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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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64년[1] 12월 14일[2], 충청남도 보령
본관한산 이씨[3]
신체156cm, 46kg, O형
소속사후크엔터테인먼트[4]
가족딸 윤양원
학력인천전문대학 환경관리과
데뷔1984년 MBC 강변가요제 「J에게」
팬클럽홍당무
제5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
손현희
이름 없는 새
(1983)
4막5장
J에게
(1984)
마음과 마음
그대 먼곳에
(1985)

1 소개

가창력 본좌급 가수이자, 80년대 중후반을 휩쓴 여가수로 가창력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뤘던 대표적 케이스다. 벽을 뚫을 듯한 쨍한 맑은 두성 고음이 특기이며 동시에 자연스러운 진가성구 전환을 사용한 감정 표현에도 능한, 가창력'을 논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고수.

작사와 작곡에도 능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일례로 영화 왕의 남자에 쓰였던 명곡 <인연>을 포함한 13집의 노래들은 전부 그녀가 작사, 작곡한 것. 그 이후 14집과 15집은 대부분이 자작곡으로 채워졌다. 그녀는 중학교 때 부터 조금씩 곡을 쓰긴 했으나 앨범에 넣지는 못했고[5] 1996년 발표한 10집 '라일락이 질때'부터 본인의 자작곡을 앨범에 수록하기 시작했다.[6]

대표곡은 J에게, 아! 옛날이여, 알고 싶어요, 영, 나 항상 그대를, 아름다운 강산, 달려라 하니, 나의 거리,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한바탕 웃음으로, 인연,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등. 그냥 엄청 많다

2 활동

1984년 제5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7] 그해 MBC 10대가수 가요제 신인상, 최고인기 가요상, 10대가수상을 휩쓴다.[8] 무서운건 이때까지 정규앨범 한장 없이 강변가요제 출전곡인 J에게[9] 하나만으로 휩쓸었다는 것.[10][11] 이때 FM라디오 하루 최다 방송회수 기록을 세운다. MBC-FM에서 하루동안 무려 16번 방송된 것. 한마디로 모든 프로에서 심지어 2번씩도 틀었다는 것. (이후론 PD들이 자체적으로 이런 중복선곡은 피하고 있다고 한다.)[12]

데뷔곡부터 시작해서 6집까지 거의 매 앨범마다 KBS 가요톱10 1위곡[13]을 배출하며 가요톱10 골든컵(5주연속 1위) 수상횟수 역대 2위(4회), 1위횟수 역대 2위(26주)에 랭크,[14] MBC 10대가수 가요제 10대가수상 6년연속 수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6년연속 수상,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5년연속 수상 등 빛나는 최전성기를 보낸다. 보이시한 매력으로 남성팬보다 여성팬을 더 많이 보유한 여가수로도 유명했다. 일명 '언니부대'. 당시 이선희의 무대 영상을 보면 꽃미남 남자 아이돌의 무대에서나 나올 법한 여성팬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흠좀무

1986년 3집 수록곡 '영'의 가요톱10 무대영상. ~~고자성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80년대 중후반을 휩쓸며 승승장구를 달리다 갑자기 1991년 채 서른이 안된 나이에 서울시의회 시의원 선거에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나와 마포구에 출마하여 당선, 활동하기도 했다. 이는 이종찬국가정보원장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새한국당을 창당한 이종찬을 따라 역시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여 야당 의원으로 끝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역시 이종찬이 소속된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후일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 발언한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 부모님 없이 자란 친구로 인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시의원이 되면 내가 그런 부분에서 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출마했던 것으로, 세비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15]

80년대 말부터 이선희의 인기도 조금씩 꺾이게 되는데, 이선희의 보이시함을 좋아했던 소녀팬들이 1988년 이선희와 똑같이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나타난 이상은에게 상당부분 넘어간 것도 있었고, 이전까지 이선희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하거나[16] 사회비판적인 '한바탕 웃음으로'[17]를 타이틀로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었는데[18] 민자당의 얼굴마담이 되어버렸으니... 이 때문에 국민들의 배신감은 컸고, 이후 나이도 차면서 서서히 정상권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본인이 밝혔듯 정치적인 의도가 있기보다는 순진한 가수가 정치권의 공작에 휘말린 것으로 보는 것이 옳겠지만.

