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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영화 곡성해석
비공개 조회수 18,521 작성일2016.06.25
곡성..참 아이러니한데요..ㅜ일부해석은봣는데
살짝이해안가는게 마지막장면에서 무명의 옷이 여러개로 바뀌잖아요? 왜그런지랑..효진이 할머니가 보이지않더라구여...이두개좀 자세하게 해석부탁드려요 추가내공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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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

나만의 곡성해석(긴글주의) 

다시 수정해서 올립니다. 뺄 부분은 뺐고 추가시킬 것은 추가 시켰습니다.

 

 

신 혹은 귀신을 믿는가. 믿는다면 영화 곡성은 무섭게 다가올 것이다. 나같이 신이나 귀신은 인간이 만든 상상력의 산물 따위로 취급하는 즉, 신이나 귀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무섭지도 않을뿐더러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얼핏 보일 것이다. 아니, 감독은 영화 애초에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던져주었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라는 누가 복음 24 37-39이 그것이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아서 누가복음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나의 명언형식으로 봤을 때 저 구절의 핵심 주제는 유령이 있다고 믿지 말고, 그러니까 색안경을 끼지 말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엄연히 살과 뼈가 있고 눈, , , 입 그리고 사지(四肢)도 모두 달린 정상적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예수가 옷을 좀 너덜하게 입고 외출했는지, 아니면 시냇가에서 물놀이 하다가 축축이 젖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는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의 모습이 유령으로 보였나보다.

누가복음의 역할은 메시지인 동시에, 그리고 메시지이기 때문에 관객에게도 실질적으로 허용되는 즉, 우리 삶의 어두운 일부를 거울처럼 비추어 줌과 동시에 이 영화에 홀리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문구로 봐도 된다.

저 누가복음의 주제를 토대로 이 영화를 해석해보면, 우선 영화 흐름은 주인공 종구(곽도원), 그의 동료 오성복(손강국), 부제 양이삼(김도윤), 무당인 일광(황정민) 등 귀신을 믿어버린 자들 즉, 비정상적인 관점 혹은 망상에 취한 관점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렇기에 도깨비도 나오고, 살아있는 금어초가 해골모양으로 썩어버리고, 후반부 천우희가 종구에게 가지마라고 소리 지르며 눈동자 색깔이 퍼렇게 변하는 등 기이한 현상의 장면이 나오는 것 같은데, 중요한 점은 영화 중간 마다 감독은 귀신을 믿는 주인공들에게 곡성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해결 실마리를 친절하게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은 귀신에 홀려서(혹은 소문에 홀려서) 전부 그 사실상의 사건 실마리를 무시해버린다. 영화 초반부 야생 버섯이 부른 살인, 일가족피살이라는 제목을 달고 버섯에 환각 성분이 있다는 내용의 신문보도와 중반부 늙은 신부가 충고해주는 그것과 후반부 야생 독버섯을 재료로 만든 건강식품 유통시켜라는 헤드라인을 띄워주는 텔레비전 뉴스가 그것이다. 결국 사람들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나체로 밖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눈이 뒤집히고, 뼈가 꺾이고, 피를 토하고, 나무에 매달려 스스로 XX하고, 주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독버섯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주인공들은 귀신이 씌어서 그리 된 것이라며 늙은 신부의 말처럼 명확한 근거도 없이 계속 확신을 해버리고 사태는 더욱 심각하게 변질되고 만다.

버섯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종구의 딸 효진도 버섯을 먹었다는 것인데, 아마 영화 초반부 종구와 효진이 강가에 앉아 있을 때 들고 마시던 그 갈색 음료가 아닌지.(음료 색깔도 버섯 우린 것 같이 갈색 빛을 돈다. 거기에 애들이 마실 수 있게 설탕도 첨가 했을 수도) 언론에서도 나왔듯이 야생 독버섯을 재료로 만든 건강식품을 유통 시켰기 때문에 그 유통 과정이 음료까지 미친게 아닐까. 더구나 곡성은 사람도 별로 없는 시골이다. 시골이기 때문에 버섯 같은 자연식품은 쉽게 유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종구도 효진이 건네주는 음료를 한 모금 살짝 마셨는데, 종구는 왜 효진처럼 변하지 않았을까. 소량으로 섭취했을 땐 괜찮은 버섯인가보지(주인공이 변하면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했으나 이것은 단지 나의 추측일 뿐이고, 효진이 버섯을 먹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갑자기 왜 그런 병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에서 효진은 다른 살인범들처럼 같은 증상을 보일뿐이다. 종구는 야심한 밤 경찰서에서 그의 동료 성복과 대화할 때 자기 입으로 살인마의 혈액에서 독버섯의 성분이 검출 됐다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언론에서 보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딸의 증상과 살인범의 증상이 같다는 것을 눈치는 챘으나 버섯이 곡성에 유통되었는지 추적해보지도 않고 소문을 우선으로 믿어버린다.

