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랙리스트 1호` 트럼보...유령이 된 영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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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21] 돌턴 트럼보 (영화 작가, 1905~1976)



◆ 아카데미 시상식, 두 개의 장면

1954년 26회 아카데미 시상식,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최우수 각본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그가 "이언 맥리랜 헌터"라고 외치는 순간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헌터에게 각본상 트로피를 안겨준 영화는 '로마의 휴일'이다.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오드리 헵번은 단번에 스타가 됐다.

1999년 71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와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함께 특별공로상 시상자로 단상에 섰다. 둘은 자신들의 스승이기도 한 엘리아 카잔을 호명했다. 엘리아 카잔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워터 프런트'(1954), '에덴의 동쪽'(1955)을 만든 감독이다.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을 발굴하고 로버트 드니로에게 연기를 가르친 할리우드 전설이다. 90세 거장이 부축 받으며 단상에 올랐다. 존경을 담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야 할 순간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객석에 있었던 배우 중 절반만 일어나 박수를 쳤다. 스티븐 스필버그, 짐 캐리는 일어나지 않고 힘없는 박수만 보냈다. 나머지는 무거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45년 시차를 두고 시상식에 오른 커크 더글러스, 이언 맥리랜 헌터, 엘리아 카잔 사이를 연결하는 한 인물이 있다. 그는 11개의 가명 뒤에 숨어 활동하던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다.

반미조사위원회 심문에 끌려나온 트럼보.


◆ "당신은 공산당원인가?"

1950년 미국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미국 국무부에 공산당원 205명이 숨어있다. 나는 그 명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1919년 공식 창당한 미국 공산당은 공장 노동자, 흑인, 소작농의 지지를 받았다. 공산당은 1920년 후반 경제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운동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가 온다. 미국 내 반공 기류가 거세지며 공산당 위상은 크게 흔들린다. 매카시의 폭탄선언으로 공산당은 공식적인 '미국의 적'이 된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닥쳐 이곳저곳에서 '빨갱이 사냥'이 시작됐다. 매카시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건 사회적 사형선고를 의미했다. 찰리 채플린이라는 거대한 예술가마저 매카시즘 그물에 걸려 미국에서 추방됐다.

매카시가 마녀사냥을 공포하기 전에도 이념 검증은 예술가들의 목을 죄어왔다. 1947년 '반미활동 조사위원회'는 영화계 인사 수십 명을 불러들여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은 공산당인가? 아니면 한때 공산당원이었나?". 끝까지 침묵을 지킨 10명은 의회모독죄로 1년간 투옥됐다. 이들은 '할리우드 텐'으로 불렸다. 최초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탄생했다. 영화계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해고했고, 앞으로도 함께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 블랙리스트에 오르고도 계속 썼다

스타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는 '할리우드 텐' 중에서도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공산당에 가입해 영화 스태프들의 처우개선 시위에 참여한 전력이 있었다. 트럼보는 '너는 어느 쪽이냐'는 질문 앞에서 침묵한 대가로 공공의 적이 된다. 블랙리스트 영향력은 갈수록 커졌다. 영화인 수백 명이 명단에 추가로 올랐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누군가는 동료를 밀고하며 현장으로 돌아갔다. 주류의 폭력에 맨몸으로 맞서며 부서진 사람도 있었다. 나머지는 반항도 못하고 폐인이 되거나 목숨을 끊었다.

트럼보는 제4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할 줄 아는 일은 글쓰기뿐이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고도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한다. 암울한 상황에서도 그가 만든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사줄 영화사는 없었다. 그 누구라도 '할리우드 텐'과 어울리면 빨갱이로 몰릴 수 있었다. 트럼보는 친구였던 이언 맥리랜 헌터를 찾아가 그의 이름으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팔아달라고 부탁한다. 트럼보가 넘긴 영화는 '로마의 휴일'이었다.

영화 `브레이브 원` 포스터. 트럼보는 이 작품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 11개 가명 뒤에 숨은 유령작가

트럼보는 B급 영화 제작사 '킹 브러더스'를 찾는다. 자신의 체급과 맞지 않는 곳이었지만 트럼보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일감 그 자체만으로 감지덕지했다. '킹 브러더스'는 트럼보에게 조악한 SF영화, 막장 드라마를 주문했다. 그마저도 트럼보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 수 없었다. 트럼보는 가명을 사용하며 생계형 작가가 됐다. 3일에 영화 한 편을 써야 할 만큼 일감은 많았지만, 대부분 형편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쉴 틈 없이 일해도 보수도 입에 풀칠 할 정도였다. 트럼보는 그렇게 10여 년을 할리우드 뒤꼍에서 유령처럼 일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트럼보는 사고를 쳤다. '킹 브러더스'에서 만든 영화 '브레이브 원'(1956)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는다. '로마의 휴일'에 이어 두 번째 트로피였지만 이번에도 시상식에서 트럼보라는 이름은 들을 수 없었다. 2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은 인물은 로버트 리치다. 이 이름은 트럼보가 사용했던 11개 가명 중 하나다.