1992년에는 8집 앨범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노래인 '어느 조센삐의 극락'을 타이틀곡으로 실었다가 노래 제목의 조센삐(조선 여자를 비하하는 명칭)라는 단어가 되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한 독립운동가에게 고발당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8집 앨범의 타이틀곡을 '조각배'로 변경하고 논란이 된 노래 제목도 '어느 할머니의 극락'으로 바꾸면서 일단락.

1998년에는 11집 앨범 수록곡인 '낯선 바닷가에서'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가 금속으로 된 전등이 기울어 쓰러지면서 머리를 직격하는 바람에 전치 6주 이상의 부상을 입고 수술까지 받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이것 때문에 활동 복귀도 취소되는 등 본인에게 힘든 시기가 되었다. 당시 연예관련 프로에서 이선희가 전등에 머리를 맞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 엄청난 비난을 듣기도 했다.

2001년 5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였던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심지어 먼저 인사를 건네도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굴욕을 겪기도 하다가[19] 게릴라콘서트 현장에는 9217명[20]의 관객이 모이는 선방을 해낸다.

아무튼 그렇게 근근히 활동을 이어가면서 소위 '사그러드는 왕년의 가수' 테크를 탈 뻔 하던 이선희는 꾸준히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면서 자신을 담금질했으며, 2005년 13집 '사춘기'에서 드디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선희 작사.작곡의 타이틀곡 '인연'이 영화 '왕의 남자'의 뮤직비디오에 삽입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앨범의 전체적 퀄리티 역시 역대 이선희의 앨범 중 원톱으로 꼽을 정도로 훌륭하게 뽑아내어, 이선희가 왕년의 인기가수를 넘어 21세기에도 먹히는 창창한 현역이자 훌륭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시발점이 된다.

2006년 4월 백상예술대상 축하공연에서 '인연' 무대영상.

2011년 2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한국 가수로서는 네 번째로 콘서트를 했다. 2011년 5월 21-22일에도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를 보고 온 사람들의 반응은 '역시 이선희!!'였다고 한다.

2011년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시즌 2 멘토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출연 확정. 무난하게 멘토 역할을 해내며 시즌1 멘토 김태원이 제자 백청강과 이태권을 결승에 올렸듯 멘티였던 구자명과 배수정 모두를 결승으로 올렸다. 중간에 배수정과 구자명, 두 제자와 함께 합동무대를 했는데, 그 수많은 지원자를 뚫고 결승까지 올라간 두 사람을 가창력으로 찍어내리며 본좌급의 가창력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구자명과 배수정이 혼신의 힘을 다해 고음을 내는데, 오히려 이선희는 제자들에게 맞춰주며 귀엽다는 표정으로 노래를 하는데도 성량이 너무 커, 방송에는 이선희 목소리밖에 안들렸다

2014년 3월 25일 15집 앨범이 나왔다. 방송출연도 안했는데 타이틀곡인 '그 중에 그대를 만나'가 4월 첫째주 음악중심 2위를 하였다.[21] 2의 전성기 동시대 가수들과 비교해보면 대단한 성적이라 할만하다. 안타깝게 똑같이 방송출연 안한 박효신에게 1위를 내줬다.

2014년 3월 29일, 4월 5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전설로 출연했다. 이선희의 명성을 반증하듯 기라성 같은 후배가수들(임창정, 박정현, 윤민수, 신용재, 바다, 홍경민, 더원, 알리이건 나가수??)이 경연가수로 출연해 이선희를 기렸다. 대중의 관심도도 높았는지 2회분 모두 무한도전을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였다.

