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주는건 누가 시작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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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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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야사-30] 지난 14일은 밸런타인데이였습니다. 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을 받지 못한 많은 남성들을 좌절과 우울에 빠뜨리게 합니다. 대체 밸런타인데이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아니 초콜릿은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이번 식품야사는 초콜릿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주고받는 문화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카카오톡을 가공하면 초콜릿톡이 됩니다.


초콜릿의 원료가 '카카오(코코아)'라는 것은 모두들 알고 계시죠? 카카오는 신대륙 작물의 하나입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 전에는 아메리카대륙에서만 자랐고 이후 전 세계에 퍼져나간 작물이라는 뜻입니다. 대표적으로 옥수수, 토마토, 감자, 고구마, 담배, 고추 등이 있습니다. 멕시코 지역에 살았던 아메리카인들은 일찌감치 카카오를 발견해내 이를 음료로 마셨다고 합니다.

카카오는 카카오나무의 열매에 들어 있는 씨앗입니다. 럭비공처럼 생긴 열매에는 아몬드 모양의 씨가 여럿 들어 있는데 이것이 카카오빈(카카오콩)입니다. 카카오빈을 발효시킨 후 이것을 건조시키고 로스팅한 것이 바로 카카오닙입니다.

그런데 멕시코 지역의 마야인이나 아즈텍인이 마신 카카오 음료는 우리가 지금 먹는 초콜릿과 아주 달랐습니다. 아주 쓴맛이 강하고 기름진 음료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카카오닙스차로 알려진 카카오차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마시던 음료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카카오음료는 '신의 음료'로 불릴 정도로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카카오 열매가 화폐의 역할까지 했습니다. 이들이 음료를 부르는 이름 '초코라틀'에서 지금의 초콜릿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신대륙을 정복한 스페인인들은 곧 카카오 음료에 사로잡혔고 17세기에는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카카오가 유럽에 전파되고 다시 전 세계에 퍼진 과정은 커피(식품야사22화)와도 유사한데요.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 신대륙으로 옮겨졌고(대표적인 구대륙 작물입니다), 카카오는 신대륙에서 시작해 아프리카와 전 세계에 퍼졌다는 점이 큰 차이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카카오의 55%는 아프리카산입니다.

유럽에서도 초콜릿은 오랫동안 커피와 같은 차음료였습니다. 옛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었던 살롱에서 귀족이나 예술가들은 커피나 초콜릿 같은 음료를 마셨습니다. 당시 초콜릿은 설탕이나 향신료를 첨가한 음료로 우리가 마시는 지금의 핫초코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굳이 역사적인 순서를 따진다면 가장 먼저 지금의 카카오닙스차가 있었고 그다음에 핫초코가 탄생했고, 초콜릿이 제일 마지막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카카오를 마시는 방법이 수백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사진=일동후디스


액체 핫초코가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고체 초콜릿이 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입니다. 카카오 열매는 40~50% 정도가 카카오버터라고 하는 지방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유에서 지방을 분리해 버터와 탈지분유를 만드는 것처럼 카카오에서 버터를 분리하면 순수한 초콜릿 성분이 남습니다.

카카오닙을 분쇄해서 갈면 카카오 리쿼가 만들어지는데요. 이를 압축해 카카오 버터를 분리시킬 수 있습니다. 카카오 버터를 분리시키고 남은 초콜릿 성분으로 우리가 핫초코로 먹는 카카오 분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카카오 리쿼를 응고시키면 카카오매스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순수한 초콜릿 성분과 카카오버터가 뒤섞여 있습니다. 여기에 설탕이나 우유 등을 넣으면 우리가 익숙한 초콜릿이 만들어집니다.

