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가 인삼공사를 가볍게 제압하며 우승후보의 면모를 과시했다.

김종민 감독이 이끄는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는 3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7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KGC인삼공사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11,25-18,25-17)으로 완승을 거뒀다. 승점 3점을 챙긴 도로공사는 시즌 승점 23점으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20점)를 제치고 단독 1위로 뛰어 올랐다.

이날 경기는 도로공사가 전체 득실마진 +29를 기록했을 정도로 일방적인 우위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다. 실제로 도로공사의 김종민 감독은 3세트에서 외국인 선수 이바나 네소비치와 이효희 세터를 조기에 교체해 줄 정도로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이 선수 만큼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인삼공사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무려 6개의 블로킹을 성공시킨 V리그 톱클래스 센터 배유나가 그 주인공이다.

센터로 정착하기까지 꽤 긴 시행착오를 겪었던 천재소녀

 입단 초기부터 한 포지션에 정착했다면 배유나는 더 화려한 경력을 쌓았을 것이다.

입단 초기부터 한 포지션에 정착했다면 배유나는 더 화려한 경력을 쌓았을 것이다. ⓒ 한국배구연맹


한일전산여고(현 수원전산여고) 출신의 배유나는 고교시절부터 성인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았다. 당시 배유나에게 붙었던 별명은 '천재소녀'. 배유나를 지명하는 팀은 김연경(상하이)을 데려 갔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처럼 단숨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2006-2007 시즌 최하위에 머물며 1순위 확률이 가장 높았던 KT& 아리엘즈(현 인삼공사)는 배유나를 데려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KT&G에게 미소를 보내지 않았다. 1순위 지명권이 50%의 지명 확률을 가진 KT&G가 이닌 35%의 확률을 가진 GS칼텍스 KIXX에게 돌아간 것이다. 결국 배유나를 중심으로 한 리빌딩을 계획했던 KT&G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고 GS칼텍스는 배구계 전체가 주목하는 특급 유망주를 지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GS칼텍스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세터와 리베로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배유나의 다재다능함에 심취한 GS칼텍스에서 고정 포지션을 정해주지 않고 배유나에게 좌우 날개와 중앙을 옮겨 다니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연경 이후 최고의 재능'으로 꼽히던 배유나는 프로 입단 후 한동안 기대한 만큼의 기량을 뽐내지 못했다.

180cm의 배유나는 국가대표 주전센터가 되기엔 신장이 다소 작고 김연경을 보좌하는 레프트로 활약하기엔 수비가 떨어진다. 결국 남은 자리는 라이트 공격수인데 대표팀의 오른쪽은 '터줏대감' 황연주(현대건설)과 떠오르는 신예 김희진(IBK기업은행 알토스)이 있었다. 결국 고교시절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배유나는 프로 5년 차가 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대표팀에 포함되지 못했다.

런던 올림픽 직후인 2012-2013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센터 자리에 고정된 배유나는 속공 3위(50%)에 오르며 센터로서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 2013-2014 시즌 GS칼텍스의 두 번째 우승에 힘을 보탠 배유나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에 선발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5-2016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얻은 배유나는 10년 동안 활약했던 GS칼텍스를 떠나 도로공사로 이적했다.

속공-블로킹 부문 각각 3위, 도로공사 선두 질주의 주역

 배유나는 이번 시즌 6개 구단 센터들 중 가장 꾸준하고 기복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배유나는 이번 시즌 6개 구단 센터들 중 가장 꾸준하고 기복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배유나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양효진(현대건설), 김수지(기업은행)와 함께 대표팀의 중앙을 지키며 8강 진출에 기여했다. 팀에 복귀한 후 2016-2017 시즌에도 속공4위(46.53%), 블로킹 6위(세트당 0.57개)에 오르며 V리그 정상급 센터다운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문제 등으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도로공사는 최하위에 머물렀고 거액을 투자해 영입한 FA 배유나 역시 팀 부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좋지 않은 팀 성적에도 전 경기에 출전하며 고군분투했던 배유나는 시즌 후 무릎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다행히 수술이 아닌 재활로도 복귀가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여자배구 대표팀은 유력한 주전센터 후보 배유나 없이 4개의 국제대회 일정을 치러야 했다. 결국 천안·넵스컵까지 실전에 나서지 못한 배유나는 2017-2018 시즌이 개막한 후에야 코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재활로 인한 경기 감각 부족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배유나는 빠르게 코트에 적응하며 이번 시즌에도 명불허전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팀이 치른 11경기에 모두 출전하고 있는 배유나는 경기당 평균 12.4득점을 올리며 '쌍포' 이바나와 박정아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특히 속공(49.25%)과 블로킹(세트당 0.82개) 부문에서 각각 3위를 달리고 있다. 배유나가 그 동안 상대적으로 블로킹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3일 인삼공사전에서도 배유나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이날 배유나는 팀 내 최다인 6개의 블로킹을 포함해 66.67%의 높은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며 16득점을 올렸다. 센터 포지션의 배유나가 '토종거포' 박정아(15득점)보다 많은 득점을 올린 것이다. 특히 '인삼공사 공격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알레나 버그스마의 공격을 무려 네 차례나 막아냈다. 배유나에게 꽁꽁 묶인 알레나는 이날 시즌 개막 후 최저득점(12점)에 그치며 부진했다.

도로공사는 지난 시즌 정대영과 배유나라는 리그 정상급 센터진을 보유하고도 팀의 균형이 맞지 않아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바나와 박정아가 가세한 이번 시즌엔 센터들이 굳이 팀 공격을 책임져야 할 필요가 없어졌고 코트에 있는 5명의 공격수들이 시너지를 내면서 성적도 덩달아 좋아지고 있다. 그리고 도로공사 상승세의 중심에는 20대의 끝자락에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배유나가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배구 도드람 2017-2018 V리그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배유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