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검은 땅 가고시마, 삼나무에 내리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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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3.22. 오전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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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품은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시의 타마테바코온천. 멀리 카이몬산이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기리시마·묘켄 코스 초입서 만난 개나리꽃. /사진=박정웅 기자
봄은 바다를 건너온다. 일본 열도의 남쪽, 규슈의 봄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편이다. 특히 태평양 외해를 마주한 가고시마현의 봄은 빠르다. 울창한 삼나무 삼림을 배경으로 동백, 유채, 매화, 진달래, 왕벚 등 봄꽃이 뜸 들일 새 없이 핀다. 너른 태평양으로 향하는 가고시마만의 활화산인 사쿠라지마섬의 왕벚은 섬의 이름값을 한다. 또 열도의 철도 최남단역인 니이오야마역을 나와 걷는 올레길엔 유채를 비롯한 봄꽃이 지천이다. 기점인 원추형의 가이몬산(카이몬산)은 올레꾼(걷기여행객)의 느릿한 걸음을 지켜본다.

◆봄 맞은 가고시마 올레

묘켄 기리시마산의 삼나무숲. /사진=박정웅 기자
기리시마·묘켄 코스 초입에서 만난 봄꽃. /사진=박정웅 기자
기리시마·묘켄 코스 초입서 만난 비파. /사진=박정웅 기자
삼나무는 일본의 특산종이다. 열도 어디를 가도 만나는 게 삼나무다. 규슈올레길에 나선 가고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나무는 마을, 들판, 계곡을 가리지 않는다. 눈만 돌리면 온통 삼나무 천지다. 규슈올레는 어쩌면 삼나무숲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고시마현에는 제주올레와 함께 개발한 코스가 3곳 있다. 기리시마·묘켄(묘겐), 이부스키·카이몬(가이몬), 이즈미 코스다. 이중 기리시마·묘켄과 이부스키·카이몬의 맛을 살짝 봤다. 코스의 초입이나 구간 언저리에서 열도의 봄을 만났다. 만개한 봄꽃을 보기엔 다소 늦은 감도 있었다. 태평양을 낀 이부스키·카이몬은 봄의 시침이 이미 지난 듯해서다. 하지만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이라는 기리시마산의 기리시마·묘켄에서는 사정이 좀 달랐다. 바다와는 좀 거리를 둔 고원분지인 탓에 다양한 봄꽃이 한창이었다.

기리시마·묘켄 코스의 시작점인 현수교. 오른쪽엔 올레길을 알리는 표식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기리시마·묘켄 코스는 일본 100대 명산의 하나인 기리시마산의 속살을 파고든다.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다졌다는 사카모토 료마(1836~1867)가 그의 부인 오료와 신혼여행차 걸었던 길로도 유명하다. 료마는 이곳을 걸으면서 스스로 ‘허니문’이라는 영어단어를 썼다고 한다. 코스의 시작점인 묘켄 온천은 깊은 골짜기 사이에 자리한 유명한 온천휴양지다. 특히 탕치(湯治·온천으로 치료하는 온천요법) 명소였다 한다.

기리시마·묘켄 코스의 종점인 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으로 내려가는 비탈 구간. /사진=박정웅 기자
기리시마·묘켄 코스의 종점. 사카모토 료마와 그의 부인 오료의 사진을 담는 탐방객들. 이 코스는 '료마의 길'로도 통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기리시마·묘켄 코스는 묘켄의 아모리강(天降川) 현수교에서 시작된다. 온천가를 흐르는 아모리강의 계곡 풍광은 고즈넉하다. 빼곡한 삼림이 건네는 청량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수교인 천강교, 소박한 찻집 등 망중한을 즐길 데가 많다. 코스의 종점은 료마공원이다. 무료로 운영되는 족욕탕이 있어 걷기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좋다.

일본의 최남단 철도역인 니시오야마(西大山馬尺) 전경. 멀리 원추형의 카이몬산이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이부스키·카이몬은 일본의 최남단 철도역인 니시오야마(西大山馬尺)에서 출발한다. 역사 규모는 매우 작지만 찾는 이가 많다. 최남단역을 나타내는 상징물을 두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객차 한 두량만 딸랑 달고 다니는 풍경은 그림엽서 같다. 너른 들판을 지나면 태평양이다. 들판엔 유채를 비롯한 들꽃이 곱게 피었다. 나가사키바나곶은 화산지형의 검은 모래가 눈에 띈다. 원추형의 카이몬산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코스가 평탄해 가족단위 여행객이 걷기에 좋다. 