1850년부터 20세기초까지 초콜릿과 관련한 다양한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했고 마시는 핫초코가 아닌 먹는 초콜릿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초콜릿 브랜드도 이때 등장했습니다. 영국의 캐드버리(Cadbury), 스위스의 린트(Lindt), 미국의 허쉬(Hershey's)가 모두 이 같은 초콜릿 대량생산 시대에 성장한 기업들입니다. 스위스가 초콜릿으로 유명해진 것도 이때 혁신적인 초콜릿 제조기술이 스위스에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마야인들부터 유럽에 이르기까지 초콜릿은 성욕을 증진시키는 음료로 인식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영국 캐드버리사는 연인들의 날이었던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마케팅을 1850년경 만들어냈고 여기서부터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주고받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1929년 11월9일 동아일보에 실린 메이지 초콜릿 광고. 초꼬레트는 활동의 `개솔린`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우리나라에 초콜릿이 처음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요? 구한말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시절, 고종의 음식 시중을 들었던 손택이라는 여인이 초콜릿을 진상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초콜릿이 소개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초콜릿을 알고 경험하게 된 것은 일본 강점기입니다. 메이지제과와 같은 일본제과 회사가 조선에 진출해서 초콜릿을 판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초콜릿은 귀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 세대엔 한국전쟁 시절 미군 보급품으로 얻어먹었던 초콜릿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기브미 쵸코렛'이라는 영화 국제시장의 유명한 대사가 당시 우리에게 초콜릿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초콜릿이 시작된 것은 1968년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 국내에 유통되는 초콜릿은 수입품이었는데 1968년 동양제과(지금의 오리온)와 해태제과에서 직접 국내에 초콜릿 공장을 짓고 생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과산업적인 측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초콜릿은 1975년에 롯데제과에서 나온 가나 초콜릿입니다.

롯데는 재일교포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1948년 일본에서 만든 회사입니다. 껌으로 큰 성공을 거둔 롯데는 일본의 양대 제과회사인 메이지와 모리나가에 도전하기 위해 초콜릿을 직접 만들기 시작합니다. 1962년 처음으로 가나밀크초콜릿을 내놓습니다. 가나초콜릿은 스위스식 진한 초콜릿을 내놔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일본의 주요 제과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초콜릿 회사들이 1950년대 말부터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서양의 문화를 마케팅 수단으로 가져왔고 한국에는 1980년대에 넘어왔습니다.

초콜릿을 밸런타인데이에 주는 악습은 일본에서 건너왔습니다. /출처=일본 FBS


1969년에 한국에 진출한 롯데제과는 바로 초콜릿을 판매하지 않다가 1975년 한국에서도 가나 초콜릿을 판매하게 되는데요. 롯데제과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을 만들어왔습니다. 빈투바란 말 그대로 카카오콩부터 최종적인 초콜릿 제품까지를 제조사가 직접 한다는 의미입니다. 롯데제과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직접 카카오원두를 들여와 가공하는 회사는 롯데제과뿐이고 다른 회사들은 이미 완성된 초콜릿 덩어리를 들여와 이를 녹여 가공하는 식으로 제품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제 일본 롯데제과와 한국 롯데제과는 사실상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가나초콜릿은 두 회사를 상징하는 제품입니다. 다만 일본에서와 달리 한국 가나초콜릿과 롯데제과는 초콜릿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혹시 롯데제과에서 판매하는 드림카카오라는 제품을 아시나요? 2006년 나온 이 제품은 카카오 함량이 기존 초콜릿보다 높다는 것을 내세워 '쓴 초콜릿'을 유행시켰습니다. 최근에는 82%에 달하는 제품까지도 나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카카오 함량이 높을수록 좋은 초콜릿일까요?

위에서 잠깐 설명드렸듯이 우리가 먹는 초콜릿은 카카오매스, 카카오버터를 설탕, 우유 등 다양한 성분과 적당한 비율로 배합해 만들어집니다. 우유가 들어가 부드러운 초콜릿은 '밀크 초콜릿'이라고 불리고, 우유 없이 설탕만 넣은 초콜릿 중 카카오 성분이 높은 경우를 '다크초콜릿'으로 부릅니다. 카카오 성분이 아주 낮은 경우는 '준초콜릿'이라고도 부릅니다. 반면 카카오매스가 없고 카카오버터만 사용한 흰색 초콜릿은 '화이트 초콜릿'으로 불립니다. 이외에도 맛이나 식감, 녹 는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첨가물이 초콜릿에는 들어갑니다.

