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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⑥] <만다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송환> <암살>...

<씨네21> 창간 24주년,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 스페셜... 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과 그 감독들 이야기 ● 임권택의 <만다라>



개봉 1981년 9월 12일 / 출연 전무송, 안성기, 방희, 기정수



임권택 감독이 세계 영화제가 호명하는 이름이 된 기점이자,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첫 한국영화. 1970년 <한국문학> 신인상 당선작이었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구도의 길을 찾아 출가한 지 6년된 법운(안성기)은 우연히 버스에서 스스로를 잡승이라고 일컫는 지산(전무송)을 만난다. 승려증도 주민등록증도 없는 그는 도저히 스님 같지 않다. 고기와 술을 즐기는 지산은 과거 절에 머물던 재수생과 성관계를 맺었고, 이후 강간범으로 몰려 승려직을 박탈당하곤 쾌락을 추구했다. 본능의 욕구에 순응함으로써 오히려 그 본능에 접근했고, 그렇게 또 다른 번뇌를 알게 됐다는 파계승의 말은 도발적이면서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법운을 묘하게 매료시킨다. 그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법운은 어느 섬에서 지산이 전염병 환자들의 몸을 씻겨 병을 고쳐주었다는 일화를 전해 듣는다. 만취 상태로 밖에서 얼어 죽은 지산의 화장을 마치고, 법운은 오랜 번뇌의 뿌리였던 어머니를 비로소 만난 뒤 홀로 긴 만행(萬行)의 길을 떠난다. 계율을 지키려는 법운과 파계를 통한 해탈을 추구하는 지산의 로드무비가 롱숏에 담아낸 한국적인 풍경과 함께 펼쳐지는데, 이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서편제>(1993), <달빛 길어올리기>(2010) 등 한국적인 것에 천착한 임권택의 행보로 이어진다. 또한 피사체를 오랜 시간 관조하며 고찰하는, 직전에 <짝코>(1980)를 비롯한 작품으로부터 예견된 임권택의 작가적 스타일을 단단히 자리잡게 한 대표작이다.

이 영화도 주목! <깃발 없는 기수>(1979)_ 동명의 원작 소설을 쓴 선우휘의 이름이나 ‘반공영화’라는 라벨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될, 임권택 감독의 중요한 걸작 중 한편. 좌우 이념 모두를 비관하는 자조적인 색채가 짙게 서려 있다.

● 류승완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개봉 2000년 7월 15일 / 출연 류승완, 박성빈, 류승범, 배중식, 김수현



2000년 충무로 최고 이슈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 그리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등장이었다. <씨네21>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인 2000년 5월, 252호 특집 기사 ‘한국 독립영화 혁명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무려 10페이지 분량을 할애해 제작 과정과 감독 인터뷰를 실은 바 있다. <나쁜 영화>(1997) 현장의 자투리 필름까지 동원해 제작비 380만원으로 찍은 <패싸움>(1998)으로 시작, 이듬해 영화마을 지원작으로 선정돼 찍을 수 있었던 <현대인>(1999)을 만든 후, 2000년 <악몽>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함께 촬영해 한편의 장편영화로 완성했다. 촬영비가 마련될 때마다 배우와 스탭이 무보수에 릴레이식으로 합류해 만든 영화의 총제작비는 6500만원. 각각 단편으로도 완결되면서 전체적으로 유기성을 갖춘 장편을 완성한 기획 및 제작 시스템도 놀랍지만 이렇게 탄생한 16mm 필름 영화를 극장 개봉까지 이뤄냈다. 류승완 감독을 포함한 상업영화 진영의 스탭이 참여해 액션-호러-갱스터를 아우르는 장르영화를 만든 결과, 스타일 역시 독립과 상업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당구장에서 석환(류승완)과 성빈(박성빈)의 패싸움으로 시작해 석환의 동생 상환(류승범)이 조폭의 ‘칼받이’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흐름을 통해 폭력성을 냉소적으로 때로는 비탄의 시선으로 고찰한다. “양아치 역할을 할 배우를 찾느라 힘들었는데 그 양아치가 집에 누워 있더라”는 감독의 인터뷰로 더 유명해진, 류승범이란 배우를 영화계에 입성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도 주목! <짝패>(2006)_ 류승완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한국영화 전체를 통틀어도 수위(首位)에 오를 액션영화 걸작. 작정하고 무술감독 정두홍을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 김동원의 <송환>



