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박근혜·최순실 국정문란 사태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에는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사과 발표보다 일부 진전되었다고 평가할 만한 대목이 있다. 그때 박 대통령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 사과, 사안의 심각성을 반영하지 못한 거짓 해명, 궁색한 변명과 회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번 담화문에서는 국정문란 사태가 “저를 믿고 국정을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준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박 대통령 자신에게 잘못과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는 또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을 강조했다. 특별검사의 수사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전히 이 나라를 흔들고 있는 국정문란 사태가 단지 자신의 선의가 잘못 전달된 결과,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을 위해 쓰여져야 할 국가권력을 개인의 재산 축적을 위해 동원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하도록 맡겨진 국가관료 조직을 사병처럼 부리고, 기업과 대학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함부로 훼손한 행위는 선의였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의라는 것도 과연 존재했는지 믿기 어렵다. 장관 및 참모들과는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하지 않았던 대통령이 재벌 총수와 만나서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일군 기업의 부를 자신의 측근을 위해 쓰도록 강요한 일은 결코 선의의 영역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나라를 파탄 지경으로 만든 사람을 한 명만 고른다면 바로 박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최순실씨를 사법처리해서 국정에 간여하지 못하게 막는다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이 모든 것을 최씨 개인 비리로 치부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계속 국정을 이끌 수 있겠다고 믿어서 그런 것 같다. 만일 이번 사태가 박 대통령의 선의와 다른 것이었거나, 불가피한 실수였다면 박 대통령 기대대로 그런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국정문란은 우발적인 것도, 남의 잘못인데 대통령이 뒤집어쓰게 된 것도, 예외적인 현상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를 마다하고, 집권당과의 협력도 포기한 채 1인 통치, 그것도 최씨의 조언과 지침에 충실히 의존한 1인 통치를 했다. 그 결과 정치는 전쟁터로 변질되고, 경제는 바닥에서 헤매고, 사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갈라지고, 안보는 불안해지고, 시민의 삶은 어려워졌다. 박 대통령의 3년9개월 재임 기간은 시민, 지식인, 언론, 시민단체, 정치인들이 이런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국정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호소하고 건의하고 항의한 세월이기도 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이런 정도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으면 대통령은 국정 전환의 기회, 성공적 국정의 계기로 삼을 만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일방통행을 계속함으로써 기회를 잃었다. 지난 총선에서는 시민들이 집권당에 큰 패배를 안겨주는 것으로 박 대통령에게 경고하며 다시 기회를 주었다. 시민들은 야당과의 대화와 협치를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면서 이 두 번째 기회도 놓쳤다. 시민과 야당이 반대하는 갈등 현안을 그대로 밀어붙이며 대화 정치를 거부했다.

지난달 최씨 국정농단이 처음 드러났을 때도 박 대통령은 그것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때 진정한 사과, 즉 자신의 잘못을 소상히 밝히고, 용서를 구하면서 근본 대책을 세우고 대화정치 전환, 국정 쇄신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개헌 제안으로 시민의 시선을 딴 데로 돌려놓으려는 정치적 기교를 부렸다. 세 번째 기회를 버린 것이다. 그런 권모술수는 결국 역풍을 불러왔다. 이럴 때는 더 이상 상황을 호도하는 잔재주를 부리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거짓 해명과 성의 없는 의례적 사과로 대응했다. 네 번째 기회를 찬 것이다. 이제는 시민과 야당,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까지 그런 접근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국면이면, 대통령은 국정 일선에서 물러나고 국회에 내각 구성을 위임하라는 다수의 의사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홀로 살면서”와 같은 동정여론을 자극하는 말로 여전히 본질을 가리려 했고, 자신의 거취, 향후 국정 안정화 방안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이런 위험한 통치는 사실 취임 이후 일관된 것이었다. 이번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일시 조성된 난국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닥친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닌, 3년9개월간 축적된 결과이자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미끼를 던져 시민이 물어주기를 바라는, 모욕적인 수법을 구사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해왔는데 앞으로는 그렇지 않으리라 믿을 근거가 없다. 우리는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더 기회를 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할때 고려해야 할 것은 최근 두드러진 박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다. 그는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 위기는 잦아들지 않을 것이며 난국은 계속될 것이다. 나아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시민들의 안전과 삶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정당들, 정치인, 대선주자들은 이 길을 피하고 싶어 했다. 박 대통령도 이 길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옳고 그름을 말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중대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검찰의 수사 대상자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는 대통령 탄핵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탄핵이 어느 정파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떠나 그는 이제 탄핵 대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 주권자인 시민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재충전하고 복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통치의 원천이 고갈되었고 대통령은 권력을 행사할 정당성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가기를 시민이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중요하다. 그는 여야, 국회, 시민을 설득하고 이끌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을 상실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도덕적 권위도 땅에 떨어졌다. 대통령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기도 하다. 통치권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태를 1년3개월 지속하겠다는 것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정책임을 맡는다는 전제하의 막후 통치, 수렴청정, 총리 내치·대통령 외치의 실험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누굴 내세우든 대통령 대리인에 불과하고 대리인으로는 국정을 책임 있게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여 즉시 사임을 선언해야 한다.

정부 수립 이래 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닌 상황에서 대통령 사임은 처음이라 낯설고 또한 두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는 차를 멈추는 일이 우선이다. 차를 멈춰 세운 다음 시민, 여야, 지식인들이 지혜를 모으면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다. 일단 대통령이 사임을 선언하더라도 실제 사임은 국정 안정을 위한 과도 기간을 고려해 미뤄둘 필요가 있다. 국회가 잠정적인 기간 동안 거국적 중립내각을 구성, 대통령의 실질 권한을 위임받아 국정을 주도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 있어야 한다. 내각은 당연히 중립적이어야 하므로 대통령은 탈당하고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정 안정을 꾀하고 공정한 대선이 이루어지도록 관리해야 한다. 중립정부는 또한 여야 간 대립하는 현안의 집행을 유보하고 여야 합의가 가능한 사항만 다뤄야 할 것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참담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열정, 정치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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