 

 

이쯤에서 소문의 주인공 외지인 일본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구가 소문대로 귀신으로 의심되는 일본인의 집에 찾아가서 효진이 저렇게 아프게 된 핵심 증거품을 찾게 된다. 효진의 이름이 적힌 실내화다. 이 실내화는 무엇인가? 버섯 때문이 아닌 소문대로 일본인 때문에 진짜 귀신이 쓰인 것인가? 하지만 효진의 이름이 적힌 그 실내화는 진짜 효진의 것인지 모를뿐더러, 진짜 효진의 것이라면 어째서 일본인의 집에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종구는 발버둥 치며 아파하다가 이제는 회복이 되었는지 먹지 않던 생선을 먹고, TV를 보며 한가하게 숙제(?)하는 효진에게 물어본다. 효진은 자기 실내화가 아니라고 한다. 그 일본인을 만났냐는 종구의 질문에는 효진은 고개를 끄덕인다. 종구는 이어 중요한 문제니까 그 일본인과 어디서 만났고 무었을 했는지 싹 다 말하라고 한다. 그러나 효진은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며 도리어 질책한다. 그리고는 욕을 하며 방을 빠져 나간다. 일단 실내화는 진짜 효진의 것인지 모른다. 효진이 아니라고 답하는 장면만 나오고는 그냥 넘어간다. 그 증거가 영화에는 나오지를 않는다. 또한 효진은 일본인을 만났다고는 했으나, 일본인은 만났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 만나는 장면도 없다. , 효진이 이미 버섯에 중독되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종구는 효진과 일본인이 진짜 만난 것인지 그 증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효진이 간밤에 자기에게 찰진(?) 쌍욕을 날리며 신경질적으로 변한 모습만을 보고나서는 너무 당황해서 아예 일본인 때문이라고 확신을 해버린다.

종구의 실수는 소문만 믿고 일본인의 집에 찾아갔다는 것. 아까도 말했듯이 효진의 증상과 처음 혈액에 독버섯 성분이 검출된 살인마의 증상이 같고 언론에 보도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곡성 독버섯 유통 여부를 추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구가 효진에게 질문해야 될 것은 일본인을 만났냐는 것이 아니라 버섯을 먹은 적이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미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효진에게 정상적인 질문을 던져도 신경질을 내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서 일본인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러 왔는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다만 무당인 것은 확실히 보여 주었으나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모른다. 늙은 신부의 말대로 무당인 동시에 독버섯을 연구하는(?)대학교수일 수도 있다. 일본인 집에 있던 그 사진들은 일종의 연구 자료일 수도 있고 귀신을 믿는 자들인 무당에게는 일종의 주술주문을 걸기위한 재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주술주문이 저주의 주문인지 아니면 이롭게 하는 주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일본인은 교통사고로 한 번 죽게 된다. 그리고는 영화 후반부에 도깨비로 나온다. 하지만 일본인이 도깨비라면 절벽에 떨어져서 아파 우는 장면은 무엇인가. 거기다 슬픈 배경음악과 함께 말이다. 후반부의 도깨비는 이미 귀신의 존재를 굳게 확신한 유난히 기가 약해보이는(?) 부제 양이삼의 허깨비라 생각된다. , 양이삼의 망상 속인 것이다. 양이삼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데, 동굴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망상 속에 완전히 빠져 들어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영화 초반부 심마니 덕기가 도깨비에게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덕기는 도깨비에게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덕기가 본 것도 허깨비일 뿐이다. 왜냐하면 덕기는 죽은 고라니를 매려다 산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다쳤으니까. 그럼 덕기가 직접 종구와 성복에게 보여준 고라니는 무엇인가. 덕기가 그냥 나두고 온 것이겠지. 훼손된 고라니 시체는 도깨비가 먹은 것이 아니라 부패한 것이고. 덕기가 번개 맞는 장면은 거짓말하는 사람은 천벌 받는다는 것을 묘사한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 장면 도깨비가 사진을 찍는 것은 내가 봤을 때 조롱의 의미로 보인다. ,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보내는 조롱.

