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2차대전도 견딘 노트르담인데… 비탄에 젖은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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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4.17. 오전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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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500명 넘게 출동, '인류 유산' 살리려 사투 벌였지만 역부족
시민들, 밤새 성당 주변 지키며 찬송가 '아베 마리아' 합창하기도


15일 오후 7시 53분(현지 시각)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96m 첨탑 중간 부분이 한쪽으로 뚝 꺾이더니 무너져내렸다. 다리 위에서, 강변에서 이를 지켜보던 파리 시민들 사이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던 몇몇 시민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번지기 시작한 건 해가 막 저물던 오후 6시 30분쯤이었다. 돌연 성당 안에서 미사를 보던 신부와 신도들이 황급히 밖으로 빠져나오더니 출입구가 닫혔다. 관람 순서를 기다리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는 사이 대성당 첨탑 주변으로 흰 연기가 새나오더니 곧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6시 50분쯤이었다.

소방차와 500명이 넘는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해 사다리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 대형 물 호스로 물을 뿌렸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화재 초기 일부 소방관과 경찰관, 성직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 사슬'을 만들어 성당 내부에 있던 유물들을 밖으로 옮겼다고 외신은 전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트위터에 "유물을 구하기 위한 연대의 인간 사슬이 있었다"면서 "가시면류관과 루이 왕의 튜닉(상의) 등 중요한 유물들은 지금 안전한 장소에 있다"고 썼다.





“제발 무사하길” 기도하는 파리 시민들 - 15일(현지 시각) 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모인 시민들이 무릎을 꿇고 불길이 잡히기를 기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프랑스 소방 당국은 16일 새벽 3시쯤 큰 불길을 잡았고, 화재 발생 15시간 만인 오전 10시 완전히 진화했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은 화재 진압이 이어지는 밤새 대성당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찬송가 '아베 마리아' 합창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진화 뒤 모습을 드러낸 대성당은 참혹했다. 첨탑을 중심으로 열십자 모양 지붕 중앙부는 불에 타 천장이 뻥 뚫려 있었다. 석재로 된 벽면은 그을어 성당 안은 거대한 석회동굴 같았다. 장클로드 가이에 파리 소방청장은 "대성당 지붕의 3분의 2는 붕괴됐다"면서 "그러나 주요 구조물은 보존됐고 전면부의 두 탑도 불길을 피했다"고 말했다.





폭격 맞은듯 뻥 뚫린 천장 - 1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시뻘건 불똥이 떨어져 날리고 있다. 소방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지만 천장 불길에 닿기엔 역부족이다. 8시간 넘게 이어진 화재로 노트르담 대성당은 지붕이 전소되고 첨탑이 무너지며 크게 훼손됐다. /EPA 연합뉴스


프랑스 국민도 비통함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지 교민들은 "현재 프랑스의 분위기는 11년 전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됐을 당시 우리나라의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856년 역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끝없는 전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프랑스 역사를 증언해왔다. 14세기 중반에 완공된 이후 영국과의 백년전쟁(1337~1453), 신교도와 구교도가 피를 흘린 위그노 전쟁(1562~ 1598),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등을 거치며 수많은 파괴 시도가 있었지만 기본 골격과 외형이 손상되지는 않았다. 양차 세계대전도 무사히 넘겼지만 이날 화재로 첨탑이 붕괴되고 지붕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손상을 입었다.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인 프랑스 검찰은 첨탑 주변에서 일어난 실화(失火)가 대화재로 번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성당은 600만유로(약 78억원)를 들여 산성비와 대기 오염으로 훼손된 첨탑을 개·보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작업을 위해 첨탑 주변에 설치한 가설물에서 불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를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15일 자정이 되기 직전 대국민 연설에서 "오늘 밤 엄숙하게 말한다"면서 "우리는 이 성당을 재건할 것이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의 재건 선언에 프랑스 재력가들이 가장 먼저 호응했다. 대성당 복원을 위해 구찌 모기업인 케링그룹 프랑수아 앙리 피놀 회장은 "1억유로(약 1284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고, 루이비통그룹(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2억유로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16일 기부금 약정액이 6억유로(약 7704억원)를 넘겼다고 전했다.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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