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중앙』제1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세현 시인이 6년만에 펴내는 신작시집이다. 그의 첫 시집 『꿈꾸지 않는 자의 행복』(1987)으로부터 『사경을 헤매다』(2005)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은 점 하나가 있다면, 끊임없이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를 몰고 떠돌고,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떠돌고, 음악을 듣고 떠돌고, 사람들 사이에서 떠돈다. 본의 아니게, 말이다. 그가 어딘가 정주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래적인 변방의식의 소산일 수 있겠지만, 그 때문인지 그의 시의 구질은 언제나 직구와 커브의 중간쯤 되는 슬라이더다. (…) 식자우환의 먹물과 고독한 한량의 중간 지점에 그의 시가 놓여 있다. 한량은 죽어도 기생집 울타리 밑에서 죽는다, 는 말처럼 그의 시는 갑갑한 대학 연구실과 허름한 동네 호프집 사이에 심드렁하게 담배 꼬나물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스스로를 생각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어디 있는가. 나는 늘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할 뿐이다.
[추천평]
일부러 다리에 힘을 빼고 걸어야 할 때가 있고, 목에 힘을 빼고 담담하게 노래를 불러야 할 때도 있고, 똑바로 보지 말고 빗봐야 할 때가 있다. 근 30여 년 동안 6권의 시집으로 생의 자리를 베어내었으니, 그 곡절들이 지나간 만큼 관록이 몸에 붙기 마련이다. 김정호가, 김민기가 핏대를 세워 노래 부른 적이 있었던가. 그의 시에 화려한 수사와 기교가 있는가, 감정의 과잉이 있는가.
그의 시의 구질은 언제나 직구와 커브의 중간쯤 되는 슬라이더다. 식자우환의 먹물과 고독한 한량의 중간 지점에 그의 시가 놓여 있다. 한량은 죽어도 기생집 울타리 밑에서 죽는다, 는 말처럼 그의 시는 갑갑한 대학 연구실과 허름한 동네 호프집 사이에 심드렁하게 담배 꼬나물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말을 해야겠다. 그의 시의 발화지점은 늘 날카롭고 위태롭다는 사실. 내가 말이야, 라고 말하고 싶을 때, 나는 늘 외출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디에 있는가. ‘되돌아올 수 없는 거리’ 저편에 ‘나를 벌 세워놓았’다. 그의 시가 아픈 이유는 여기에 있다. 드러난 현상 저편에 늘 내가 외로운 형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생을 관조하듯 냉소하지만, 그 안에는 곪아터진 시간과 상처가 있다. (문학평론가 김정남의 해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