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일터 하늘로 돌아가다, 조양호 194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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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4.08. 오후 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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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과 추락 거듭했던 2세 경영인


항공물류업계에서 비상과 추락을 거듭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한진그룹은 “조 회장이 오늘 새벽 미국 현지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가족이 임종을 지켰다. 조 회장이 와병 중이라는 사실조차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룹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머물며 폐질환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 회장 측이 지난해 영장실질심사 당시 검찰에 ‘폐가 섬유화되는 병’이라고 밝힌 점으로 미뤄 폐섬유화증일 가능성이 있다.

현지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이었지만 지난달 말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충격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가족들의 연이은 사회적 논란, 외부 경영권 견제 등에 따른 스트레스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1949년 인천에서 고 조중훈 대한항공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경복고, 인하대 공업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대한항공 입사 이후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을 두루 거친 실무형 2세 경영자다. 재직 기간 국적항공사 대한항공을 창립 50주년의 글로벌 항공사로 키워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아 유연한 자산 관리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고, 국제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해 국내 항공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며 항공업계의 ‘큰어른’으로 통했다. 또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을 맡아 유치를 이끌었고, 2014년에는 조직위원장 중책을 맡아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했다.

하지만 ‘과(過)’도 있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한진해운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면서 조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진두지휘했지만 법정관리를 거쳐 결국 2017년 청산 절차를 밟아야 했다. 무엇보다 최근 수년간 가족들이 연이어 ‘땅콩 회항’ ‘물벼락 갑질’ ‘욕설 파문’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이 ‘오너 리스크’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또 조 회장 본인이 배임·횡령으로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지난달 말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경제단체들은 조 회장 별세를 애도하며 추모 메시지를 내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 항공·물류산업의 선구자이자 재계의 큰어른으로서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한 조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고인은 평생 국내 항공·물류산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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