트럼보의 삶을 다룬 영화 `트럼보`의 한 장면. 트럼보를 찾아온 커크 더글라스.


◆ 두 번째 아카데미 트로피

'브레이브 원'이 아카데미 트로피를 받았을 때 영화계에선 이 작품의 진짜 작가가 트럼보라는 소문이 퍼졌다. 블랙리스트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트럼보에게 할리우드 대스타가 찾아온다.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헌터에게 '로마의 휴일' 각본상을 건넸던 커크 더글러스다. 제작자로 나선 커크는 자신을 주연배우로 하는 로마 배경 영화 한 편을 준비 중이었다. 커크는 트럼보에게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맡겼다. 자신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젊은 감독도 구했다. 커크가 고른 신참 감독은 훗날 천재 감독으로 불리게 될 스탠리 큐브릭이었다. 트럼보, 커크, 큐브릭이 만나 세상에 나온 영화는 로마시대 노예의 반란을 다룬 '스파르타쿠스'(1960)다.

영화 제작 초기부터 개봉 직전까지 커크는 협박당했다. '트럼보를 해고하지 않으면 당신도 빨갱이로 몰겠다' '재향군인회를 동원해 영화를 보이콧 하겠다'. 커크는 협박을 조롱하듯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돌턴 트럼보 실명을 올린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후 처음으로 트럼보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케네디까지 '스파르타쿠스'를 보고 호평했다. 영화는 대흥행했다. 커크의 등쌀에 밀려 편집권조차 박탈당한 스탠리 큐브릭만 분통해했다. 영화계는 속속 트럼보와 그의 동료들을 다시 기용하겠다고 밝힌다. 블랙리스트가 가루가 되는 순간이었다.

욕조에서 시나리오를 쓴 일화로도 유명한 트럼보.


◆ 상처 가득한 승리

가짜 이름으로 두 번이나 오스카상을 거머쥐며 블랙리스트를 무력화한 천재 작가. 트럼보의 일대기는 그가 쓴 영화만큼이나 극적이다. 트럼보 삶은 해피엔딩으로 보이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길 곳곳엔 깊은 상처가 파여 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후 트럼보는 외출도 제대로 못했다. 대신 집에서 전쟁을 치렀다. 각성제를 먹어가며 하루 18시간 글만 썼다. 살아남으려는 생존의지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툭하면 욕조에 들어가 몇 시간씩 그 안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그는 신경질적인 남편, 무심한 아버지가 됐다. 훗날 트럼보가 다시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때 그는 어두운 시기를 함께 견뎌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언젠가 오스카 트로피를 받게 된다면 가족에게 바치고 싶다고 했다. 매카시즘은 트럼보의 밥벌이를 끊진 못했지만, 10년간 한 가정의 평화를 앗아가는 데는 성공했다.

매카시즘을 기회로 삼은 인물도 있었다.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엘리아 카잔은 동료 영화인들을 밀고하며 주류에 편승했다. 엘리아 카잔은 이 시기 행적 탓에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절반의 박수만 받았다. 다만, 중요한 건 아카데미가 모든 걸 알고도 엘리아 카잔에게 공로상을 안기며 예우했다는 점이다. 영화계 좌파 인사 색출에 앞장선 인물 중엔 월트 디즈니와 로널드 레이건도 있었다. 모두 승승장구했다. 디즈니가 창조한 세계는 오늘날 가장 큰 왕국이 됐고, 영화배우였던 레이건은 훗날 대통령이 된다.

완장을 찬 할리우드 주류와 달리 트럼보와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영화인 대부분은 그대로 사라졌다. 일감이 끊겼고, 재능을 잃었고, 이름은 지워졌다. 블랙리스트가 찢겨진 후에도 돌아오지 못했다. 트럼보는 안간힘으로 버텼고, 겨우 광기의 시대에서 생존했을 뿐이다. '겨우'라는 두 글자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 트럼보의 상처 가득한 승리는 펜은 칼보다 아주 가끔만 강할 뿐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1993년 아카데미는 '로마의 휴일' 트로피를 진짜 주인에게 돌려줬다. 트럼보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난 해였다. 트럼보의 바람대로 아내 클레오가 트로피를 대신 받았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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