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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곤의 미제수첩]①“엄마 곧 들어 갈 거야” 포천 매니큐어 살인사건, 범인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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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경찰을 가지고 논다”
“쓰레기더미 위에서 발견된 실종 여중생의 소지품”
“유일한 단서는 범인이 칠한 손톱 매니큐어”

지난 2004년 2월 8일 경찰관들이 실종된 여중생 A 양의 시신이 발견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배수로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04년 2월 8일 경찰관들이 실종된 여중생 A 양의 시신이 발견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배수로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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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제보는 가끔 들어오지만, 결정적 제보는 아직 없는 상황입니다”
경기북부경찰청 미제사건팀 관계자는 15년 전 발생한 ‘포천 매니큐어 살인 사건’에 대해 이같이 담담히 말했다. 포천 매니큐어 살인 사건이란 숨진 채 발견된 A양(당시 15세) 손톱에 매니큐어가 칠해진 채로 발견되면서 붙여진 사건명이다.

사건은 지난 2003년 11월5일 시작된다. 이날 오후 6시20분께 A 양은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어머니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로 “엄마 곧 들어 갈 거야.”고 말한 뒤 학교에서 10분 거리인 집으로 가다 행적이 끊겼다. 당시 A 양은 3시간이 넘도록 집에 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어머니와 통화 직후 전원이 분리돼 꺼져있었다. A 양 부모는 딸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실종신고를 내고 경찰은 바로 수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A 양의 행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신장 155cm, 체중 38kg”, “단발머리에 머리를 뒤로 묶음”, “D 중학교 교복 착용”, “흰색 운동화, 분홍색 머리띠 착용”

A 양 부모가 당시 만든 전단의 내용이다. 부모는 이 전단을 15만 장 만들어 배포하고 딸을 찾는 현수막을 포천시외버스터미널 등에 내걸었다. 하지만 1시간이 흘러도 하루가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딸을 봤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러다 실종 23일만인 11월28일 A 양 집에서 8㎞가량 떨어진 의정부시 민락동과 낙양동 한 도로공사 현장 쓰레기더미 위에서 A양의 가방과 신발, 양말, 교복 넥타이, 노트 등 소지품 13점이 발견됐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범인이 경찰을 가지고 논다는 느낌으로 A 양 소지품을 쓰레기더미 위에 던져놓은 것 같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속옷과 스타킹은 결국 찾지 못했는데 범죄전문가들은 범인이 따로 버렸다기보다 수집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일종의 변태 성욕자가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후 한 달가량이 지난 12월22일 의정부시 민락동 도로 확장공사 현장 인근의 쓰레기더미에서 A양의 휴대전화와 운동화가 발견됐다. 실종 장소에서 15km 떨어진 곳으로 휴대전화는 몸통과 배터리가 분리돼 있었다.

A 양의 소지품만 발견되는 사이 A 양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47일째 행적이 끊긴 상태였다. 당시 A 양의 아버지는 현역 군인으로 소속 부대에 수색을 요청하고 장병들까지 나서 A 양 수색작업에 나섰다.하지만 전단 15만장, 현수막, 경찰은 물론 군인들까지 나서 A 양 수색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당시 A 양의 학교와 집 근처는 물론 포천 야산과 남양주, 구리, 양주, 의정부 일대까지 정밀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A 양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포천 경찰서 관계자가 A 양의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를 감식하고 있다.현재 배수로는 터널 공사로 철거됐다.사진=연합뉴스

포천 경찰서 관계자가 A 양의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를 감식하고 있다.현재 배수로는 터널 공사로 철거됐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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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양 사체 발견, 현장 증거는 없고 단서는 매니큐어가 전부

그러다 사건 발생 96일 만인 2004년 2월8일 경찰은 A양을 발견한다.

당시 A 양을 발견한 경찰은 포천경찰서 남부지구대 소속으로 이날 오전 10시15분께 소흘읍 이동교5리 축석낚시터 맞은 편 배수로 앞을 지나다 사람의 발바닥이 보여 가봤다가 발견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A 양 시신은 옷이 벗겨진 채로 지름 60㎝, 길이 7.6m의 콘크리트 배수로 안에 반듯이 누운 상태였다. 일부는 29인치 TV를 포장한 종이상자로 가려져 있었다. 시신은 부패가 심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 따르면 발견 당시 A 양은 배수관 안으로 발바닥을 밖으로 향한 상태로 누워있었고, 양손은 얼굴 쪽으로 모이고 다리는 배 쪽으로 웅크린 자세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실종됐다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A 양 사건에 언론은 물론 국민적 관심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A 양 시신에서는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시신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는데, A 양은 평소 매니큐어를 칠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현장 주변 요도. 사진=연합뉴스

사건현장 주변 요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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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즉각 매니큐어를 단서로 본격적인 수사를 이어갔다. 경찰은 일단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A양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결과 시신이 심하게 부패해 있어 정확한 사인을 가려내지는 못했다.

또 성폭행 흔적 등에 대해서 국과수는 그런 정황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결박이나 목 졸림 등 외상 흔적도 없었다.

다만 A 양의 시신에 칠해진 매니큐어는 살아있을 때가 아닌 살해된 후에 칠해진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A 양 사건에서 유일한 단서는 매니큐어뿐이었다.

경찰은 매니큐어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판매처 등에 대해 수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또 변태 성욕자나 인근 불량배 등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일부 형사는 범인을 잡고자 하는 일념으로 직접 손톱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해 보기도 했다. 그만큼 당시 형사들은 이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매니큐어 제조회사에 각 매니큐어의 성분을 넘겨받아 빨간 매니큐어를 사간 30대 남성을 추적하기도 했지만, 범죄 혐의점은 찾을 수 없었다.

또 A 양 시신 발견 당시 TV 포장박스가 경기 남양주시의 한 전자제품 매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확인하고 구매자 신원 파악에 나섰지만 역시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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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본부 꾸려 대대적 수사…하지만 장기미제로

이후 경찰은 아예 수사본부를 꾸려 1년간이나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다른 단서나 제보도 없고 당시에는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도 없어 일명 ‘포천 매니큐어 살인 사건’은 결국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당시 경찰은 범인에 대해 △A 양이 학교 인근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 △사체 유기 장소가 찾기 어려운 곳(지리감이 있는 인근 주민)△치밀하고 대담한 범행 수법 △A 양을 납치하면서 위치추적을 막기 위해 휴대폰 배터리를 분리 △사체 유기 현장 등에서 증거를 전혀 남기지 않은 것을 보면 전문지식을 가진 지능범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뜻하지 않은 아픔도 겪었다. A 양 사건을 수사하던 반장이 지난 2004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시 그의 수첩에는 ‘1년간 힘들었다. 못난 사람 만나 고생이 많았다. 싫다 소리도 못 하고 표현하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여전히 이 사건의 진범을 잡기 위해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천 매니큐어 살인 사건’ 등 경기북부 미제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기북부경찰청 미제사건팀 관계자는 “포천 매니큐어 사건은 여전히 수사하고 있다”며 “사건 관련 인물, 제보, 당시 수사 기록 등을 토대로 수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실 규명을 위해 미제사건팀이 계속 수사를 이어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사건은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범인을 검거하면 처벌할 수 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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