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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리랑카의 센트럴 하이랜드(Central Highlands of Sri Lanka)는 스리랑카 섬의 중남부 지역에 있으며, 피크 야생보호지역(Peak Wilderness Protected Area), 호턴 평원 국립공원(Horton Plains National Park), 너클스 보전림(Knuckles Conservation Forest)의 세 보호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해발 고도 2,500ⅿ에 있는 고산 산림지역으로, 서부자줏빛얼굴랑구르(western-purple-faced langur, Trachypithecus vetulus nestor), 붉은홀쭉이로리스(Horton Plains slender loris, Loris tardigradus), 스리랑카표범(Sri Lankan leopard, Panthera pardus kotiya) 등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비롯하여 매우 다양한 식물상과 동물상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 생물다양성 집중지역(biodiversity hotspot)으로 평가받고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스리랑카의 센트럴 하이랜드는 피크 야생보호지역, 호턴 평원 국립공원, 너클스 보전림의 세 보호구역으로 이루어진...

  • 석굴 사원인 담불라 황금 사원(Golden Temple of Dambulla)은 성소 5군데와 함께 약 2,200년 간 내려온 신성한 성지 순례 유적지이다. 이 황금 사원은 스리랑카에 있는 석굴 사원 가운데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황금 사원 안에서도 넓이 2,100㎡에 이르는 불교 벽화와 157개의 불상과 신상이 특히 유명하다. 담불라 유적군은 스리랑카와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종교의 예술성과 표현성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발굴된 석굴, 벽화, 불상과 신상 등은 크기나 보존 상태로 볼 때 상당히 독특하다. 사원에는 스리랑카 캔디(Kandy) 학파의 18세기 예술의 중요한 걸작들이 있다. 기원전 3세기에 만든 불교 석굴 사원 중심지인 담불라는 오늘날까지도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석굴 사원이 있는 지역은 스리랑카 역사를 통틀어 동부와 서부 건조 지역(Dry Zones), 건조 지역과 중앙 산맥을 이어 주는 교통의 요지에 있다. 석굴 사원은 스리랑카 섬의 지질학 역사 연구에...

  • 스리랑카 남서부에 있는 신하라자 삼림 보존 지역(Sinharaja Forest Reserve)은 이 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원시 열대우림(tropical rainforest) 지대이다. 60% 이상의 수종이 고유종이며, 그중 다수가 희귀종인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특히 조류를 포함하여 고유종 야생생물이 많이 서식하는데, 50%가 넘는 스리랑카의 포유류 및 나비 고유종, 다양한 곤충, 파충류, 희귀 양서류도 함께 발견된다. 신하라자 삼림 보존 지역은 스리랑카 남서부의 저지대 습지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은 1875년에 내려진 황무지령(Waste Lands Ordinance)에 따라 삼림 보존 지역으로 선언되었고 실론(Ceylon) 총독부가 이를 공고하였다. 한편, 나머지 지역은 20세기 초에 삼림 보존 예정지(proposed forest reserve)로 공고되었다. 기존의 삼림 보존 지역 및 예정지를 아우르는 신하라자 삼림 보존 지역은 1978년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으로 선언되었다....

  • ‘인도양의 쓰나미 관련 기록물(Indian Ocean Tsunami Archives)’은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쓰나미의 발생, 재난 대응, 그리고 가장 많은 부분을 복구와 재건에 할애하여 기록한 하나의 기록물 세트이다. 2004년 12월 26일에 발생한 쓰나미는 높이 30m가 넘는 파도를 일으켜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 인도, 말레이시아,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 그 밖의 12개국에 걸친 광범한 지역을 강타하고 파괴했다. 사상자의 수는 31만 명이 넘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으며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여 엄청난 슬픔을 겪었다. 이 재난으로 인해서 인도양 연안의 여러 국가들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기록물은 여러 국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작성한 기관에 보관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국가기록관과 아체(Aceh) 주 기록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기록만 해도 9.311 LM의 문서 자료, 500장의 사진, 196

  •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는 ‘깨달음의 나무(tree of enlightenment)’인 보리수 주변에 건설되었다. 이 보리수의 가지는 아소카(Asoka) 왕의 딸이며 비군지의 계율을 만든 상가미타(Sanghamitta)가 기원전 3세기에 가져왔다고 한다.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는 1,300년 간 실론(Ceylon, 지금의 스리랑카)의 정치적·종교적 수도였으나, 993년 타밀족(Tamil)의 침략을 받아 쇠퇴했다.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이 유적은 궁전, 수도원, 그리고 다른 유적들과 함께 한동안 정글 숲에 묻혀 있었으나 지금은 다시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누라다푸라를 보면 신할리즈(Sinhalese) 문명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아누라다푸라 지방은 인도 남부의 타밀, 판디아 왕국(Pandyas), 촐라 제국(Cholas) 등의 침략을 받았으나, 스리랑카 문명이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신성 도시는 수세기 동안 주변의 건축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 시기리야(Sigiriya) 고대 도시는 아버지를 살해한 왕 카사파 1세(Kassapa I, 477~495)에 의해 세워졌던 수도의 폐허이다. 이 유적은 가파른 경사면과 사방을 에워싼 정글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높이 370m의 ‘사자 바위(Lion's Rock)’ 화강암 봉우리 정상에 있다. 벽돌과 석회 반죽으로 지어진 일련의 방들과 계단들은 거대한 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듯한 형상이며, 이 방들과 계단들을 통해 유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기리야 고대 도시는 카사파 1세의 치세 동안 실론(Ceylon) 문명을 보여 주는 유일한 예이다. ‘사자 산(Lion Mountain)’이라 불리는 이 유적을 동경한 열렬한 추종자들은 6세기부터 이곳을 찾았다. 시기리야의 프레스코화들은 새로운 그림 양식의 새 장을 열었으며, 그 후 수세기 동안 이 양식은 지속되었다. 어떤 추종자들에 의해 바위에 새겨진 시들은 ‘시기리야의 낙서(Sigiri graffiti)’로 알려져 있으며, 스리랑카의 싱할라어(Sinhalese)로 쓰인 가장 오래된...

