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집 호스 든 상인들… LPG 충전소 지킨 소방관… 구조대가 된 배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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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4.06. 오전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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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산불… 소방관 2000명·경찰 1700명·군인 1만명 '뜨거운 사투'

5t 폭약 보관된 화약창고, 담당 경찰이 지원요청해 미리 옮겨놔
불길 휩싸인 요양원 뚫고 들어간 소방관… 시민도 곳곳서 활약
소셜미디어는 '실종자 게시판'… 삼성 20억, SK·LG 10억 성금


지난 4일 오후 10시쯤 강원 속초시 장사항 초입에 있는 2층짜리 횟집 건물에 산불이 옮아붙었다. 화재 소식을 듣고 모여든 상인들이 건물에 물을 뿌렸다. 횟집 수조에 바닷물을 채우던 파이프는 이날 100m 길이 호스가 연결된 '임시 소화전'이 됐다.

불은 횟집을 태우고 꺼졌다. 횟집 뒤로 600m에 걸쳐 다른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상인들이 나선 덕에 피해를 면했다. 화재 진압에 나섰던 박성현(37)씨는 "불이 너무 세서 눈도 아프고 머리도 그을렸지만 나와 이웃 가게를 지키자는 마음에 새벽까지 호스를 잡았다"고 했다.

이번 강원 산불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것은 소방관, 경찰, 군인, 그리고 박씨 같은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5일 새벽 강한 바람을 타고 강원 속초시로 확산된 불길이 교동에 있는 주유소(오른쪽 사진 가운데)를 집어삼킬 듯 위협하고 있다. 긴급 출동한 소방관들이 타고온 소방차 두 대가 인근에 주차돼 있다(동그라미 점선). 이 사진을 트위터에 공유한 시민은 "소방관들이 필사적으로 (불을) 막고 계신다고 한다. 불이 난 주유소가 속초 시내와 가까워 위험하다"며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강원도 각지에서 군 장병과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에 나섰다. 왼쪽 위는 지난 4일 속초시 영랑호 주변까지 번진 불을 끄고 있는 소방대원들의 모습. 5일 속초시 장천마을 인근 야산에서 헬멧을 쓴 군 장병들이 잔불을 끄고 있다(왼쪽 아래). /트위터·연합뉴스·뉴시스

속초에서는 음식 배달원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재난문자나 뉴스로 화재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이웃과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피하도록 했다. 강릉시 옥계면 남양 3리 주민 정계순(74)씨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알던 동생이 재난 문자를 받았다며 전화로 깨웠다"며 "나와 보니 주먹만 한 불씨가 지붕에 떨어지고 있었다"고 했다. 집 밖으로 나온 정씨도 이웃집에 들어가 강송죽(75)씨를 깨웠다. 강씨는 "정씨가 깨워주지 않았다면 나도 참변을 당했을 것"이라며 몸을 떨었다.

소방·경찰 공무원도 피해를 막기 위해 분투했다. 이번 산불 진화에는 소방관 1985명, 경찰관 1700여명, 군 1만200여명이 투입됐다. 주한미군도 헬기 2대를 투입해 진화를 도왔다.

4일 오후 9시 35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있는 까리따스 요양원이 불길에 휩싸였다. 요양원 안에는 80~90대 노인 환자가 많았다.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건물 입구가 불길에 휩싸여 진입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방관들은 펌프차로 물을 쏴 최소 진입로를 확보한 후 불길 사이로 들어갔다. 소방관들은 환자 48명을 포함해 직원 등 61명을 구조했다. 이 요양원에 출동했던 속초소방서 이규혁 소방교는 "어르신들이 겁에 질려 있어서 빨리 구조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밤 속초시 교동의 한 LPG 충전소에서도 담벼락까지 불길이 치고 들어왔다. 불씨는 충전소 건물 천장에도 떨어졌다. 충전소가 폭발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충전소 반경 1.5㎞에는 초등학교와 주유소, 기업 연수원 등이 있었다.

속초소방서 대원 5명이 소방차 2대와 출동해 진압 작전을 펼쳐 불길을 잡았다. 현장 지휘는 정호봉 소방령이 했다. '자칫 LPG가 터졌다면 목숨이 위험했던 것 아니냐'고 하자 정 소방령은 "모든 소방관이 평소에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라고 했다.

경찰은 발 빠른 대처로 화약창고 폭발을 막았다. 부속 건물이 불탄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동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는 한 화약업체가 운영하는 화약 창고가 있었다. 창고 안에는 폭약 5t과 뇌관 3000여발이 보관돼 있었다. 채희관 속초경찰서 생활질서계장은 이날 오후 8시쯤 한화리조트까지 불이 번지자 혼자 현장에 달려갔다. 평소 화약 관리를 해와 불길이 향하는 경로에 화약창고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길이 근처까지 온 것을 본 채 계장은 지원을 요청해 1시간 동안 창고에 보관된 폭약과 뇌관들을 모두 경찰서로 옮겼다. 그로부터 1시간 뒤인 10시 30분쯤 화약창고가 불길에 휩싸였다.

네티즌들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힘을 보탰다. 인스타그램으로 대피소 위치와 재난상황 시 대피 요령을 공유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소식을 명단으로 정리해 공유했다.

피해 지역에 대한 기업들의 지원도 이어졌다. 삼성그룹은 성금 20억원과 구호 키트를 지원하고 봉사단과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했다. SK그룹과 LG그룹은 피해 성금으로 각각 10억원을 내놨다. 현대중공업은 성금 1억원과 함께 복구장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은 이재민 대피소용 텐트 180여개와 담요·속옷·라면 등을 지원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즉석밥과 라면·물 등 구호품을, SPC그룹은 빵 3000개와 생수 3000통을 전달했다.





[이성훈 기자] [속초·강릉=권순완·정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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