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간 속속들이 체험한 북한사회의 변화상 흥미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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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3.26. 오후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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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오스트리아 빈 대학 교수 뤼디거 프랑크

뤼디거 프랑크 교수가 평양 인민대학습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프랑크 교수 제공


뤼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빈 대학 동아시아학과장은 2012년부터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북한 전문 여행사 ‘폴리티칼 투어’와 일해왔다. 북한 전문가 자격으로 여행단 일정을 함께했다. 북한 공식 가이드들의 설명을 보충해주기도 하고 북한 가이드는 대개 빠지는 식사 자리에서 북한 역사나 체제의 특성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다.

그의 첫 북한 방문은 김일성종합대에서 한국어 연수를 했던 1991년이었다. 그때 6개월 동안 평양에 머물렀다. 가장 최근 방북은 지난해 5월이다. 북 여행단에 합류했던 지난 7년 동안은 매년 한두 차례 북한을 찾았단다. 그러니까 그가 지난해 2월 독일어로 낸 북한 여행기 <북한 여행하는 중에:줄타기>는 자신의 28년 북한 여행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최근 이 책의 한국어 번역판 <북한 여행>(한겨레출판, 안인희 옮김)을 낸 저자를 지난 23일 전자우편으로 만났다.

책은 북한 여행안내서다. 출입국 절차는 물론 숙소나 음식, 교통, 쇼핑과 주요 관광명소에 대한 친절한 소개가 이어진다. 북한 여행에 흥미가 있는 서방인들이 잠재적 독자이지만 그들이나 남한 동족이나 북한 땅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우리한테 북한은 여전히 금단의 땅이지만 (미국인 아닌) 서방인들은 북 전문 여행사를 통하면 큰 어려움 없이 북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뤼디거 프랑크 교수. 프랑크 교수 제공


저자는 독일 두이스부르크 대학에서 한국 경제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방문 교수도 지냈다. 현재 세계경제포럼에서 ‘한국에 관한 글로벌어젠다위원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69년 북한 우방이던 옛 동독 땅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옛 소련으로 가 4년간 살기도 했다. 한국어판 추천사를 쓴 박노자 교수 말처럼 ‘외부자이면서 어느 정도는 내부자 시선으로’ 북한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이유이다.

책의 미덕은 지난 28년간 북 변화상에 대한 저자의 섬세하고 예민한 관찰과 최대한 공정한 시선을 유지하려는 태도다. 예를 하나 들자. 황해남도 신천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쟁 범죄를 기억할 의도로 세운 박물관이 있다. 저자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전과 후 박물관의 변화에 주목했다. 새 박물관에선 미군의 성폭력 범죄가 훨씬 분명하게 드러나 있단다.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북 가이드들에게서 답을 구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이런 추정만 한다. ‘남성 위주 문화에선 적에게 자기 여자를 지킬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수치로 여겨졌다. (김정은 이후 변화는) 남성이 느끼는 이런 수치심보다 (성폭력 범죄 강조로 얻게 될) 적에 대한 증오심 유발이 더 높은 등급의 가치를 갖게 된 것은 아닐까.’

평양 만수대 언덕에 나란히 선 두 지도자(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 관찰기도 흥미롭다. 그는 2012년 4월 김정일 동상 제막식 때 북에 있었다. ‘제막식 때 김정일 동상은 작업복 위에 서양식 코트 차림이었다. 그해 9월에 가 보니 김정일 동상이 흰 천을 씌운 비계 속으로 사라졌다. 이듬해 봄에 다시 가 보니 김정일 동상이 서양식 코트 대신 겨울이면 그가 입고 다니던 파카 차림으로 바뀌었다.’

한국 전쟁 기간 미군의 전쟁 범죄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세운 신천 박물관 전시 모습. “김정은 이후 새로 단장한 박물관에선 한국인과 흑인 병사도 가해자로 등장해요.” 한겨레출판 제공


2012년 4월 김정일 동상(오른쪽)을 세웠을 때 김정일은 서양식 코트 차림이었으나 다음해 봄에 갔을 땐 파카 차림으로 바뀌었단다. 한겨레출판 제공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선 직원들의 비판적이고 독자적인 사유에 흥미를 느낀다. “호기심에 차서 별로 삼가는 태도도 없이 세계의 사정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대학습당이란 과장된 이름이 정말로 그 명예를 얻죠.” 김일성 광장에는 빛바랜 흰 색으로 바닥에 표시된 표지들이 있다. 수천 명이 되는 행진 참가자들에게 정확한 정렬 지점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다. 저자는 그 표지 바로 아래에 쇼핑센터가 있다고 알려준다. ‘위에는 북 체제가 계속 눈에 보이는 행진을 하지만, 아래서는 거침없이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

북 여행단에 합류한 경위를 묻자 “북한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오랜 친구의 권유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여행단 참여에 회의적이었지만 바로 생각이 바뀌었죠. 여행은 제가 북한을 공부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롭고 심지어 즐겁기도 한 수단이더군요. 실제 여행은 제가 북한 현장 연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 통로이죠.”

