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센강변의 시민들 “노트르담은 프랑스 그 자체”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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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4.16. 오후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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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 찾은 파리 시민들

“화재는 너무 큰 손실” 슬픔 속에서도

“무너질 것 같았던 성당보니 다행” 안도

‘850년간 울렸던 종소리 다시 들을 수 있을 것’ 기대도


프랑스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5일(현지시각) 화재가 발생, 지붕이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있다. 실화로 추정되는 이번 불로 지붕과 첨탑이 붕괴하는 커다란 손실이 났다. 경찰은 보수 공사를 위해 설치한 시설물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파리/신화 연합뉴스
850여년을 함께 해온 ‘프랑스의 심장’이 불길에 쓸려간 뒤 파리는 깊은 충격에 잠겼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16일, 4월의 햇살마저 자취를 감춘 파리는 고요했고 파리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성당이 있는 시테섬 주변을 찾아 ‘오랜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전날까지 파리를 감싸던 화창한 날씨는 간데 없고, 하늘에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연간 13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던 이날 대성당엔 소방수와 비둘기들만 접근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대성당 주변 몽뜨벨로 거리의 통제선 주변에 모인 수백명의 파리 시민은 지인의 장례식을 찾은 듯 각자만의 방식으로 대성당의 비극을 애도했다. 누군가는 뼈대만 앙상해진 대성당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묵주를 들고 신에게 기도했다.

모리스 피에르(83)는 이른 아침 시테섬을 찾았다. 지중해 연안의 남부 도시 깐느에 살던 그는 30년 전 파리로 집을 옮긴 뒤 시간이 날 때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들렀다. 모리스는 불에 탄 대성당을 보며 “이 곳에서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역사적 인물들의 장례식이 모두 치러진 곳이고, 나폴레옹이 대관식도 했다. 프랑스의 모든 역사가 담긴 곳”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노트르담은 프랑스 그 자체다. 너무 슬픈 일이어서 형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16일 오전 파리 시민들이 센강변에 나와 황폐화된 성당을 바라보고 있다. 파리 시민들은 “첨탑은 붙탔지만 모두 무너지진 않았다”며 성당 복구를 다짐했다.파리/AFP 연합뉴스


애도엔 노소가 없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인들에게 유서 깊은 ‘건물’을 넘어 ‘친구’나 ‘가족’같은 존재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22살의 생드린도 이날 아침 센강변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대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던 생드린은 6월 이곳에서 견진성사(천주교 성사의 하나)를 받을 예정이었다. 15일 저녁 대성당의 화재 소식을 들었을 땐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랬듯 “장난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노트르담 화재는 대단한 손실”이라며 “아무리 건축 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13세기에 잘 지어놓은 성당 건물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 때문에 화가들에게 좋은 피사체가 되어온 만큼 이날도 불에 탄 대성당을 기록해두려는 거리의 화가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인근 이떼꼼(ITECOM) 디자인학교의 학생 10여명이 센강변에 앉아 화마가 쓸고 간 노트르담을 화폭에 옮겼다. 이 학교 교수인 세비스티안 아틀라니(44)는 “화재 사고 이후 노트르담을 기록해두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데생 실습을 나왔다”며 “나 역시 오랫동안 매년 한두번씩은 노트르담을 그려왔다”고 말했다.

화가 사마르(50)도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 그는 지난 십여년 동안 자주 강변을 찾아 대성당을 화폭에 옮겨왔다. 새빨간 화마에 휩쓸린 대성당을 바라보며 사마르는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다시 대성당을 찾았다. 애도 가운데도 희망은 남았다. 그는 “어제는 다 무너질 것만 같았던 성당이 저렇게 서 있는 것만 봐도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파리에 울려 퍼졌던 노트르담의 종소리는 이날 850여년 만에 휴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은 다시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소녀 시절부터 50여년 동안 노트르담 대성당을 사랑해온 브리지뜨(62)는 웃음을 띄운 채 말했다. “시간은 흘러도 기념비는 남는다. 첨탑은 불탔지만 모두 무너지진 않았다.”

파리/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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