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희생부활자>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너의길을가라 2017. 10. 1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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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부활자(RV, Resurrected Victims): 억울하게 죽은 뒤 복수를 위해 살아 돌아온 사람.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 물론 '모든' 사자(死者)가 부활하는 건 아니다. 일정한 규칙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 그리고 복수를 하려는 사람만이 죽음의 강을 거슬러 돌아온다.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아 온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미제 사건의 피해자가 희생부활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 되돌아와 못다한 애틋한 감정들을 나눌 거라는 낭만적인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곽경택 감독의 <희생부활자>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검사 진홍(김래원)은 누나인 희정(장영남)에게 엄마 명숙(김해숙)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향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7년 전 자신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셋돈을 전해주기 위해 길을 나섰던 엄마가 오토바이 강도에게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진홍은 그리움과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다. 술도 끊고, 오로지 일에 파묻힌 채 기계처럼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살아서 돌아오다니, 누나의 헛소리가 분명하다. 


이게 웬일인가. 집에 도착한 진홍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분명 죽었던 엄마가 누나와 함께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진홍은 "누구세요?"라고 물어보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비현실적인 일에 이내 할 말을 잃는다. 그런데 곧이어 더욱 놀랄 일이 벌어진다. 음식을 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던 명숙이 '복수'라는 말에 반응하더니 갑자기 칼을 들고 진홍을 죽이려 하는 게 아닌가. 교회 사람들의 도움으로 진홍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한편, 국정원은 빠르게 이 사건에 개입한다. 그리고 명숙을 격리시켜 따로 관리하기 시작한다. 명숙은 세계적으로 89번째 출현한 희생부활자이자 국내에선 첫 번째로 발견된 사례였다. 국정원은 희생부활자가 진범을 공격하고, 복수가 완성된 뒤에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홍을 살인범으로 의심한다. 한편, 진홍은 엄마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진실을 좇아 7년 전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까지 이 사건에 뛰어들면서 이야기는 꼬여가기 시작한다. 


결국 이야기의 초점, 질문의 포인트는 한 곳으로 모여든다. '엄마는 왜 아들을 공격했을까?' 추리는 간단하다. 희생부활자의 존재는 곧 진범의 존재와 동의어가 아닌가. 다시 말하면, 명숙을 죽인 진범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복수를 목적으로 하는 희생부활자는 진범을 공격하므로, 그가 공격하는 대상은 복수의 대상이자 진범이다. 그렇다면 '엄마가 아들을 공격한 이유'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명숙을 죽인 범인이 그의 아들 진홍이란 말인가? 차라리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처럼 <희생부활자>는 관객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신선했던 도입과 달리 영화는 중반으로 향할수록 힘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그 오락가락이 안타까울 정도다. 'RV'라고 하는 신선한 판타지 소재, 김래원과 김해숙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내세우고도 아쉬운 결과물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희생부활자>가 '모성애'라는 결론을 항해 올인하기 때문이다. 올인이 나빴던 게 아니라 손쉽고 진부한 모성애라는 해답에 집착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희생부활자>는 박하익 작가의 소설 『종료되었습니다』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이 '흉악 범죄자에 대한 가장 완전한 심판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면, <희생종결자>는 명숙의 모성애를 중심에 두고 다른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남은 가족한텐 돈보다 중요한 게 죗값이야."라는 진홍의 힘 있는 대사는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모든 죄를 용서하고, 심지어 아들의 죗값마저 치르는 극진한 모성애다. 쫀득쫀득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관객의 입장에선 모성애라는 쉬운 선택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과거 봉준호 감독은 <괴물>(2006)에 '엄마'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솔직히 말해 엄마가 등장하면 괴물을 잡아죽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엄마를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모성애가 지닌 초월적인 힘을 알고 있었던 봉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배제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더>를 통해 모성애를 따로 조명하며, '모든 모성애는 선할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곽경택 감독은 RV라는 소재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발전시키기보다 모성애를 통해 주제의식을 널뛰어버렸다. 


<해바라기>와 SBS <천일의 약속>에 이어 세 번째로 모자(母子) 관계로 만난 김해숙과 김래원은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 특히 김해숙의 연기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 연기에 취하기엔 너무 뻔한, 그래서 뻔뻔할 정도인 전개가 흥을 깬다. 드라마에선 그 어떤 배우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던 성동일의 연기도 영화에선 이상하리만치 어색하다. 장영남과 전혜진도 평이하다. <범죄도시>의 흥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미'가 있으면 관객들이 몰리는 요즘, 241,656명에 그친 관객 수는 <희생부활자>에 대한 가장 정확한 관람평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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