초콜릿은 초콜릿 성분과 우유, 설탕을 다양하게 조합해서 만들어집니다. /출처=나무위키


드림카카오에서 말하는 82%는 카카오 성분(카카오매스+카카오버터)을 말합니다. 보통의 초콜릿이 20~30% 정도가 카카오 성분인데 드림카카오는 훨씬 카카오 성분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만큼 설탕을 덜 쓰기 때문에 칼로리가 낮습니다. 반면 카카오 성분이 설탕보다 비싸기 때문에 일반적인 초콜릿보다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카카오에 함유된 폴리페놀 등 건강에 좋은 성분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카카오 성분이 낮고 설탕이 많거나 레시틴 같은 첨가물이 들어간 초콜릿은 나쁜 초콜릿일까요? 이는 롯데제과처럼 초콜릿을 대량생산하는 기업들과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들의 설명이 다릅니다.

수제 초콜릿은 말 그대로 '쇼콜라티에'라고 하는 장인이 손으로 직접 초콜릿을 만드는 제품을 말합니다. 쇼콜라티에들은 커버추어라고 하는 초콜릿 원료를 가공해 예술과 같은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벨기에 초콜릿이 유명한 이유는 이처럼 장인의 손길이 들어간 수제 초콜릿이 벨기에에서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커버추어는 직접 집에서 초콜릿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아실 텐데 일종의 초콜릿 원료 같은 것입니다. 설탕이나 첨가물 없이 카카오 성분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를 녹여서 다양한 초콜릿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발로나, 칼리바우트라는 회사의 커버추어 초콜릿이 유명한데요. 이런 회사들은 도매상처럼 초콜릿으로 최종적인 제품을 만드는 제과회사들에 커버추어 초콜릿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수제초콜릿은 창의적이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출처=아도르 초콜릿 인스타그램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 입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초콜릿은 초콜릿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설탕과 다양한 첨가물이 들어가서 카카오 열매의 원래 성분과는 크게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급한 초콜릿들은 설탕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들이 보기에 대량생산 초콜릿은 카카오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설탕 범벅입니다.

반면 대량생산을 하는 초콜릿 회사들에는 설탕과 첨가물은 초콜릿 제품의 다양한 특성을 만들기 위해 조절 가능한 성분에 불과합니다. 초콜릿은 그 자체로 먹기도 하지만 '쵸코송이'나 '홈런볼'처럼 과자에 덮어 씌우거나 빵이나 케이크를 만들 때도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이런 초콜릿들은 가격이 중요하기 때문에 초콜릿 성분이 높은, 좋은 초콜릿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첨가물은 초콜릿의 물성이나 보존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데 특별히 건강에 해로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수제 초콜릿이나 고디바와 같은 프리미엄 초콜릿은 한입 크기가 개당 2000~3000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의 제품입니다. 벨기에에서 쇼콜라티에 과정을 공부한 우리나라 수제 초콜릿 1세대 고영주 카카오봄 대표는 수제 초콜릿을 '먹는 보석'이자 '디저트의 절정'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해외 커피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움직임은 커피의 모든 과정을 기업이 통제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좋은 커피원두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생산하는 농민에게 충분한 수익을 돌려주고(공정무역), 유통 과정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운동입니다. 커피와 유사하게 초콜릿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공정무역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소위 빈투바 초콜릿이 해외에서 등장하고 있고, 국내에도 최근 상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콜릿의 최종적인 제품만을 생각하지만 초콜릿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식품을 만들기 위한 소재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콜릿 자체가 대량생산과 공업의 발달에 의한 산물이고 초콜릿 그 자체를 먹기보다는 초코바, 초코케이크처럼 다른 식품과 함께 섭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콜릿은 커피나 빵과 유사하면서도 다른데요. 커피나 빵은 오랫동안 인류가 먹어오다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식품입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다시 '수제'와 '개성'이 중요해졌습니다. 반면 초콜릿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음료에서 먹는 초콜릿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콜릿에서도 '수제'와 '카카오'라는 본질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있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긴 얘기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초콜릿을 만든 사람 = 마야인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주고받기 시작한 사람 = 영국인

한국에 밸런타인데이를 전파한 사람 = 일본인

[이덕주 유통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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