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에서 47년간 '기자밥'을 먹은 밥 우드워드 부편집인이 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가 한국에 출간됐다. 백악관 입성 전후의 사생활을 까발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스크린을 찢고 나왔달까. 수위 조절에 '실패'한 수백 가지 비화를 읽으면 '낄낄'대다가도 심드렁해지고 심각해진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9·11 테러 취재로 퓰리처상만 두 번 거머쥔 우드워드의 신작은 2018년 9월 출간된 직후부터 현재까지 미국 정가를 발칵 뒤집었을 만큼 구체적이다. 트럼프는 책에 실린 대화를 "사기(frauds)"라고 칭하며 '분노와 화염'에 휩싸였다. 저 적나라함이 책의 매력이지만.
"진정한 힘은 공포에서 나온다." 핵 문제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속내다. 2017년 9월 유엔총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고 "꼬마 로켓맨"이라고 골렸다. 북한 앵커 리춘희는 지지 않고 한술 더 떴다. "겁먹은 개가 더 시끄럽게 짖는다." 폭발하는 설전(舌戰)의 커튼 뒤에서 보좌관 롭 포터가 주군에게 물었다. "창피를 주면 고분고분해질까요?" 밀당의 고수는 진심을 다해 말한다. "힘을 보여줘야 해. 이건 지도자 대 지도자의 싸움이야. 사나이 대 사나이. 나와 김정은의 대결이지." 우드워드는 고개를 저으며 토로한다. "트럼프는 충동에 사로잡혔던 게 분명했다."
'트위터 마니아' 트럼프의 사생활도 자세하다. 관저에서 부부는 다른 방을 썼다. 일국의 대통령 방엔 리모컨, IPTV 티보, 그리고 트위터뿐이었다. 트럼프는 늘 대형 TV를 켜놨고, 수천만 명의 '트친'에게 날리는 140자 메시지만이 소통이었다. 트위터 본사가 트윗당 제한 글자 수를 280자로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트럼프는 낙담했다. "좋은 일이야. 하지만 나는 140자의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는데, 좀 아쉽구만." '제발 트윗을 줄이라'는 설득에 트럼프는 준엄한 어조로 꾸짖었다. "이건 확성기야. 이건 어떤 여과 장치도 없이 내가 대중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방식이야. 소음을 뚫어버리는 거지."
대통령 일가 뒷담화는 더 농밀하다. 수석전략가 배넌과 트럼프 장녀 이방카의 언쟁은 '클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젠장, 당신은 그냥 직원일 뿐이야! 직원 나부랭이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설치고 다니면서 책임자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당신은 책임자가 아니야. 당신은 직원이야!" 영애는 맞받아친다. "난 직원이 아니에요! 퍼스트 도터(first daughter·대통령 장녀)예요!"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한 트럼프의 치명적인 영상 '액세스 할리우드'가 공개된 직후, ABC나 NBC에 부부가 함께 출연해 사과하라는 설득에 멜라니아는 '슬로베니아 악센트'로 읊조렸다. "절대로, 안 해. 안 해. 안 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려 생각해보자. '트럼프쇼 시즌2 하노이 편'은 허망했다. 단기 결렬인지 몰라도, 인터미션(intermission·막간)이 꽤 길어진다. 워싱턴에서 온 '불장난을 즐기는 불망나니'와 평양 주석궁이 고향인 '꼬마 로켓맨'은 각자 귀가했다. 역자의 칼럼을 잠시 빌리자면 트럼프가 '형편없는 협상가' 대신 '위대한 쇼맨'이길 바라는 마음은 다들 간절하다. 불 꺼진 객석은 쇼의 제3막을 고요하게 기다린다. 한때 천부적(天賦的)이라고 믿었던 세계의 가치가 몰상식으로 대체되더라도, 쇼의 MC가 아무리 상스러워도, 어둠의 관객들은 박수칠 준비가 돼 있다. 자, 커튼콜은 준비됐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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