2014년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마돈나의 'Like A Virgin',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Woman In love'를 열창했다.(해당 라이브 녹음본) 휘트니의 노래에선 특유의 성량과 고음, 마돈나와 바브라의 노래에선 특유의 무대매너와 음색이 돋보여서 듣기 좋았다는 후기가 쏟아져 나왔다. 2016 The Great 콘서트에선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열창하여 또 한번 그 클래스를 입증하였다. 이로써 항간에 돌던 "이선희에게 팝송은 좀 어려울 것이다."라는 인식을 깨버렸다. 그런데 사실 이미 2004년 2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ABBA의 'Waterloo'와 'Dancing Queen'을 춤과 함께 부르기도 했고, 그 이전에도 꾸준히 TV나 공연 등에서 팝송을 불러왔었던 데다(마이클 잭슨의 'Ben', 마이클 잭슨의 'Maria', 4 Non Blondes의 'What's Up', 빌리 오션의 'Get Outta My Dreams, Get Into My Car'.) 심지어 1989년 영어 가사로만 된 앨범을 발매한 적도 했던 터라 이선희의 올드팬 입장에서는 그런 인식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데, 이선희가 20세기 말부터 많이 등장한 해외 팝 문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가수가 아니고 또한 자신만의 가요 스타일이 대중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지상 팝송과 잘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지도.

2014년 8월 23일 히든 싱어 시즌3 첫방송에 출연하여 모창능력자를 누르고 우승하였다. 양민학살 이 방송분은 시청률 7.181%로 왕중왕전을 제외한 히든 싱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동시에 동시간대 공중파 포함 전체 시청률 1위를 차지하였다.

2014년 10월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가수 부문에서 조용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관련기사

2016년 4월부터 SBS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 중. 정규편성 후 초대 우승자가 되었고 4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결국 5연승의 쾌거를 이루고 규정상 하차[22]사실상 명예졸업를 하게 되었다.

3 대중적 인기

80년대 가수의 대중적 인기의 원톱은 단연 가왕이지만, 여자가수에 한정한다면 원톱은 이선희라는 평이 많다. 다만 앨범발매 및 활동주기가 지금보다 길었던 당시 환경상, 정수라, 나미, 이은하, 민해경, 김완선, 이상은 등의 가수들과 라이벌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23] 그러나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많은 가수들 중 2000년대 이후에도 히트곡을 낸 것은 조용필이선희 정도에 그친다.[24]

이런 평가에 대해 이견도 있는데, 다른 여가수의 팬들은 당대 평가는 서로서로의 전성기가 엇갈리며 서로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최소한 백중세였는데 이선희가 201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고평가 받는다고 주장하곤 한다.[25] 거기다 이승기를 발굴해 낸 스승이라는 점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를 넓히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지는 못한다.[26]

이선희가 당대 여자가수 중 원톱이라는 평가를 하는 쪽이 주로 드는 근거는 당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던 가요순위 프로그램 KBS 가요톱10 수상 실적[27]이고, 원톱까지는 아니고 최고 인기 여가수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쪽은 이선희가 당시 양대 방송사 가요대상인 KBS 가요대축제, MBC 가요대제전에서 대상 수상실적이 없다[28]는 점을 주로 이야기한다.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80년대 중반에서부터 후반까지가 이선희가 전성기를 보낸 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80년대 극후반부터는 이선희의 인기가 꺾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8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윤시내, 80년대에 길게 커리어를 가져갔으며 현재도 평가가 좋은 나미, 80년대 중반부터 성인가요시장을 석권한 주현미, 80년대 후반 댄스시장을 석권한 김완선을 함께 꼽아볼 수 있다. 어찌 됐건 80년대 여가수를 평가한다면 이들 외에도 정수라 민해경 김수희 등 누구를 묶고 빼던 간에 이선희는 빠질 수 없는 탑티어라는 것은 명확하다.[29]

4 가창 스타일

'아! 옛날이여' + '갈등'

