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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리랑카의 정식 국가 명칭은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이다. 스리랑카는 인도 동남부 인도양 해상에 있으며, 면적은 6만 5610㎢로 한반도의 약 1/3이다. 기후는 고온다습하며 열대성 기온으로 콜롬보(Colombo)의 연평균 기온은 27℃이다. 인구는 2012년 기준으로 2033만 명이다. 수도는 콜롬보이다. 콜롬보 인구는 약 70만 명이며, 수도권 전체 인구는 약 280만 명이다. 인구밀도는 2009년 기준으로 ㎢당 326명이다. 인종은 싱할라(Singhala)족 74%, 타밀(Tamil)족 18%, 무어(Moor)족 7%, 말레이(Malat)족, 버거(Burger)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는 불교 70.2%, 힌두교 12.6%, 이슬람교 9.7%, 기독교 7.4%이다. 언어는 싱할라어, 타밀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독립일은 1948년 2월 4일(영국으로부터 독립)이다. 스리랑카의

  • 스리랑카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스리랑카의 고대와 중세 역사 2. 스리랑카의 근세 식민시대 3. 스리랑카의 독립 이후   1) 세일론   2) 스리랑카 공화국   3)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 4. 스리랑카의 주요사건 일지

  • 반다라나이케 공항은 스리랑카의 유일한 국제공항으로 유럽, 중동, 서남아시아 등지로 연결된다. 2009년 현재 민간항공 분야에서는 경쟁력과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많은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반다라이나케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2단계가 진행 중에 있다. 스리랑카 공항·항공서비스(AASL)는 2억 900만 미국달러의 예산을 들여 마타라(Mathala)에 제2국제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중국의 하버 엔지니어링사(Habour Engineering Co. Ltd)와 주요 건설공사를 계약하였다.

  • 한국과 스리랑카의 관계는 1972년 10월 9일 주스리랑카 통상대표부 개설과 1973년 11월 14일 외교관계 수립 이후, 지난 40년간 꾸준히 발전하였다. 특히 1995년 10월 한국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1996년~1997년 임기)에 진출할 수 있도록 스리랑카는 입후보를 포기하였다. 그 후, 1996년 8월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르퉁가(Chandrika Bandaranaike Kumaratunga) 대통령의 공식방한을 계기로 양국관계는 경제협력과 투자 분야를 중심으로 더욱 긴밀해졌다. 양국의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는 2004년 12월 26일 스리랑카에 쓰나미(Tsunami)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 더욱 돈독해졌다. 당시 한국의 국무총리였던 이해찬을 비롯하여 양국의 고위급 인사들은 양국을 활발하게 오가며 스리랑카 쓰나미 피해 복구와 재건사업을 적극 지원하였다. 또한 한국의 비정부기관(NGO)은 스리랑카 지원을 강화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한 단

  • [국가개황] [국가명] 스리랑카 민주 사회주의 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 [면적] 65,610㎢ (자료원: 스리랑카 중앙은행 연간보고서, 2022 기준) [수도]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Sri Jayawardenepura Kotte) [인구] 22,181,000명 (자료원: 스리랑카 중앙은행 연간보고서, 2022 기준) [민족(인종)] 싱할라족(74.9%), 타밀족(15.4%), 무어인(무슬림, 9.2%), 기타(0.5%) [언어] 싱할라 및 타밀어 [종교] 불교(70.1%), 힌두교(12.6%), 이슬람교(9.7%), 기독교(7.4%), 기타 [기후] 열대 몬순기후, 고온다습(연평균 콜롬보 기온 27°) [국가원수] ㅇ 대통령: Ranil Wickremesinghe (정당명 : UNP) - 전임 Gotabaya Rajapaksa 대통령이 경제위기에 따른 반정부 시위로 2022년 7월 13일 임기 도중 사임하여 전

  • 스리랑카의 주요 관광지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 1. 아누라다푸라]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는 가장 알려진 스리랑카의 고대도시이다. BC 5세기부터 약 1000년간 스리랑카의 수도였으며, 이 곳의 불교유적은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곳에서 13㎞ 떨어진 곳에 스리랑카 불교의 요람인 미힌탈레(Mihintale)가 있다. [ 2. 포플로나루와] 포플로나루와(Poplonnaruwa)는 11세기~13세기간 스리랑카의 수도였다. 이 곳의 유명한 사적은 불치테라스(Terrace of the Tooth Relic)와 4개의 부처 상을 조각한 갈 비하라(Gal Vihara)이다. [ 3. 시기리야] 시기리야(Sigiriya)는 바위로 된 요새로 포를로나루와에서 66㎞ 떨어진 곳에 있다. 5세기에 카샤파(Kashyapa) 왕은 이곳에서 요새화된 궁전을 세웠다. 바위벽에 새긴 미녀도가 유명하다. [ 4. 캔디] 캔디(Kandy)는 콜롬보(Colombo