북 여행단은 대개 10명 이내다. “대부분 고학력자죠. 변호사나 의사 사업가 심지어 글로벌 기업의 고위 임원들도 있어요.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죠.” 독일어권만 해도 북 여행을 중개하는 작은 여행사들이 20개 이상 된단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 독일 언론에서 북한 관련 보도가 쏟아졌어요. 많은 독일 사람들이 자기 눈으로 북한을 보기를 원했죠. 북한에 대한 정치적 식견을 얻고 싶어했죠. 여행사들이 많이 생긴 이유입니다. 그렇다 해도 북한을 찾는 독일 관광객은 연간 천명을 넘지 못해요.”

1991년 김일성대학 한국어 연수부터
최근 7년간 매년 북한여행 가이드로
판문점에서 라선경제특구까지 ‘속살’
독어판 이어 한글판 ‘북한여행’ 출간


한국·미국인 빼고 누구나 여행 가능
“남북 ‘환상’ 버리고 직접 교류 필요”


북한 여행 뒤 서방 관광객의 반응을 묻자 그는 ‘북한을 겨냥한 서방 쪽 선전전의 실패’를 지적했다. “대부분 관광객이 미디어로부터 얻었던 북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그들이 본 것이 다른 데 대해 자주 충격을 받아요. 관광객 대부분은 북한에 긍정적인 뭔가가 있다는 기대 없이 북한에 옵니다. 서방이 북을 어둡고 더럽고 음울한 곳이라고 묘사할 때 북한이 그런 묘사는 틀렸다고 다른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죠. 북 인권이나 핵 위협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풀고 싶다면 북한에 대해 좀더 현실적인 그림을 제시할 필요가 있어요.”

프랑크 교수가 북한 여행지 중 가장 좋아한다는 개성 구도심 모습. 이 광경을 보면서 “아름다웠던 한국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고 했다. 한겨레출판 제공


프랑크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북 숙소인 개성 민속려관 모습. 한겨레출판 제공


북한 동해안의 한 민박숙소. 한겨레출판 제공
그는 판문점과 개성에서 북한 최북단 국경지대와 라선 경제특구까지 북한 땅 곳곳의 속살을 헤집었다. 그가 꼽는 북한 최고 여행지는? “개성 자남산 북서쪽입니다. 거기서 유서 깊은 도시 개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개성 경치를 보면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어요. 개성은 판문점에 가까워 한국전 때 폭격을 피할 수 있었죠. 고건축물이 많아요. 라선 경제특구도 좋아해요. 북한에 규제가 줄고 글로벌 기업이 늘어났을 때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앞서 보여주는 곳이죠.”

북을 처음 찾는 여행객의 선호는 다르단다. “여행 동기가 대부분 정치적 관심이기에 정치적 성격을 띈 공간에 관심을 많이 보입니다. 판문점이 대표적이죠.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면서 서방 티브이에 자주 나와 익숙한 곳이죠. 제가 들은 가장 격정적인 반응은 아리랑 축전을 본 뒤였죠. 하지만 대부분은 북 여행 전체가 인상적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한 공간을 대기 어렵다고 합니다.”

북 여행이 주는 ‘최고의 기쁨’을 묻자 그는 “북 여행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기쁨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덧붙였다. “북 여행에서 시장화나 상업화의 진전을 볼 때 행복합니다. 북에 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것을 봐요. 자동차나 주유소가 늘었거나 새 상점이나 자전거 대여소가 보이기도 하죠. 북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거나 전쟁 위험을 제거하는 최선의 방법은 경제 발전이죠. 이게 북한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입니다. 북한 경제의 진전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며 제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이죠.”