연인의 눈물

압도적인 성량의 소유자. 노래할 때 소리가 커질수록 마이크가 입에서 멀어지는걸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계가 고장난다고.[30] 이런 성량 때문에 그에 관련된 일화가 많은데 전남대학교 운동장에서 무대를 가졌는데 그 소리가 건물 두개를 뚫고 도서관까지 들렸다는 일화도 있고, 2002년 월드컵 끝난 후 광화문 일대에서 국민대축제를 할때 세종로 사거리 교보문고 있는데서 공연 구경하던 사람들은 사람 얼굴도 안보이고 다른 사람들 목소리도 안들리는데 유일하게 이선희 노래소리만 들리더라는 일화도 있다. 한 누리꾼은 자신이 군악대로 복무 중 행사를 나갔을 때 이선희가 초청 가수로 왔는데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다 부대 음향 앰프 하나를 날려 먹었다고 증언했다.[31] 아예 신문에 까지 나올 지경이니 성량으로는 이견 없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로 평가된다.

'달려라 하니'

'여우비'

'잘못된 만남' 숨따위는 쉬지않는다

음색의 경우 극도로 맑은 톤인데(이것이 잘 나타난 것이 달려라 하니 주제가이고, 동요도 많이 불렀다. 최근 곡 중에는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OST였던 '여우비'에서 이 음색이 제대로 드러난다.), 이선희 본인은 과거 락덕후였던 적이 있기 때문인지 임재범 같은 탁하고 허스키한 음색을 부러워하는 기색을 비추기도 했다. 그런데 맑은 것도 이정도로 맑으면 오히려 개성일지도 모른다. 이선희의 팬들 중에는 이선희의 이 맑은 음색을 더욱 좋아하는 경우도 많고, 이선희도 최근으로 올수록 성량과 고음보다는 음색과 감성을 강조하는 노래를 더욱 많이 부르는 추세.

기본적으로 80년대에 데뷔한 가수이기 때문에 대표곡들은 8비트 기반의 노래들이고, 또 따라서 현대적인 청자들에게는 올드하게 들릴 수 있다. 80년대 이전의 레전드급 가수들의 노래들이 다소 촌스럽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 8비트 기반의 리듬감 때문. 그런데 이선희의 놀라운 점은 90년대 이후 16비트 기반의 리듬감을 요구하는 노래들도 아무렇지 않게 불러낸다는 점으로,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00년대 이후로는 R&B 등 리듬을 더 쪼개는 곡들도 부르고 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들이 80년대 곡들이기에 평가절하되는 부분. 그 시절의 노래들을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으니... 이처럼 이선희하면 파워풀한 가창력만 떠올라서 가려지기 쉽지만 이선희만큼 다양한 음악을 한 뮤지션도 많지 않다. 국악풍의 '조각배' 등 8집 전곡, 13집에 실린 모던락 스타일의 자작곡 '왜?', 싸이의 곡에 피쳐링한 '안녕히', 타이거 JK가 피쳐링한 14집 수록곡 'You Too' 등이 그 예.

또 이선희의 무서운 점은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도 나이가 들다보면 목이 상하게 되는데 이선희는 먹는 것도 일일이 주의할만큼 목관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지금도 예전 목소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32] 진정한 자기관리의 화신. 30주년 앨범의 타이틀인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절정 부분 브릿지에는 F5(3옥파)라는 어마어마한 고음이 있는데, 그걸 또 라이브에서 불러내고 있다. 고음도 고음이지만 이 노래, 가뜩이나 개마고원처럼 고음이 이어지는 후렴부에 숨 쉬는 데가 없다(...)

마이클 잭슨 부친인 조 잭슨[33]으로부터 미국 데뷔하자고 러브콜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아시아판 잭슨 파이브를 만든다고 조 잭슨이 한국에 직접 와서 오디션 합격하고 안전지대가 만든 앨범까지 다 완성된 상태였는데 결국 시의원을 하게 됐다고. 이선희가 직접 말한 영상

5 기타

이선희의 아버지는 스님(대처승)이었고 불교음악 범패 전수자였다.어머니는 아버지의 제자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큰 절에서 자랐기 때문에 많은 스님들과 함께 지내며 스님들의 불경 독송을 따라하곤 했다고 한다. 어린시절 이선희는 아버지가 스님이고 절에서 산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선희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선희를 좋아하게 되곤 하였다고한다.

