 선보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음반 제작, 작곡가, 뮤지컬 등 음악에 관련한 거의 모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