  • 스리랑카는 교육과 의료 수준이 인근의 서남아시아 지역국가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다. 또한 지속적인 경제성장 덕분에 스리랑카의 전체 빈곤 지수는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 간의 빈곤 격차는 커지고 있다. 스리랑카는 불교도가 지배적인 국가이며, 불교계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2009년 5월 19일 타밀엘람 해방 호랑이(LTTE)와의 내전이 종식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가 빠르게 안정되고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스리랑카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스리랑카는 일찍이 인도의 힌두사상과 원시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벽화, 조각, 건축물을 보면 각종 힌두신화와 베단타 철학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불교가 전래된 이후, 스리랑카인들은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폴론나루와(Polonnaruwa), 캔디(Kandy)를 연결하는 컬처럴 트라이앵글(Cultural Triangle)에 불교사원을 건축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교설화에 나오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 스리랑카는 보통 토요일과 일요일은 쉰다. 그러나 일부 기업체는 토요일 오전에 근무하기도 한다. 매월 음력 15일은 부처님을 기념하는 포야 데이(Poya Day)이다. 이날 모든 공공기관과 은행은 업무를 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상점들도 휴점이다. 스리랑카는 설날인 4월 15일을 전후로 사실상 1주일 간 쉰다. 그래서 공공기관과 은행은 이용할 수 없다. 매년 9월 10일경은 이슬람 휴일로, ‘라마단 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날(End of Ramadan)’이다. 라마단이 끝나면 3일간 ‘이드-울-피뜨르(Id-Ul-Fitr)’라는 축제가 열린다. 또한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로 휴일이다. 각 종파별 휴일이 연간 2일 이상이다. 그래서 연간 휴일이 한국의 2배 이상이다.

  • 스리랑카는 1948년 2월 4일 영국연방 내 자치국인 세일론(Ceylon)으로 출범하였다. 세일론은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고 현지인 총독을 두어 국가원수의 권한을 대행하면서, 내각의 수반인 수상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영국식 내각책임제를 채택하였으며 국가지속기간은 1948년 2월 ~ 1972년 5월이다. 스리랑카는 독립 후 돈 스티븐 세나나야케(Don Stephen Senanayake) 초대수상이 이끄는 통일국민당(UNP)의 보수정부가 집권하여 친서방 정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1956년 4월 총선에서는 인민통일전선(후에 자유당으로 통합)이 1960년 7월 총선에서는 스리랑카 자유당(SLFP)이 집권하였다. 스리랑카 자유당은 기본적으로 진보적 보수 세력이었으나 점차 좌경화되었다. 1959년 9월 25일 솔로몬 웨스트 리지웨이 지아스 반다라나이케(Solomon West Ridgeway Dias Bandaranaike) 수상이 암살당한 후 미망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S

  • [ 1. 스리랑카의 지리] 스리랑카는 동경 79°40′~81°55', 북위 5°55′~9°50′사이에 있는 인도 동남부 인도양상에 위치한 도서국이다. 서북단 팔크해협(Palk Strait)에서 인도까지 겨우 29km이다. 애덤스브리지(Adam's Bridge)라고 하는 작은 섬들이 스리랑카와 인도 사이에 있다. 서쪽에는 마나르지협(Gulf of Mannar), 동쪽에는 뱅골만(Bay of Bengal)이 있다. 최북단 포인트 페드로(Point Pedro)에서 최남단 돈드라 헤드(Dondra Head)까지 435km이며, 최동단 상가만칸다 포인트(Sangamankanda Point)에서 최서단까지는 225km이다. 스리랑카는 1970년 10월, 12해리 영해를 선언했다. 그리고 1977년 2월 15일 접속수역 24해리, 어업전관수역 200해리를 재설정하여 포고하였다. 스리랑카의 지형은 중남부 산악지대(Hill Country)와 기타 해안지대로 크게 나뉜다. 중앙산악지대는 스