그리고 일본인의 집을 지키고 있던 검은 개. 종구에게는 이 검은 개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검은 개가 짓는 것은 망상 속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이자, 일종의 죽비(竹篦) 역할인 것이다. 그러나 종구는 개에게 물려도 정신 차리지 않고 결국 망상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무당 황정민의 말대로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린 셈이다.

 

 

천우희는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 보았을 때, 그냥 동네 바보일 뿐이다. 사이비적으로 귀신을 믿는 자들은 비정상적인 동네바보도 귀신으로 보일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동네바보를 봐도 약간 무섭게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천우희가 등장하며 무당인 황정민이 피를 토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많이 피곤했나보지 뭐. 아니면 간만에 자신의 이상형을 보고 흥분 했다거나.

귀신을 믿는 자 특히, 그것이 극한에 달한 자가 무당이다. 무당의 관점에서는 천우희가 귀신으로 보일 것이다. 무당은 천우희를 보고 나서 피를 흘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천우희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황정민은 코피를 조금씩 흘렸고, 천우희가 나타나자마자 피를 한꺼번에 토해냈으니 말이다. 천우희가 나타나자마자 피를 한꺼번에 토해냈으니 무당의 입장에서는 천우희를 귀신으로 여길 수밖에. 피를 한꺼번에 토해낸 것은 그냥 작은 코피로 그치면 되는데 갑자기 천우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 무당의 육체마저 귀신을 믿어버리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갑자기 나타나서 나가라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바보 천우희를 보고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무당만의 생리를 한 것이다. 무서우면 오줌 싸듯이 말이다. 거기다 입에서 피를 토하지도 않았다. 하얀 액체였다. 그냥 무서워서 구토를 한 것뿐이다.(막걸리 한잔 했나보지 뭐) 그리고는 무소를 타고 도망치는데 나방들이 때거지로 날아온다. 또 너무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무당인 황정민은 결국 차 밖으로 뛰쳐나오는데 이게 왠일인가. 그 많던 나방은 어디로 갔는가. 때거지로 차에 부딪혀 죽은 흔적조차 없어졌다. 나방 역시 허깨비인 것이다. 한편으로 무당이 겉으로는 기가 강해보이지만 제일 겁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허깨비기 자꾸 보이는 것이지 않겠는가.

 

 

후반부에 종구가 동네 바보 천우희랑 얘기하는 사이에 무당 황정민이 빨리 집에 가보라고 전화가 왔다. 황정민은 딸이 가족을 살해할 거라는 것을 알고 전화를 했을까? 그건 모른다. 여튼 황정민은 불길한 예감에 빨리 가보라고 한다. 하지만 종구는 바보 천우희와 대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무당의 그 점괘라는 것도 맞아떨어지는 법이 있는 것인지 그 사이 이미 딸 효진은 다른 살인범들처럼 밖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가족을 살해하고 만다. 만약에 종구가 무당의 말을 빨리 들었다 쳐도 종구는 무당을 믿은 것이기 때문에 종구는 그 망상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종구가 황정민의 전화와 천우희의 말에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진짜 종구가 벗어나야할 것은 황정민이 주는 선택과 천우희의 선택 그 자체인데 말이다. 무당과 천우희의 말을 아예 들으면 안 되는 것이다.

