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디자이너 에르뎀 모랄리오글루
그 색깔의 힘일까. 자신을 돋보이려는 세계의 파워 우먼들이 그의 옷을 찾는다. 니콜 키드먼, 시에나 밀러 등 톱스타 배우들부터 미셸 오바마,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빈까지 모두 고객 리스트에 올라 있다. 최근에는 내로라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잇따라 협업의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에르뎀 스타일은 어떻게 빚어졌고, 얼만큼 선명해졌을까. 한국을 처음 찾은 그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지난달 17일 만났다.
ERDEM ―“서울의 많은 사람이 하이 앤 로우(High & Low)를 소화한다. 샤넬 슈트에 운동화를 신는 식인데, 클래식과 스트리트 스타일을 하나로 묶어내는 모더니티다. 흔히 에르뎀 하면 공식적인 드레스를 떠올리는데, 이번 컬렉션으로 에르뎀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기회가 될 거라도 여겼다.”
지난 1년 사이 화제가 되는 협업이 많았다. 패스트 패션(H&M)부터 무대 의상(안무가 크리스토퍼 윌든의 로열 발레단 공연), 화장품(Nars)까지 영역도 다양하다.
ERDEM ―“시작은 다 달랐는데 한꺼번에 쏟아졌다. 어쨌든 협업을 하면 공부하는 학생이 된다. 가령 발레 협업은 규제에 대한 훈련이었다. 내가 집중하는 컬러나 실루엣, 소재에 앞서 인체와 움직임을 이해해야만 했으니까. H&M 협업에서는 처음으로 남성복을 만들면서 에르뎀의 남성상을 그려봤다. 이번 분더샵과의 협업도 내 기존 리조트 컬렉션을 ‘큐레이팅’하는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ERDEM ―“물론이다. (휴대폰을 뒤적이며) 가보고 싶은 곳들이 있다. 아티스트 김환기 작품이 있는 환기 미술관과 한국가구박물관이다. 한국의 전통 가옥을 볼 수 있다는 ‘최순우 옛집’ 말고도 국제갤러리·아라리오갤러리 역시 머리 속에 있다. 아, 갤러리현대나 아름지기는 어떤가. 나는 과거 왕실이나 로열 패밀리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 시내 고궁을 거닐어 보고 싶다. 또 아모레퍼시픽 뮤지엄도 굉장히 특별하다고 들었다. 세 곳만 꼽는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와, 어떻게 알게 된 곳들인가.
ERDEM ―“내 파트너가 건축가인데, 사무실 직원 중에 한국인이 있어서 몇몇 장소들을 제안했고 그중 고른 것들이다.”
ERDEM ―“8년 전부터 수집에 나섰다. 사람들이 스포츠카나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모으는 마음으로 나는 작품과 책을 모은다. 참, 한국의 1960~70년대 고서들을 구할 곳이 있는가? 초판본 말이다. 읽지 못하지만,상관없다. 나는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서관의 멤버다. 거기서도 늘 어떤 책을 사야할지 고민하곤 한다.”
가장 아끼는 수집품은 뭔가.
ERDEM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두 점이 있는데, 70년대 작업한 사진 콜라주 작품이 최고 애장품이다.”
ERDEM ―“맞다. 특정한 누군가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올 가을·겨울 시즌만 해도 브로드웨이 댄서이자 안무가였였던 프레드 아스테어의 누나를 내세웠다. 초기 할리우드 스타였다가 영국 명문가 귀족과 결혼한 여인이다. 그가 살았던 아일랜드 성을 찾아 당시 어떤 옷을 입었을까 그려봤다. 풍성한 롱 스커트에 퍼 코트를 입은 컬렉션이 그렇게 나왔다. 하나의 아이템을 어떤 상황에 부닥친 인물에 넣으면 굉장히 특별한 것으로 변모한다.”
이야기는 매번 달라져도 에르뎀 스타일은 분명하다. 어떤 배경이 있나.
ERDEM ―“2003년 나의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졸업 작품도 지금과 같다. 여전히 여성스러운 자수, 꽃 일색이다. 나는 여성성의 힘을 믿는다. 그 힘이란 13년 전 내가 처음 만든 옷을 지금 입어도 새 옷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ERDEM ―“5~6세부터가 아닐까. 내게는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 부모님은 우리를 동등하게 키웠고, 남자가 여자가 어때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내가 인형을 갖고 놀아도 전혀 장벽을 두지 않으셨다. 어릴 때부터 여성의 존재에 가깝게 접근했고, 여성이라는 존재를 깊숙이 들여다봤다. 여자들이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지, 어떻게 슬퍼하는지 등등 말이다.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를 매혹시켰다.”
이국적 아름다움 또한 에르뎀의 특징이다. 아버지는 터키 출신, 어머니는 영국 출신, 게다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자랐다는 배경이 영향을 미치나.
ERDEM ―“글쎄, 하지만 남들과 달리 다양한 문화를 일상에서 접한 건 분명하다. 아버지는 검정 머리·눈을 지닌 전형적인 터키인이었고, 어머니는 금발에 파란 눈을 지닌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친할머니 댁에 가면 한 분은 도자기 잔에, 한 분은 유리 잔에 차를 마시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또 어릴 적엔 몬트리올 호수 옆 고요한 동네에서 몽상을 하며 낮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런 것들이 지금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을까.”
ERDEM ―“종종 이런 질문을 받지만 나는 아름답고, 지적이고, 빼어난 여성들이 내 옷을 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다.”
이들이 당신 옷을 입는 특별히 찾는 이유를 뭐라고 여기나.
ERDEM ―“여성들이 원하는 여성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려내고 있다는 것 아닐까. 그래서 가장 여성스러운 것이 가장 파워풀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ERDEM ―“전혀, 그저 사실이 아닌 것에 소문이 돌 때 기분이 어땠을지만 상상해 달라.”
ERDEM ―“그가 로열 패밀리가 된 이후 지금까지 여러 벌을 작업했는데, 나로서는 굉장한 영광이다. 그는 매우 아름답고 우아하고 환상적이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에르뎀·퍼스트뷰코리아·나스·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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