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10년 진시황제가 죽고 막내아들 호해가 진의 2세 황제로 즉위하였을 때, 농민출신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亂)이 일어났다. 진승과 오광은 ‘황후장상(皇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나’라는 기치를 내세웠지만 난은 실패하여 죽음을 맞이하고 이들의 반란이 진의 멸망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목드라마 ‘상속자들’. ⓒsbs

그 때나 지금이나 황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사람의 신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렷다.

그런데 인공위성이 달나라를 가는 시대에 황후장상의 씨를 논하는 드라마가 있으니 sbs의 수목드라마 ‘상속자들’이다. ‘상속자들’은 명문사립학교인 제국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인데 제국고에는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다.

첫째는 최영도(김우빈 분)나 유라헬(김지원 분) 강예솔(전수진 분) 같이, 기업을 물려받을 진정한 재벌 2, 3세 집단인 '경영상속자집단'이다.

두 번째는 김탄(이민호 분)이나 이보나(크리스탈 분)처럼 경영에서는 배제됐지만 태어날 때부터 대주주인 ‘주식상속자집단’이다.

세 번째는 조명수(박형식 분)와 이효신(강하늘 분) 등은 돈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장관, 국회의원, 법조계, 의학계, 학자, 정치인과 같은 명예직 자제 집단인 '명예상속자집단'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차은상(박신혜 분)이나 윤찬영(강민혁 분) 같이 사회적 이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뽑은 편부모 자녀, 경제적 소외계층 등의 '사회배려자집단'인데 윤찬영이 걸핏하면 스스로를 불가촉천민이라고 한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untouchable)=인도에서의 최하층의 신분으로 하리잔(Harijan)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신분제도로서 카스트가 있는데, 브라만(Brahman), 크샤트리아(Kshatriya), 바이샤(Vaisya), 수드라(Sudra) 등의 4계급으로 나누어 있는데 불가촉천민은 4계급에 속하지 못한 제5계급이다. 인도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담당하며, 거주나 직업 등에서 엄격한 차별대우를 받았다. 1955년에 불가촉천민법이 제정되어 하리잔에 대한 종교, 직업, 사회문화 등 법적인 차별은 금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카스트제도의 영향력은 남아 있어 불가촉천민은 여러 가지로 차별을 받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다.(필자 주)

‘상속자들’에 나오는 사람들. ⓒsbs

‘상속자들’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기획의도에는 ‘명문사립귀족고등학교, ‘제국高’. 교훈은 ‘평등·박애·정의’지만, 애석하게도 그 곳에는 ‘갈등·박해·불의’를 근간으로 하는 네 개의 계급이 존재한다.’고 되어 있다.

‘상속자들’에서 김남윤(정동환 분)은 제국그룹의 회장이고, 제국고는 그의 아내 정지숙(박준금 분)이 맡고 있다. 정지숙은 김남윤의 둘째 부인으로 첫째 부인(사망)이 낳은 아들 김원(최진혁 분)과 첩 한기애(김성령 분)가 낳은 둘째 아들 김탄(이민호 분)이 있다.

그리고 이 집에는 말 못하는 언어장애인 가사도우미 박희남(김미경 분)이 둘째 딸 차은상과 함께 살고 있는데, 김남윤은 차은상을 제국고로 전학을 시켰다. 왜냐하면 차은상이 둘째 아들 김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혼자서 말리는 것 보다는 100사람 즉 제국고 아이들이 김탄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차은상에게 알려 줄 것이므로…….

‘상속자들’에서 차은상은 구질구질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알바천국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은상을 좋아하는 김탄과 차은상을 사이에 두고 시시콜콜 실랑이를 벌이는 최영도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물론 ‘상속자들’은 드라마이고 내용은 청소년들의 순정 만화 같은 신데렐라 판타지이다. 필자는 우연히 가사도우미로 나오는 박희남을 보고 왜 무엇 때문에 언어장애인이 되었을까 싶어서 ‘상속자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언어장애인이 된 원인이나 이유는 아직 잘 알 수가 없다.

체외용인공후두. ⓒ로그스테크

그런데 박희남이 말은 못하지만 듣기는 잘 하므로 누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수첩에다 글을 쓰는데 말을 못하는 사람이 글은 어찌나 빨리 그리고 잘 쓰는지, 더구나 하늘같은 주인 한기애가 절대로 보면 안 되는 혼잣말도 곧잘 쓴다. 도대체 어떤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치면 언어장애인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각장애와 언어장애가 같이 오는데 이는 들을 수 없어서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듣기는 하는데 말을 못하는 언어장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상속자들’에서 박희남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과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의 장애를 보이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말만 못하는 것 같다.

‘상속자들’에서 박희남처럼 언어능력의 장애가 아니라 말만 못하는 언어장애는 혀나 성대 그리고 후두에 이상이 있거나 병이 있어서다. 그런데 단순히 혀나 성대, 후두에 이상이 있다면 자신의 음성을 대신 해줄 음성합성기 즉 체외용인공후두를 이용하고 있다. (성대와 후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성대는 후두를 구성하는 부분으로 후두에 포함된다. -필자 주)

후두암으로 성대를 적출하게 되면 식도발성법을 배우기도 해서 예전에는 이 같은 후두상실자들의 모임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요즘 나오는 ‘체외용인공후두’는 성대 역할을 제공해 주는 장애인 보장구로 보건복지부의 ‘보장구 건강보험급여(의료급여) 적용’을 받는데 기한은 5년이고 건강보험에서는 40만원을 지원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박희남은 입주 가사도우미이자 한부모가정이다. 제국그룹 회장집 같은 곳에서 가사도우미를 한다면 월급을 얼마나 주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은상은 형편없는 집에서 살았었다.

사회통합전형 지원자격. ⓒ하나고등학교

차은상은 제국고에 사회배려자(사배자)로 들어갔는데, 아직도 서너 개의 알바를 하고 있다. 요즘은 알바라도 급여가 통장으로 들어오므로 알바수입이 있다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되거나 수급비가가 삭감될 것인데 ‘상속자들’에서는 이런 현실은 아랑곳없이 단지 차은상이 가난하고 불쌍하기만 한 것 같다.

차은상은 제국고에 ‘사회배려자’ 즉 사배자로 입학했는데 제국고는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고, 100만원씩이나 교복 값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차은상이 어떻게 제국고를 다닐 수가 있을까.

물론 제국고라는 드라마상의 학교가 아니라 실제 사립고에서도 ‘사회배려자’는 다니고 있다. ‘상속자들’처럼 신분과 계급이 뚜렷하지는 않다 해도 실제로 사립고에 얼마나 많은 사회배려자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지 필자도 잘 몰라서 몇몇 사립고와 교육청으로 문의를 해 보았다. 요즘은 ‘사회배려자’가 아니라 ‘사회통합전형’이라고 하는데 정원의 20%는 ‘사회통합전형’으로 입학하고 있단다.

‘사회통합전형’의 지원자격은 기초생활수급권자, 한부모가족, 차상위계층, 국가보훈대상자, 다문화가족, 북한이탈주민, 특수교육대상자, 장애인자녀, 소년·소녀 가장 등등이다.

‘상속자들’이 청소년을 위한 순정만화 같은 판타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신데렐라 로맨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시청자게시판은 온통 칭찬일색인 것 같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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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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