북 경제특구 라선의 한 호텔 앞에서 열린 콘서트 모습. 북한에서 이렇게 가까이 많은 사람들을 보는 일은 드물단다. 한겨레출판 제공


지난 28년 북한의 가장 큰 변화를 묻자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정치적 배경의 영향력이 줄어든 점이고 다른 하나는 400만 혹은 그 이상 중산층의 등장이라고 했다. “처음 북에 갔을 때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할 수 없었죠. 당원 혹은 연줄이 있거나 출신 성분이 좋아야 가능했어요. 21세기에 큰 변화가 나타났죠. 김정일 체제에서 시작돼 김정은 체제로 이어지며 나타난 변화입니다. 지금은 돈이 있으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의 북한은 어떤 측면에서 ‘정상’ 국가입니다. 혁명 열사 손자와 가까운 사이라는 게 상품을 구하는 데 큰 의미가 없어요. 돈만 있으면 됩니다. 물론 돈을 버는 데는 정치적 배경이 활용될 수 있겠죠. 북의 옛 엘리트들 일부가 여전히 새로운 엘리트이기도 한 이유죠. 중산층 출현은 지난 20~30년 동안 북한의 가장 중요한 변화의 하나입니다. 4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상층도 하층도 아닙니다. 이들 중산층 대부분은 평양 등 도시에서 살죠. 휴대폰이나 전기 자전거가 있고 생활 수준도 괜찮아요. 외화도 구할 수 있죠. 바깥 돌아가는 사정도 잘 알아요. 이런 경제력 덕에 자신감도 있어요.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잃고 싶어하지 않아요. 제2의 한국전쟁에도 흥미가 없어요. 돈을 벌기를 원하고 자식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김정은의 정책은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어요. 더욱이 이 중산층의 삶은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요. 가난한 이웃이 그들이 자신보다 더 잘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가난한 주민들은 중산층을 보고 좌절(왜 나는 가난할까?)하거나 낙관적(나도 잘살 수 있어.) 태도를 가질 수 있어요. 북 사회는 매우 역동적이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죠.”

그가 이끄는 빈 대학 동아시아학과에는 연구자 65명과 학생 1500여 명이 속해 있다. “2003년부터 빈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북한의 경제 정치 사회’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어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김일성종합대 6개월 연수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단다. “91년에는 평양 주민들과 접촉이 매우 제한적이었죠. 그때 매우 큰 좌절감을 느꼈어요. 애초 의도했던 것만큼 한국어를 배우지 못했어요. 지금 평양에 있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상황이 많이 개선됐다고 하더군요.”

한국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독일 통일(1990년) 이후라고 했다. “통독 뒤 독일 땅에 한국 경제 전문가가 드물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내가 한국 경제 전문가가 돼보자 맘먹었죠.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흥미로워요. 한국이 경제 성장을 달성한 속도와 그걸 위해 치른 정치 사회적 대가에 특히 관심이 갔어요. 저는 또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인이잖아요. 한국에 흥미가 있을 수밖에 없죠.”

<북한 여행> 한국어판 표지. 지난해 2월 출간한 독일어판은 지금껏 1만 권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독일어판 제목을 물었더니 프랑크 교수는 정확한 번역은 힘들고 대략 ‘북한 여행하는 중에:줄타기’란 뜻이라고 했다. “일종의 단어놀이이죠. 독일어 ‘Gratwanderung’가 ‘줄타기하다’와 ‘암벽을 걷다’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거든요. 한국은 산악 지형이기도 하죠.”
지난해 평창올림픽 때 “남한 대통령이 워싱턴이나 베이징의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남북 관계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도 했다. “한국의 운명은 한국인이 결정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은 가이드가 아니라 파트너로서 환영받아야 합니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말한 통일 대박은 크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왜? 그는 6가지 이유를 들었다. “중국과 직접 국경선이 맞닿는다는 것은 한국에 거대한 수출 시장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중국 수출 물류비용도 줄일 수 있죠. 둘째로 관계 진전은 국제 투자자들의 남한 투자가 덜 위험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외국인 투자를 더 받을 수 있죠. 북한엔 무연탄이나 자철석, 금과 같은 광물 자원이 풍부해요. 한국은 원자재 수입을 줄일 수 있어요. 넷째로 북한엔 밥솥이나 보험 등 거의 모든 물건이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2500만 주민이 있어요. 이들은 한국어도 잘해요. 한국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거대한 확장이 가능하죠. 또 북한은 도로 철도 통신 전기 분야에서 거대한 투자가 필요해요. 한국 대기업에 거대한 투자 기회죠. 마지막으로 북한엔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노동력이 풍부해요. 이는 남한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할 수 있죠. 노동비용도 줄이고요.”

남한에서 가장 시급한 통일 준비 프로젝트를 꼽자면? “북한에서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걸 위해 집중적이고 정규적인 대면 접촉과 방문이 필요해요. 남북 경제협력 프로젝트가 그런 예이죠. 이는 한국인들의 상호 이해를 도울 겁니다. 남과 북 경계를 넘어 서로 여행하는 사업도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목표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비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한국인들은 서로에 대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이게 크고 작은 한반도 이슈들을 푸는 토대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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