동안으로 유명하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 나이 53세(만 51세)다. 오죽하면 강변가요제 때부터 나이를 속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

홍콩 영화배우이자 톱스타였던 故 장국영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장국영이 1989년 내한했을 때 함께 합동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었다. 당시 MC가 장국영에게 이선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묻자 장국영 왈 귀여운 여동생 같다고. 이후 홍콩에 초대받아 장국영이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주윤발 등이 참석한 선상파티에도 초대되어 즐거웠다고 훗날 추억하기도 했다. 장국영이 홍콩에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는걸 보면 장국영이 이선희를 마음에 들어한 모양.

제자들도 길렀는데 이선희의 첫 제자가 바로 조정린이었다. 모창대회에서 조정린을 보고 목소리가 예뻐 스타성과 실력을 겸비한 가수로 키우려 했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는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타성과 실력을 갖춘 그 다음 타자가 이승기였다. 이선희가 소극장에서 밴드 공연을 하던 이승기를 우연히 보고 바로 삘이 와서 제의를 했는데, 처음에 이승기는 이선희가 누군지 몰라 거절했었다고 한다.[34] 하지만 그 뒤에 바로 그 이선희가 제의했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는 깜짝 놀라.. 그 뒤는 아시다시피. 그 밖에 이선희가 유난히 아끼고 좋아하는 후배가수들로는 홍경민, 백지영 등이 있다.특히 홍경민은 불후의 명곡에서 밝혀지기로는 자신과의 약속을 파토낸 적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얘기를 안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홍경민은 '그때 김창환 작곡가와 미팅이 갑자기 잡혔다'며 그 자리에서 받은 곡이 흔들린 우정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그냥 넘어간 이유를 물었는데 이선희의 대답은 나와의 약속을 깰 만큼 중요한 일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고....

콤플렉스로는 다리가 못생겨서 치마나 드레스를 입지 못한다고, 한번 콘서트 때 드레스를 입었더니 관중들이 실망해서 그 뒤로 안입고 있다고 한다.[35] 예외적으로 MBC의 어린이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도로시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때에도 치마를 입고 있었다.[36] 이미 30대 였을텐데 도로시라니…무서운 동안

1992년 음반제작자 겸 자신의 매니저 [37]와 결혼하여 딸을 낳지만 결혼 6년만에 파경, 이후 2006년 6살 연상의 건축사업가와 미국에서 재혼했다.

2016년 5월말 현재, SBS방송국 프로그램인 판타스틱 듀오에서 예진아씨란 예명으로 함께하는 김예진양과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있는 중.

6 디스코그래피

6.1 정규 음반

  • 1985년 1집《아! 옛날이여》 - '아! 옛날이여'(타이틀곡), '갈등',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등
  • 1985년 2집《갈바람》 - '갈바람'(타이틀곡), '연인의 눈물', '괜찮아' 등 [38]
  • 1986년 3집《알고 싶어요》 - '알고 싶어요'(타이틀곡), '영', '어둠은 걷히고', '청아한 사랑' 등
  • 1988년 4집《사랑이 지는 이 자리》: '나 항상 그대를'(타이틀곡), '아름다운 강산',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길을 떠나자' 등 [39]
  • 1989년 5집《한바탕 웃음으로》 - '나의 거리'(타이틀곡), '한바탕 웃음으로',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겨울애상' 등
  • 1990년 6집《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 '왜 나만'(타이틀곡)[40],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등[41]
  • 1991년 7집《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타이틀곡), '추억속을 걷네' 등
  • 1992년 8집《조각배》 - '조각배'(타이틀곡)[42][43]
  • 1994년 9집《한송이 국화》 - '한송이 국화'(타이틀곡) 등
  • 1996년 10집《FIRST LOVE》 - '라일락이 질때'(타이틀곡), '아카라카치' 등 [44]
  • 1998년 11집《Dream of Ruby》 - '너에게 가면'(타이틀곡), '낯선 바닷가에서' 등 [45]
  • 2001년 12집《My Life + Best》 - '이별 소곡'(타이틀곡), '이 노래를 빌려서', 'My Life' 등
  • 2005년 13집《사춘기》 - '인연(동녘바람)'(타이틀곡), '왜?', '사춘기' 등
  • 2009년 14집《사랑아...》 - '사랑아...'(타이틀곡) 등
  • 2014년 15집《SERENDIPITY》 - '그중에 그대를 만나'(타이틀곡)[46][47]