 

종구는 바보 천우희 뒤에 떨어진 효진의 머리핀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전에 살인범들이 입고 있던 옷을 천우희가 걸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죄다 천우희 짓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급히 집으로 돌아간다. 사실 내가 평소에 대표적으로 생각하는 동네 바보의 이미지는 바보가 동네 이곳저곳을 싸돌아 다니는 모습이다. 그 옷들은 천우희가 돌아다니다가 그냥 주워 입은 것으로 보인다. 머리핀은 효진이 싸돌아 댕기다가 떨구고 간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후반부 비오는 새벽, 황정민이 사태가 일어난 주인공 종구의 집에 들려 사진을 찍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차 뒷 트렁크에서 작은 상자 하나가 툭 떨어진다. 떨어지면서 그 속에 있던 어떤 사진들이 쏟아진다. 그 사진들이 무엇을 찍은 것인지는 모른다. 나는 황정민이 사진을 찍고 상자에 모아둔 행위가 두 가지로 해석 된다. 하나는 황정민이 진짜 사이비적으로 귀신을 믿는 무당이라면 그의 입장에서는 사건이 확실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으로라도 그 귀신을 없애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황정민이 무당인 척 연기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제물을 요구한 것으로 보았을 때 돈을 벌기 위한 일종의 사기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구의 망상을 일부러 부추겨 관념을 이용한 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의 사진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종구의 사례를 적용시키기 위한 자료수집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황정민이 츄리닝으로 갈아입을 때 일본인이 입은 일본의 전통 속옷인 훈도시를 똑같이 입은 장면이 나온다. 외국의 전통의상까지 입었다는 것은 그만큼 신앙이 깊다는 것으로 상징된다. 따라서 그의 차 안에 불상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전자의 해석에 가깝다고 본다. 피범벅으로 살해된 종구의 가족을 보고도 무덤덤하게 사진만 찍고 나가는 모습을 보라. 무당은 얼마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지! 정상이라면 빨리 119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 영화에서 천우희와 무당(황정민, 일본인)은 종구가 귀신을 믿도록 부추기는 존재인 동시에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미끼일 수도 있다. 아니, 이 영화 자체가 관객에게 던지는 하나의 거대한 미끼일 수도 있다. 첫 장면 일본인이 지렁이를 낚시 바늘에 꿰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듯, 미끼를 던진 것이다. 주인공들은 결국 무당 황정민이 말 한데로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고 관객들 중에서도 미끼를 물어버린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이한 현상들 즉, CG와 망상에 빠진 관점으로 진행되는 사건전개에 속아서 이 영화가 단순히 전설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종교적인 영화로 보일 것이다. 이미 애초에 누가복음의 경고문을 걸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행히 나는 냄새를 맡고 미끼를 물지 않았지만.

 

종구는 경찰이다. 경찰은 사실을 바탕으로 사건현장을 해결하는 존재다. , 경찰은 신을 믿지 않는 자로 상징된다. 경찰인 종구도 처음엔 그것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종구에게 급하게 일어난 그 확신과 믿음은 아버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종구는 너무 급했던 것이다. 절제 없이 딸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늙은 신부가 말 한데로 천천히 의사를 믿고 기다리면 될 것을... 갑자기 김수영의 시 봄밤이 떠오른다.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김수영, ‘봄밤 전문 1957 >

 

사랑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절제 없는 사랑은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봐도 된다. 종구는 딸을 사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딸을 사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문에 홀려서 딸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딸은 엄연히 병에 걸려 몸부림 치고 있는데 끝까지 의사말을 믿지도 않고 곁에 있어 주지도 않았다.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 망상에 취해서 그냥 종교적으로 해결하려들었다는 것이다. 효진의 대사 '뭐시 중헌디'가 나는 '날 좀 제대로 봐줘'라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비명으로 들리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기르려는 나의 부모와, 아이들의 각자 고유한 세계를 전부 죽여 버리고 모두 하나같이 전체주의식으로 가르치려드는 힘없는 대한민국 교사들의 폭력이 떠오르는 것은 나뿐일까. 참 씁쓸하다.

오늘도 시험성적이 중요하다고 개처럼 짖어대는 부모들과 근의 공식 는 중요하니까 무조건 외우라고 더러운 침을 튀겨대는 교사들에게 한마디하고 싶다. “뭐시 중헌디, 뭐시 중허냐고!” “뭐시 중헌지도 모르면서 지랄이여...”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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