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동아시아의 서양인
“회회아비가 내 손을 쥐더이다.” 고려가요 ‘쌍화점’은 만두가게를 하는 위구르인과 고려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흉노의 후예를 자처했던 신라에서 통일신라를 거쳐서 고려시대에 이르면서 국제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고려는 적극적으로 서역인의 귀화를 장려했고, 그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다. ‘회회아비’로 대표되는 실크로드의 사람들은 우리 역사의 일부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 대외적으로는 ‘소중화’를, 내부적으로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면서 서양 계통의 사람들은 타자화되었다. 약간 코가 높거나 이국적인 용모의 예술품이 나오면 ‘서역인’으로 통칭할 뿐, 우리 역사 속에서 서양인 계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는 지난 5천여년간 서양인 계통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다.
실크로드에 등장한 최초 서양인
동아시아로 유입된 최초의 서양인 또는 유럽인은 약 5천년 전 목초지를 찾아서 동유럽에서 유라시아를 건너온 유목민들이다. ‘토하르’라 불리는 그들은 인도-유럽어를 사용했다. 몽골을 거쳐서 중국 북방과 실크로드 일대로 진출했다. 특히 타클라마칸 사막의 로프노르 지역에 정착했던 일파의 무덤인 샤오허 유적에선 생생한 유럽 인종들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건조한 사막기후 덕분이었다.
뜻밖에도 최초의 유럽인 흔적인 샤오허의 유물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도 있다. 100년 전 일본의 실크로드 탐험대가 현지에서 수집해 온 것이다. 물론 일본 탐험가들은 그 유적에 직접 가보지 못했고, 그 유물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오죽하면 일제강점기 때에는 풀로 만든 바구니를 거꾸로 세워서 머리에 쓰는 모자라고 전시할 정도였다. 다행히 이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의 노력으로 2년 전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실크로드를 따라 오던 서양인들은 실제 한반도 땅을 밟았을까. 사실 한반도는 유라시아 초원에서 유목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대신에 다른 단서가 있으니, 유라시아 초원을 따라서 동아시아로 들어온 유목인이 가져온 청동제련술이다. 약 4천년 전에 아시아 전역에 확산된 세이마-투르비노 계통의 청동기가 최근에 정선 아우라지에서도 발견되었다. 정선 아우라지의 석관묘와 제천 황석리에서 발굴된 인골에서 서양인 계통의 흔적이 있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소수일지라도 유럽인 계통의 일파가 한반도에 흘러 들어왔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진시황은 서양인이었을까
중앙아시아의 강성한 유목민족들이 다시 동아시아로 밀려온 시기는 약 2400년 전이다. 바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아서 오랑캐들을 막던 그때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시황 일파도 서양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2012년에 진시황릉 서북부 쪽에서 99개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대부분은 젊은 여성이어서 후궁들의 무덤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히 신분이 높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골을 복원한 결과, 중앙아시아나 페르시아 사람들의 인상이 나왔다. 발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진시황릉 동쪽에서 발견된 또 다른 20대 남성 귀족 또는 왕자들의 무덤에서도 서양인의 흔적이 나왔다.
전국시대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만리장성을 중심으로 기원전 4세기에 확산된 서양인 계통의 유목민들은 동쪽으로는 베이징 근처의 연나라까지 이어졌다. 연나라의 왕족들이 남긴 신장터우 무덤에서 고깔모자를 한 사람의 황금장식이 나왔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같은 무덤에서 한반도 세형동검문화에서 쓰이는 꺽창도 같이 출토된 데에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동호와 고조선을 침략했던 진개(秦開)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했다. 베이징 근처의 연나라를 매개로 유럽인계 유목민과 고조선의 사람들이 조우한 셈이다.
사실, 다시 생각할 점은 왜 우리가 ‘서양인’의 모습을 낯설어하는가이다. 지난 5천년간 서양인들은 우리 이웃으로 꾸준히 곁에 살면서 새로운 문화를 공급하고 전달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지난 5천년간 살아왔던 이웃 서양인들의 역사는 망각했다. 대신에 서유럽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물결과 함께 온 서양인들만 익숙해졌다. 그러나 아편전쟁과 의화단의 난을 거치며 서양인에 대한 극도의 외국인공포증(제노포비아)과 서구 문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대주의가 교차하면서 서양인은 이질적인 모습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서양인’들이 있다. 다행히 지금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며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한다. 그 시작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5천년의 우리 이웃들을 다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미지의 땅’이라는 선입견 대신에 ‘우리의 이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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