6.2 OST 및 삽입곡

  • 1984년 KBS 수목드라마 《불꽃놀이》 - '불꽃놀이'(오프닝곡)
  • 1985년 MBC 애니메이션 《소공녀 세라》 - '소공녀 세라'(오프닝곡)
  • 1987년 MBC 청소년드라마 《푸른교실》 - '푸른교실'(오프닝곡)
  • 1988년 KBS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 - '달려라 하니'(오프닝곡) [48]
  • 1988년 KBS 애니메이션 《천방지축 하니》 - '천방지축 하니'(오프닝곡), '열세살 나이에 알았어요'(엔딩곡)
  • 1992년 SBS 주말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49]
  • 2000년 MBC 주간시트콤 《깁스 가족》 - '수줍은 고백' [50]
  • 2002년 영화 《몽중인》 - '해바라기 사랑'
  • 2002년 영화 《가문의 영광》 - '나 항상 그대를' [51]
  • 2005년 영화 《왕의 남자》 - '인연' [52]
  • 2009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 '불꽃처럼 나비처럼'
  • 2010년 SBS 수목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 '여우비', '내가 사랑할 사람'
  • 2010년 SBS 수목드라마 《대물》 - '떠나지마'
  1. 1984년 당시 신문이나 TV가이드 같은 방송관련잡지에선 1967년 2월 10일, 또는 3월 10일로 나온 바 있다.
  2. 음력으로는 11월 11일
  3. 한산이씨 화수회에서 확인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여주 이씨 다른 이씨들은 잘못된 정보. 한산 이씨는 충남지방에 인구가 많으며, 보령시에 집성촌이 있다.
  4. 이선희의 매니저 권진영이 대표로 있는 기획사. 이승환의 드림팩토리, 윤종신미스틱 89와 비슷하게 사실상의 이선희의 개인 소속사에 가까운 느낌. 소속 연예인으로는 후술할 이선희의 제자 이승기와 2010년 부터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이서진등이 있다.
  5. 작사라면 몰라도 여자가 작곡을 한다는 것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이다. 70~80년대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천재소녀' 장덕, 심수봉 등 극소수였고, 이후 90년 중반이 되어서야 이상은, 임현정, 김윤아 등이 본격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6. 10집 전곡도 이선희가 작사 작곡 했는데, 그 중에는 이선희가 중학교 때 만들었다는 '성안의 아이'도 수록되어 있다.
  7. 이때 부모님에게 나간 걸 들킬까봐 전날 급히 파마를 했다고. 유달리 촌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 때문.
  8. 사실 최고인기가수상(통칭 가수왕)의 강력한 후보로도 꼽혔으나 가왕의 벽에 막혀 실패했다.
  9. 이 곡은 발표 전에 들어본 사람들(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절대로 뜨지 못한다고 장담했던 곡이다. 그래서 작곡가(이세건)가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던 곡을 이선희가 내가 부르겠다며 주워간 일화가 있다. 참고로 이때가 1981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일이다. 3년 숙성
  10. 실은 J에게를 부른 것은 '4막5장'이라는 이름의 듀엣이었다. 듀엣 멤버였던 임성균씨가 강변가요제 뒤에 군대에 가는 바람에……
  11.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로는 실제 출전 신청은 이선희 혼자 했지만 소속 동아리가 다른 가요제에서 예선 탈락하는 바람에 강변가요제 쪽으로 꼽사리후발 합류한 것이라고 한다.
  12. 여담으로 이 시절 대통령이 J모씨였기 때문에 그 분을 연상시킨다고 방송금지곡이 되지 않을까 하는 농담도 있었다. 실제로 "J~ 아홉시 뉴스에~"라는 식으로 땡전뉴스를 풍자하는데 이 노래가 사용되기도 했었다.
  13. 데뷔곡 'J에게', 2집 '갈바람', 3집 '알고 싶어요', 4집 '나 항상 그대를', 5집 '나의 거리', 5집 '한바탕 웃음으로',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14. 두 부문 모두 역대 1위는 가왕, 공동2위는 발라드의 황제.