개봉 2004년 3월 19일 / 출연 김석형, 조창손, 김영식, 안학섭



한국영화 최초 선댄스영화제 수상작이자 <씨네21>이 뽑은 역대 올해의 한국영화 중 유일한 다큐멘터리. 1992년, 김동원 감독은 갈 데 없는 비전향 장기수 조창손과 김석형을 봉천동으로 데려오지 않겠느냐는 부탁을 받는다. 그때부터 감독은 장기수들의 일상과 인터뷰를 카메라에 기록했다. 자신이 찍은 영상으로 송환 운동에 힘을 보태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오히려 정부가 송환을 적극 추진하며 처음과는 달라지게 됐지만, 감독은 이 시행착오 과정까지 진솔하게 영화에 담아냈다. 촬영 테이프 500여개, 촬영시간 800여 시간에 다다르는 로데이터에서 정제한 148분은 정치적 메시지를 예상을 깨는 방식으로 구현하면서 재미까지 더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진짜 얼굴과 다양한 입장을 비추는데, 그들의 생각을 쉽게 단정 짓지 않으면서 전향 공작의 폭력성을 들추는 솜씨가 태도 면에서도 기술 면에서도 고루 빼어나다. 순박한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볼 땐 잔잔한 미소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정확한 발음을 유머로 승화할 땐 폭소가 터지는 등 관객이 경험하는 웃음의 스펙트럼까지 다양하다. <송환>은 무려 12년 동안 비전향 장기수를 지켜봤지만 그 배 이상 복역한 삶의 무게를 짐작할 수 없다는 겸손함을 잃지 않으면서, 대상을 ‘인간’으로 다루는 것 또한 피사체를 대하는 중요한 예의임을 일깨운다. 고통을 다루는 카메라가 가져야 할 윤리를 보여준,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오래도록 인용될 작품.

이 영화도 주목! <상계동 올림픽>(1988)_ 1988년 서울올림픽의 낯 부끄러운 이면, 강제 철거에 맞선 상계동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88/18>에도 인용됐다.

● 최동훈의 <암살>



개봉 2015년 7월 22일 /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최동훈 감독의 두 번째 천만 영화이자 천만 관객 영화 중 여성배우가 크레딧에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린 유일한 작품. 1933년 상하이, 의열단 김원봉(조승우)이 이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을 암살하는 계획을 도모한다. 암살단의 리더는 “다들 여자가 대장이라 이상한가?”라는 말로 그 이례성을 강조하고 넘어가는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그런데 임무 수행을 위해 경성에 온 후 예기치 못한 치명적 변수가 발생한다. 안옥윤에게는 어린 시절 헤어진 쌍둥이 동생 미츠코(전지현)가 있었는데, 둘의 친아버지가 바로 강인국이라는 점. 미츠코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대표되는 전지현표 ‘철없는’ 연기로 안정된 재미를 준다면, 안옥윤은 시대극 속 여성 재현에 있어 분명한 진보를 일궜다. 안옥윤은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어깨에 힘을 주거나 이성과의 로맨스에 속박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묵묵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위엄 있는 리더다. 또한 경성에 가면 커피도 마시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고 덤덤하게 말하거나 동료들과 어색하게 춤을 추며 미소 짓는 순간은 그의 캐릭터에 유연성을 더한다. 여성 원톱 블록버스터영화가 한국에서 가능한 것은 물론 기록적인 흥행까지 했다는 선례를 남긴 <암살>은, 2018년 <씨네21> 1100호 창간 기념호 당시 영화계 관계자 208명이 선정한 한국영화 최고의 여성 캐릭터 설문에서 13위에 랭크되는 영예도 안았다.

이 영화도 주목! <도둑들>(2012)_ 캐릭터 구축의 고수 최동훈 감독의 장기가 십분 발휘되며 이후 충무로의 멀티 캐스팅 기획영화의 유행을 선도했다. 이름부터 선명한 자신의 영화사 ‘케이퍼 무비’를 통해 한국영화계의 중요한 장르적 진지를 구축했으며, 무엇보다 전지현 부활의 시작.

