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황인 병영칼럼] 인천의 즐거움

입력 2019. 04. 16   15:27
업데이트 2019. 04. 16   15:28
0 댓글

황 인 
미술평론가
황 인 미술평론가


서울 용산역에서 전철 1호선 급행열차를 타면 40분 만에 동인천역에 도착한다. 강북에서 강남까지 가는 시간을 달렸을 뿐인데도 서울과는 사뭇 다른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짭조름한 갯내에 바다를 예감한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5분만 걸어가면 신포국제시장이 나온다. 재래시장인데 ‘국제’라는 이름이 붙은 건 19세기 말 인천 개항과 더불어 몰려든 일본인·중국인·서양인들과 함께 조선인이 가세해 형성된 시장이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이 모여 생활을 가꾸던 국제적인 감각의 시장이 구한말의 인천에 이미 있었다.

신포시장은 먹거리에 관한 한 별천지다. 꽈배기, 중국 호떡, 공갈빵, 신포만두, 쫄면 등 인천이 원조임을 자랑하는 품목들이 이 시장길에 널려 있다. 두 개의 시장길이 나란히 뻗어 있는 그 사이에 횟집 골목이 있다. 특히 민어 횟집이 많다. 서울에서라면 엄두도 못 낼 값비싼 민어회를 2만 원대에 제공하는 식당도 있다.

부산이 일본을 느끼게 한다면 인천은 중국을 느끼게 한다. 서울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왔을 뿐인데 중국으로 엄청 가까이 왔다는 느낌이 든다.

신포국제시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북성동 차이나타운의 화교학교와 식당가에서 그 느낌은 더욱 짙어진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길이 메워질 정도이지만, 예전의 차이나타운은 쓸쓸할 정도로 적막했다.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의 한 장면인 양, 깊고 어두운 중국인 가옥에서 어쩌다 보이는 전족을 한 희미한 그림자의 중국인 할머니가 그 쓸쓸함을 더하곤 했다. 그 그림자는 서해의 흐린 물빛 위에 겹쳐 애잔함으로 번졌다. 중국과 국교가 맺어지고 배와 비행기가 오가면서 인천은 중국의 밀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차이나타운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활기와 함께 오랫동안 그 길을 지켜온 화교들의 쓸쓸함은 사라졌다. 인천역으로 내려가는 언덕길 밴댕이 횟집들과 인천 토박이들의 저렴한 저녁도 사라졌다.

인천은 미식의 도시다. 바다를 낀 덕분에 식재료가 풍부한 데다 개항을 통해 다양한 식재료가 수입됐다. 미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인천 남자들은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장을 보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식가 중에는 인천 출신이 많다. 인천 최초의 의사 신태범(1912~2001)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맛 칼럼니스트다. 『먹는 재미 사는 재미』는 그가 쓴 음식에 관한 책인데, 이제는 잊힌 인천의 옛날 식재료에 관한 설명이 섬세하다. 신태범의 주례로 결혼한 정기용(1932~ )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미식가다. 일급 소믈리에를 능가할 정도의 와인 감식안의 소유자다. 원화랑을 경영하면서 백남준, 요셉 보이스 등을 한국에 소개하고 전시한 거로 유명하지만, 가성비 높은 음식 재료를 잘 찾는 특출한 능력으로도 유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도쿄의 소게츠미술관 관장을 지낸 미술평론가 이경성(1919~2009)은 인천의 국수 공장 집 아들답게 말년까지 라멘·스파게티 등 면 요리를 즐겼다. 전철로 40분이면 근대의 상징이자 미식의 별천지인 인천에 도착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