  15. 2006년 전까지의 지방의원(광역의원+기초의원)은 실비정도만 받을 수 있는 명예직이었고, 2006년부터 지방자치법이 바뀌어 급여(정확히는 월정수당+여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6. 이 곡은 신중현이 박정희 찬양가를 만들라는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며 대신 만들어낸 곡이다.
  17. '한바탕 웃음으로 모른체 하기엔 이 세상 젊은 한숨이 너무나 깊어 / 한바탕 눈물로 잊어버리기엔 이 세상 젊은 상처가 너무나 커'
  18. 노태우 집권기인 1989년 겁도 없이 오월의 햇살 - 5.18 추모곡 을 부르기도 했다.
  19. 물론 지금 다시 보면 연출티가 팍팍 난다.
  20. 이 블로그에 따르면 역대 19위의 기록.
  21. 여담으로 이날 다른 1위 후보는 박효신임창정으로 2005년 음악중심 방송 시작 이후 거의 드물게 아이돌 가수가 1위 후보에 없었던 회차이기도 하다.
  22. 5연승을 기록하면 하차한다.
  23. 특히 정수라와 라이벌이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이선희와 비견될 정도의 대중적 인기에다 단발머리에 바지만 입는 중성적 이미지, 폭발적인 가창력 등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 故장덕까지 묶여 '여가수 바지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24. 물론 대중적인 히트곡 배출 여부와는 별개로 꾸준하게 음악 활동을 이어가며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뮤지션은 분명히 있다. 예컨대 이상은과 같은 경우는 80년대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지만 9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2010년대까지 음악적 평가가 대단히 높다. 김두수 같은 가수는 결코 히트가수라곤 못하지만 여전히 음악적 평가는 높다.
  25. 또한 이들이 결국 남자가수들에 비해 볼 때 한 수 처진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와 같은 성별차는 90년대 어쩌면 00년대까지 한국 가요계의 고질적인 문제다.
  26. 이선희가 출연하는 방송 특히 예능에서는 거의 이승기가 얼굴을 비추거나 항상 언급이 되곤 했다. 덤으로 이서진까지...
  27. 상술했듯이 이선희보다 골든컵 및 1위 수상횟수가 많은 사람은 역대 남녀 모든 가수를 통틀어 조용필 단 한명 뿐이다.
  28. 80년대에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여가수로는 이정희, 윤시내, 이은하, 정수라, 주현미가 있다. 다만 이선희도 최고인기가요상은 두번 수상했다.
  29. 심수봉은 7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으며 본의 아니게 정권과 관련되며 휴지기가 있었기 때문에 평가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
  30. 장비가 낙후되었던 과거라면 몰라도 최근에는 이런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은 당시의 습관이 배어나오는 거라 보인다.
  31. [1]
  32. 물론 대다수의 다른 가수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얘기지 예전과 최근 영상을 직접 비교해보면 분명 음색의 차이가 있긴 하다. 이 영상을 보면 20대의 목소리는 쭉 뻗고 카랑카랑하다면 40대에는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중후하다.
  33. 마이클 잭슨 아버지(...)가 직업이 아니고, 잭슨 파이브의 일원으로 마이클 잭슨을 데뷔시킨 프로듀서다. 여담으로 그 때 얼마나 굴려댔는지 마이클 잭슨이 트라우마가 생겨 이후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34. 그 당시 이승기는 성적이 떨어져서 공부에 전념할 생각이었다.사실 그냥 세대차이가 많이 나서 모른거다. 자세한 것은 항목참조
