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빛이 그린 윤곽…‘블랙홀 그림자’ 포착한 ‘지구 크기’ 가상망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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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상 최초의 블랙홀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공개됐다.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팀은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연구팀이 발표한 블랙홀 주변의 사진으로 트위터 화면을 캡쳐한 것이다. 뉴시스


독일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제시된 ‘블랙홀’ 그림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어떻게 포착됐을까.

한국천문연구원은 EHT(사건 지평선 망원경) 연구진이 전 세계에 산재한 전파 망원경을 연결한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으로 블랙홀 그림자를 관측할 수 있었다고 11일 설명했다.

한국천문연구원 등 전 세계 연구 기관 20여곳이 참여한 EHT 연구진은 전 세계 협력에 기반한 8개의 전파망원경을 연결시킨 ‘사건 지평선 망원경’으로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은하 M87의 중심부에서 블랙홀 그림자를 관측했다.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고, 무게는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한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강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 블랙홀 안팎을 연결하는 사건지평선 바깥을 지나가는 빛마저 휘어지게 만들 정도다. 블랙홀 뒤편에 있는 밝은 천체나 블랙홀 주변에서 내뿜는 빛은 왜곡돼 블랙홀 주위를 휘감는다.

왜곡된 빛은 블랙홀을 비춰 윤곽을 드러나게 한다. 이를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한다. 연구진은 여러 번의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을 통해 고리 형태의 구조와 중심부의 어두운 지역, 즉 블랙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블랙홀 관측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천체에서 빛이 나오지 않아 직접적으로 관측하는 방법은 제한적이었고, 간접적으로만 유추할 수 있었다”며 “EHT는 2000년 초반부터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한 시도를 했고, 공식적으로 2017년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관측은 2017년 4월 5일부터 14일까지 6개 대륙에서 8개 망원경으로 진행됐다. ▲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아타카마 패스파인더(APEX) ▲유럽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30미터 망원경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대형 밀리미터 망원경(LMT) ▲서브밀리미터 집합체(SMA) ▲서브밀리미터 망원경(SMT) ▲남극 망원경(SPT)이 동원됐다.

조일제 연구원은 “천체에서 오는 빛을 높은 해상도로 관측하기 위해서는 더 큰 구경의 망원경이 필요하다. 광학 망원경은 망원경 크기를 무한정 늘릴 수가 없다”며 “반면 전파 망원경은 관측 파장대가 길기 때문에 여러 대의 전파 망원경을 동기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과 제주에 전파망원경이 있다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거리가 망원경 크기라고 볼 수 있다”면서 “전 세계로 뻗은 망원경을 사용했기 때문에 지구 크기의 망원경을 통해 높은 해상도를 얻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즉, 연구진은 망원경 8개를 연결해 이전에 없던 높은 민감도와 분해능을 가진 지구 규모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다. 지구의 자전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로, 1.3밀리미터 파장 대역에서 하나의 거대한 지구 규모의 망원경이 구동되는 원리다.

가상 망원경을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라고 한다. EHT의 공간분해능은 파리의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다.

정 박사는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은 마치 한라산에서 백두산 정상에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분간해내는 분해능을 가지고 있다”며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천체이지만 블랙홀을 영상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같은 시각, 서로 다른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블랙홀의 전파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해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얻었다. EHT의 원본 데이터를 최종 영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분석은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연구소(MPIfR)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헤이스택 관측소에서 특화된 슈퍼컴퓨터를 활용했다.

정 박사는 “2017년 4월에 관측을 진행했고, 지난해에도 4월 말쯤 10일 정도 관측했다”며 “한 번 관측할 때마다 자원이 많이 소모되므로 10일 동안 8개 사이트에서 모두 날씨가 좋은 최적 관측 조건에 해당하는 날을 골라야 한다. 2017년에는 5개의 관측이 모두 굉장히 날씨가 좋았고, 지난해에는 2017년에 비하면 우리 말로 반타작도 못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NOEMA) 천문대, 그린란드 망원경(GLT), 킷픽(Kitt Peak) 망원경의 참여로 더욱 향상된 민감도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박사는 “앞으로 11개의 전파 망원경이 가동된다”며 “망원경이 크면 빛을 받는 면적이 넓어 감도가 좋아진다. 만약 좋은 감도를 가지게 되면 고리 뿐만 아니라 제트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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