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하나의 집단’ 통칭 안돼…다층적 접근해야 다문화 사회 연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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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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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다문화 사회의 다층성’ 펴낸 원숙연 이화여대 교수

다문화 사회에 대한 지난 10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모아 <다문화 사회의 다층성>이란 책을 낸 원숙연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달 28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다문화’란 문자 그대로 다양성을 함축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는 매우 단순하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외국인 이주민’으로 뭉뚱그려 통칭되는 ‘그들’과 단일민족인 ‘우리’의 불편한 동거 정도로 말이다.

원숙연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56)는 “다문화 현상을 단순히 인구 통계적 변화로 바라보면서 다수집단과 소수집단의 이분법으로 가두려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수집단 내에서도 다문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층위가 있고 이주민 집단 내에서도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하위집단들이 존재한다”면서 “다문화 사회의 ‘다층성’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같은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다문화 사회로 연착륙할 수 있다”고 했다.



다문화 사회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연구해온 결과물을 <다문화 사회의 다층성>(책 표지)이란 책으로 묶어 낸 원 교수를 지난달 28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국, 90년대 다문화 압축적 유입

‘심리적 거부감’ 순화 없이 진행

노골적인 인종주의 여전히 존재


- 세계화로 인한 다문화 현상은 어느 나라든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을 유지해온 국가라 그런지 특히 다문화에 대한 불안감과 반발이 더 큰 것 같다.

“한국은 순혈주의에 대한 집단적 집착이 매우 강한 사회다. 결혼이주여성이 증가하는 등 급격한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단일민족 국가로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활방식과 가치관 등에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다. 특히 심리적 거부감을 순화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1990년대 중반부터 압축적인 속도로 이주민 인구가 급증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이나 호주 등 다른 나라에서는 회피적이고 간접적인 형태의 새로운 인종주의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데 반해, 한국에서는 아직도 노골적인 인종주의가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정부는 짧은 기간 내에 (비효율적인) 다문화 정책을 마구잡이로 양산해 내면서 오히려 반발심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냈다. 이런 요인들이 제노포비아를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해외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가 문제인 데 반해 한국은 아직까지 노골적인 인종주의조차 순화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짐 크로 식의 노골적인 흑백분리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더 교묘한 형태의 인종주의가 대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실 보이지 않는 교묘한 차별이 더 무섭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회피적 인종주의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강화되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커지니까 성차별의 또 다른 형태인 ‘펜스룰’(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에서 유래)처럼 이주민들과의 접촉을 아예 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다문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되다보니 노골적인 인종주의조차 순화할 시간이 없었다. 서구 사회와 달리 법적 제재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사회적 압박도 강하지 않다보니 아직도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큰 부담 없이 내뱉을 수 있는 분위기다.”

- 납세자인 일반 시민이 이주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책에는 이주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조사와 이주민과의 접촉빈도가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각 구별로 조사를 진행해 비교분석한 결과 등이 실려 있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와서 처음에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고.

“서구의 경우 경제적 최상위층은 이주민에 대해 모든 측면에서 정말 관대하다. 그런데 이번 조사 결과 한국에서는 반대로 최상위층이 이주민에 대해 더 이중적이면서 배타적인 태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이다. 그것은 이주민이 자신들의 고급 일자리를 위협할 일은 없을 것이란 믿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웃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배타적 반응을 나타냈다. 이주민이 부유층 동네에 유입될 경우 그들의 사회·문화적 자원을 흠집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으로 해석된다. 구별 분석에서도 강남·서초구 등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오히려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 스트레스가 적을수록 이주민에게 더 관대하다는 서구 이론과 정반대 현상이다.”

- 연령별로도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나. 그래도 외국 문화에 익숙하고 개방적인 청년층은 상대적으로 이주민에게 더 관대한 편 아닌가.

“이 역시 기존 이론들과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다. 외국에서는 연령이 낮을수록 이주민의 일자리에 관대하다고 하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흥미롭게도 청년들이 더 민감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삼포세대, 칠포세대라는 용어까지 나올 만큼 한국 청년들의 자원 스트레스가 그만큼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 이주민과의 접촉 빈도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나. 이주민과 실제 접촉한 경험이 많지 않을수록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접촉을 많이 할수록 소수집단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서구의 연구결과들과 달리, 이번 조사에선 접촉이 많을수록 이주민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많이 사는 용산구 주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높고 이주민 차별 정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보면 접촉의 빈도뿐 아니라, 접촉의 ‘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질이 나쁜 접촉은 오히려 편견을 강화하고 반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조사가 진행되던 2011년 무렵은 이태원 지역의 범죄나 용산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등이 이슈가 되고 있던 때였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언론 등을 통한 ‘간접 접촉’도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데 (왜곡된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는) 선정적인 보도가 많다. 현재 시점에서 같은 조사를 다시 한번 진행해 볼까 생각 중인데, 그때보다 더 악화됐으면 악화됐지 크게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 그렇다면 거꾸로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은 한국 사회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 지도 궁금하다.

“이주민을 절대로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통칭해선 안된다. (다수집단 내에서도 다문화를 바라보는 여러 층위가 존재하듯이) 이주민들 내에서도 각자 놓여있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의 하위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결혼이주여성은 다른 이주민들과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이주민에 대한 차별·배제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놓고 다른 외국인은 차별해야 한다고 본 거다. 그와 동시에 다문화 정책은 더욱 전향적이기를 원한다. 자신의 자녀들이 미래의 한국 사회에 좀 더 쉽게 수용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보니 모순적인 인식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주민을 뭉뚱그려 보기보다는 그들의 기저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요구들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들을 우리 사회에 연착륙시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와도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특수성 고려 않고 외국 정책 베껴

그대로 이식 땐 모두가 힘들어져

‘이주민 수용이 비용’ 여기지 않게

근거 제시하며 납세자들 설득해야


- 조화로운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정부의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조언해 달라.

“나는 정책에 따른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행정학자이다. 다문화를 받아들이라는 당위적인 주장만 하다보면 다수집단의 반발만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비용’이라고만 여겨지지 않도록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납세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나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호주나 캐나다의 정책을 그대로 베껴와 이식해선 안된다. 그렇게 표절해 오는 정책은 제대로 작동할 수도 없을 뿐더러 다수집단과 소수집단 모두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서구 사회의 이론이 한국 사회에는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수집단과 소수집단의 다층적 요구를 세부적으로 파악해 영리한 정책을 펼쳐야 급격한 다문화 현상의 경착륙을 막을 수 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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