  35. 또 무릎팍 도사에서 말하길, 언니팬이 많았는데, 관중도 실망한 것도 있었지만, 언니팬들이 자신의 치마 입은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이건 아니지~!"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좌절했다며 우스갯 소리로 말하였다
  36. 이 때 '이선희가 치마를 입는다!'라는 게 언론에 특필기사로 떴다
  37. '갈등', '나의 거리'등의 히트곡을 쓰며 주목받았다.
  38. 타이틀곡인 '갈바람'이 김연자의 노래와 표절 시비가 생겨서 후렴 부분을 수정해서 재발매한 흑역사가 있다. 후속곡인 '괜찮아'가 높은 순위를 기록하여 인기를 끌었으나, 전반적으로 이선희 전성기의 앨범 치고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괜찮아' 같은 경우, 일부 방송에서 반말투의 가사와 제목으로 인해 '괜찮아요'라고 표기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39. CD 발매가 이뤄졌는데, 이선희 4집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이선희 베스트'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40. 원래 타이틀곡이었던 곡이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활동도 짧게 들어간 상태여서 영상 자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
  41. 이 노래는 후속곡으로 활동하고 나서 음반 뿐만 아니라 방송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후일 인터넷에 올라온 어떤 네티즌의 찰진 리뷰(…)로 인해 젊은이들에게 재조명 받기도 했다. 불후의 명곡 2 이선희 편에선 이 노래를 박정현이 부르며 선배에게 헌사했다.
  42. 원래 타이틀곡은 '조각배'가 아니라, '어느 할머니의 극락' 이었으나, 원래 제목 '어느 조센삐의 극락'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제목 뿐만 아니라 타이틀도 바꿔야 했다.
  43. 국악을 접목한 곡들로 채운 실험적인 앨범.
  44. 타이틀곡인 '라일락이 질때'를 비롯한 이선희의 자작곡을 처음으로 실은 앨범이다.
  45. 신대철, 김영석, 조장혁 등 젊은 가수들과의 호흡으로 완성한 락발라드 앨범. 하지만 위에 서술한 사건으로 인해 활동이 짧았다.
  46. PV 내용이 무척 감동적. 그녀의 오래된 팬들과 함께한 특별한 PV.
  47. 공개 직후 각종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싹쓸이 했으며 빠른 차트 아웃없이 서서히 순위가 내려갔다. 8월 무렵엔 50~70위권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히든싱어3 출연 효과로 다시 반등하여 20~30위권으로 치솟았으며 2014년 말까지 차트에 머물렀다. 2014년 연간순위는 20위권 안쪽으로 굉장한 성과를 냈다.
  48. 훗날 정여진도 불렀다.
  49. 1991년 발표한 이선희 7집의 타이틀곡. 이선희가 드라마에 본인 역으로 특별출연해 극중 작곡가인 윤명노(최재성 분)에게서 이 곡을 받아 부르는 것으로 나온다.
  50. 이선희와 똑같이 생긴 모창가수 이선휘(본명 정복순) 역으로 특별출연. 극중 복순이 무대에서 떨어져 팔을 다치고 입원했을 때 병원 식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위해 이선희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이후 멜로디와 가사를 다듬어 2005년 발표한 이선희 13집에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51. 1988년 발표한 이선희 4집의 타이틀곡. 이선희의 원곡이 삽입된 것은 아니고 극중 여주인공인 장진경(김정은 분)이 피아노를 치면서 이 곡을 불렀는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특히 이 장면이 크게 히트하면서 원곡도 덩달아 재조명을 받았다.
  52. 2005년 발표한 이선희 13집의 타이틀곡을 이 영화 뮤직비디오에 삽입하여 히트. 이 때문에 마치 《왕의 남자》 주제곡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실제로 왕의 남자 OST 앨범에는 없는 트랙이며, 이선희가 2003년 방영된 MBC 드라마 《다모》에 감동을 받고 만든 노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