● 나홍진의 <곡성>



개봉 2016년 5월 12일 / 출연 곽도원, 황정민, 구니무라 준, 천우희, 김환희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방화로 사람이 죽어나간다. 외지에서 온 일본 노인(구니무라 준)이 벌거벗고 짐승의 내장을 파먹는 것을 목격했다는 둥 그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는 소문도 도는 가운데, 사건을 맡은 경찰 종구(곽도원)는 살인사건의 목격자 무명(천우희)을 만나면서 더욱더 일본인을 의심하게 된다. 급기야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까지 이상한 증상을 보이자 그는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을 불러 굿판을 벌인다. 데뷔작 <추격자>(2008) 때부터 폭력을 다루는 태도로 늘 논쟁적 담론을 불러온 나홍진 감독이 그해 가장 대중적인 반응을 얻은 창작자가 됐다는 아이러니. 2016년 최고의 유행어 “뭣이 중헌디”를 탄생시킨 점도 오묘하지만 관객을 ‘현혹’하는 모호한 내러티브가 모두를 <곡성>에 대해 떠들게 만들었다는 점이 특히 기록할 만하다. 극장을 나선 이후에도 관객은 적극적으로 영화 해석에 뛰어들어 각자의 감상을 SNS에서 공유했고, 벽에 부딪힌 이들은 유튜브에서 ‘완벽 해설’ 영상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영화의 감상이 쉬이 휘발되는 시대에 <곡성>은 예외적인 그림을 만들었고, 새로운 놀이 문화를 찾은 관객은 최근 <사바하>나 <어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소비 중이다. 또한 <곡성>의 서사 구조를 지지하는 측과 납득할 수 없는 측의 팽팽한 분석이 이어지면서, 최근 어느 때보다 영화 비평에 활기를 불어넣어 유의미한 논의를 팽창시켰다.

이 영화도 주목! <황해>(2010)_ 크랭크인으로부터 크랭크업까지 1여년이 걸렸고, 무려 총 178회차 만에 촬영을 마쳤다. 캐릭터와 사건을 어느 정도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지, 당대 한국영화계에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극한의 영화적 체험.

● 이경미의 <비밀은 없다>



개봉 2016년 6월 23일 / 출연 손예진, 김주혁, 김소희, 최유화, 신지훈



<씨네21>은 1063호 ‘이대로 보낼 순 없다, <비밀은 없다>를 둘러싼 이야기들’ 특집 기사를 통해 당시 흥행에 참패했던 <비밀은 없다>를 향한 지지를 밝힌 바 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이 영화가 주목받지 못한 걸작으로 다시 소환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는 이유와 함께.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든 전직 스타 앵커 종찬(김주혁)을 중심으로 흘러갈 줄 알았던 영화의 주도권은 딸 민진(신지훈)의 실종사건 이후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에게로 넘어간다. 연홍이 맞닥뜨리는 것은 민진과 미옥(김소희)이 중심에 선 중학생들의 세계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두 중학생 소녀의 내밀한 삶 속으로 들어가고 뭔가 큰일을 저지를 것 같았던 남자 어른들의 사정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도구화되는”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관객의 존재를 언급했다. 송경원 기자는 “삐죽 튀어나오고 정돈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연결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동력이자 핵심”이라며 지지의 뜻을 밝혔다. <비밀은 없다>는 영화가 컷과 컷이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관한 예술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며 최근 어떤 한국영화보다 독창적인 연출을 보여줬고, 현실에 있지만 미디어에서 왠지 은폐되던 유의 여성 캐릭터와 심리를 스크린에서 확인하는 쾌감을 선사했다. <씨네21>이 한국영화 100년 역사에서 선정한 30편 중 마지막 작품으로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를 소환한 것은, 앞으로 한국영화계에 이 미덕을 상기하는 작품이 더 자주 탄생하길 바라는 염원을 반영한 결과다.

이 영화도 주목! <미쓰 홍당무>(2008)_ 과거 한국영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래서 더 낯선 여성 캐릭터의 탄생. 자존감 낮고 사회성 부족한 양미숙은 한심함과 동정심, 묘한 동질감이 번갈아 고개를 들게 만든다.

글 :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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