  • 스리랑카는 1505년부터 약 440년 동안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으로부터 차례로 식민통치를 받았다. 1505년~1658년 스리랑카를 식민 통치한 포르투갈은 스리랑카 서부해안지방에 나타나 스리랑카를 무단통치하였다. 그러나 스리랑카인들에게 가톨릭 개종을 장려하고 유럽의 물질문명을 전파함으로써 스리랑카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1658년~1796년 스리랑카를 식민 통치한 네덜란드는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중앙의 캔디왕국을 제외하고 해안지방을 거의 점령하였다. 통치의 주목적이 향료무역을 독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포르투갈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온건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버거족(Burgher)은 네덜란드인 후예로서 운하·관계시설 정비에 종사하였다. 1796년~1948년 스리랑카를 식민 통치한 영국은 1815년 스리랑카의 최후 왕조인 캔디왕국을 멸망시키고 스리랑카 전 국토를 완전히 식민지화하였다. 식민통치에 싱할라족과 타밀족을 모두 참여시켰으나...

  • 스리랑카에는 선사 시대부터 베다족이 거주하였다. 그러나 BC 6세기경 인도 북부에서 인도-아리안족이 스리랑카로 건너와 토착원주민 베다족을 정복하고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왕조를 건립하였다. BC 248년 인도 아소카왕의 아들 마힌다(Mahinda) 왕자가 승려 4명을 이끌고 스리랑카로 왔다. 그들은 데바남피야티사(Devanampiyatissa) 왕에게 불교를 전파하였다. BC 2세기경 인도 남부에서 타밀족이 스리랑카를 침입하였다. 중세에 들어서 인도-아리아족의 후예인 싱할라족과 타밀족간의 대립이 더욱 심해졌다. 5세기~6세기 인도 남부 지방의 타밀족은 싱할라 왕족의 내분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끊임없이 싱할라 왕족을 침입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스리랑카 북부지역에 타밀왕국을 세웠다. 북부지역에 자리잡은 타밀족은 힌두교를 믿으며 싱할라족과는 전혀 다른 문화와 관습을 유지하였다.

  • 한국투자업체가 스리랑카에 가장 많이 진출한 시기는 1980년대 말 ~ 2000년대 초였다. 이 시기에 스리랑카의 주류 산업은 봉재 의류, 모자, 가방, 텐트 등 섬유와 관련된 제조업이었다. 스리랑카는 저임금과 섬유쿼터 활용을 위해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제조업은 중국과 베트남을 포함하여 제조업 생산성이 높은 제3국으로 모두 이전되었다. 스리랑카에 남아 있는 한국 제조업체들은 현지에서 고무나 세라믹과 같은 원자재 확보가 가능한 일부 기업뿐이다. 한국계 건설업체와 IT업체들은 한국의 원조사업, 콜롬보 항 확장건설 프로젝트인 아시아개발은행(ADB) 차관사업, 전자정부(e-Government)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외국인 투자유치정책에 따라, 1988년이래 한국의 스리랑카 투자 현황은 2009년 말 기준으로 348건으로 1억 7100만 달러에 달한다. 스리랑카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는 2000년까지 120개였다.

  • [ 1. 정부지원 현황] [ 1) 무상원조 지원] 한국은 2005년~2007년간 총 1500만 달러를 스리랑카에 지원하기로 약속하였다. 이중 130만 달러는 현금 60만 달러, 물자 70만 달러로 이미 지원하였다. [ 2) 정부지원단 파견(110만 달러)] 우리 정부는 2005년 1월 1일 ~ 1월 8일 36명으로 구성된 긴급 의료지원단 2개 팀을 파견하여 의료 활동과 의약품에 50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2005년 1월 12일 ~ 1월 25일과 1월 23일 ~ 2월 5일 파견된, 45명으로 구성된 한국국제협력단(KOICA) 긴급구호봉사단 2개 팀은 의료 및 방역 활동을 하였으며 3만 5000달러 상당의 구호물품을 스리랑카에 전달하였다. 2005년 3월 15일 ~ 9월 15일 18명으로 구성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재건 복구 팀제 봉사단 4개 팀이 파견되었다. 그리고 청소년 위원회의 주관 하에 2005년 5월 7일 ~ 5월 16일 약 180여 명의 청소년 해외자원봉사단

  • 스리랑카 경제의 3대 축은 봉제업, 홍차산업, 관광산업이다. 스리랑카는 경제 구조상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2009년 기준으로 각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차산업이 12.6%, 2차산업이 29.2%, 3차산업이 57.6%였다. 스리랑카의 산업동향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스리랑카의 농업 2. 스리랑카의 제조업 3. 스리랑카의 관광산업과 통신산업 4. 스리랑카의 석유와 가스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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