가고시마의 한 산에서 화산가스가 분출된 듯 가스구름이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기리시마·묘켄 코스
묘켄온천가-와케유(1.0㎞)-이누카이노타키폭포(2.0㎞)-산길·강길(5.0㎞)-와케신사(7.0㎞)-료마의 산책길(산길)-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11㎞)

☞이부스키·카이몬 코스
니시오야마역-소나무숲(3.2㎞)-레저센터 카이몬(5.1㎞)-가와지리해안(5.6㎞)-가와지리어항(6.1㎞)-가이몬 산록 허브원(7.4㎞)-히가시가이몬역(9.5㎞)-가미이케(11㎞)-히라키키 신사(12.6㎞)-가이몬역(12.9㎞)

◆관음보살과 가미카제, 그리고 세계유산

지란평화공원에 전시된 태평양전쟁 당시 피탄 투성이의 전투기. /사진=박정웅 기자
지란평화공원에 세워진 관음보살상. /사진=박정웅 기자
가고시마에는 아픈 얘기도 있다. 미나미규슈시의 지란평화공원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자살특공대)가 출격한 곳이다. 1941년 일본 육군 비행학교의 지란분교가 자리한 데다. 지란기지는 일본의 심장인 본섬(혼슈)을 방어하는 개념이었다. 패전 막바지, 젊은 부나방(가미카제·자살특공대)들은 이 땅을 박차고 바다로 향했다. 본토의 최남단 기지로서, 바다에서 희생된 이만 1036명이었다. 이중 11명의 조선인도 있었다.

지란평화공원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영화 <호타루>(The Firefly) 기념물. /사진=박정웅 기자.
1036명의 전사자 기록. 이중 <호타루>의 김선재를 비롯한 '조선'(朝鮮) 출신 11명의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지란평화공원 기념관에 전시된 가미카제 유서. 일본은 이러한 유서(혹은 출전결의문)를 중심으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사진=박정웅 기자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영화 <호타루>(The Firefly)는 경북 안동 출신 김선재의 비극을 전한다. 지란평화공원에는 출격하는 가미카제와 이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 조각상이 있다. 지란평화공원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세워져 있다. 관음보살은 또 입장권에도 있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심정으로 모든 이를 구제하고 제도하는 관음보살은 ‘특공평화관음상’(特功平和觀音像)으로 새겨졌다.

일본은 유네스코에 내는 막대한 지원금을 앞세워 전범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작업을 줄기차게 추진했다. 조선인의 강제노역장을 근대산업시설로 탈바꿈해 등재하려 한 군함도(軍艦島)의 사례는 익히 안다. 전범의 역사를 교묘하게 지우려는 행태는 지란평화공원에서 있었다. 2014년 가미카제의 유서 등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 것. ‘관음보살’은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뜻에서 끌어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란평화공원의 뜻은 관음보살의 발원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가고시마 교통·여행팁

사쓰마조의 한 가정식 료칸의 조그만한 노천탕. /사진=박정웅 기자
기리시마신궁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가고시마는 가깝다. 인천서 가고시마공항까지 1시간30분 걸린다. 가고시마공항 주변에는 렌터카 업체가 많다. 공항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대여비용은 저렴한 편이다. 다만 ‘우핸들’ 환경은 매우 낯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길 안내를 서로 돕는 동승자가 있으면 좋다. 대중교통도 정보를 확인하면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노선버스나 관광버스를 눈여겨보자. 가령 기리시마·묘켄 올레의 경우 가고시마공항-하야토역을 오가는 묘켄 노선버스가 있다. 지역 명소들을 연계한 버스 일일 승차권을 챙겨보자. 단체일 경우 관광택시(점보택시)도 있다. 특산물로는 흑소·흑돼지, 라멘, 소주(고구마), 녹차 등이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가고시마공항 안내 데스크나 가고시마현 관광안내소, 홈페이지 등을 참조하자.

규슈(일본)=박정웅 기자 park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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