  • 캔디는 ‘센카다가라푸라(Senkadagalapura)’ 시로 널리 알려진 불교의 성지이다. 캔디 신성 도시(Sacred city of Kandy)는 싱할라(Sinhala) 왕조의 마지막 수도로서, 1815년에 영국이 스리랑카를 점령할 때까지 싱할라 왕조의 후원을 받아 2,500년 이상 디나할라(Dinahala) 문명을 꽃피웠다. 유명한 성지 순례 유적인 불치사(佛齒寺, Temple of the Tooth Relic, 석가모니의 진신 치아가 보관된 사원)가 이곳에 있다. 거대한 복합 단지인 캔디 신성 도시는 키르티 스리 라자시마(Keerti Sri Rajasimha) 시기에 재건축하였으며, 궁정과 불치사를 나란히 배치한 건축 공학 형태를 뚜렷이 보여 준다. 불치사, 궁정, 캔디 신성 도시는 인류가 창조한 위대한 종교 중 하나인 불교 전도 역사와 밀접하고도 명백한 연관이 있다. 캔디의 불치사는 칼링가(Kalinga, 인도의 오리사(Orissa) 주)에서 스리랑카로 건너온 석가 치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으며, 불교의 종교...

  • 993년에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가 파괴된 이후부터 건설된 폴로나루와 고대 도시는 스리랑카의 두 번째 수도였다. 폴로나루와 고대도시에는 촐라 왕조(Cholas)가 세운 브라만교의 기념물뿐 아니라, 12세기에 파라크라마바후 1세(Parakramabahu I)가 만든 전원도시(garden-city)의 놀라운 기념물 폐허가 남아 있다. 폴로나루와 고대 도시는 몇 개의 문명에 대해 말해 주고 있는데, 특히 브라만교를 신봉한 정복 세력 촐라 왕조의 문명과 12세기와 13세기 동안 독립을 유지했던 신할리즈족(Sinhalese)의 문명을 찾아볼 수 있다. 12세기에 과대 망상적인 군주 파라크라마바후 1세가 건설한 이 어마어마한 수도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도시 건설 중 하나이다. 이는 그 특별한 규모 때문이기도 하고 건물과 자연환경의 매우 특수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폴로나루와 고대 도시는 불교와 신할리즈족 역사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부처의 치아는 신할리즈족...

  • 스리랑카의 항구 도시 갈(Galle)은 16세기에 포르투갈 인들이 건설하였다. 영국인들이 도착하기 전인 18세기에 최고로 번성하였으며, 유럽인들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세운 요새 도시의 가장 좋은 사례이다. 옛 시가지와 요새는 유럽 건축 양식과 남아시아 전통이 교류하였다는 증거를 뚜렷이 보여 준다. 갈은 16~18세기에 유럽 건축 양식과 남아시아 전통이 교류하였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유럽 모델을 스리랑카의 지정학, 기후학, 역사적·문화적 조건에 맞추어 응용하였다는 점이다. 화강암과 함께 종종 산호를 성벽 구조에 활용하였다. 지면을 배치할 때에 길이, 넓이, 높이의 모든 수치는 지역 단위를 사용하였다. 넓은 길에는 잔디를 심었으며, 주택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수리야스(suriyas, miro tree)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주택에는 정원과 탁 트인 베란다가 딸려 있다. 베란다는 기둥이 받쳐 주고 있는데, 이 기둥은 유럽에만...

  • ‘루카다 나트야(Rūkada Nātya)’는 전통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가벼운 여흥 또는 도덕 교훈을 전달할 목적으로 연행했던 줄 인형극의 한 유형이다. 루카다 나트야는 남해안 해안가의 암발랑고다(Ambalangoda), 발라피티야(Balapitiya), 미리사(Mirissa) 마을에 사는 가뫄리(Gamwari) 가문 사람이나 이 가문과 관계된 가계에서 연행한다. 인형극의 주제는 민담, 불교 이야기, 고대문학, 역사, 현대 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일화, 또는 이미 사라진 민속 오페라인 ‘나다감(nadagam)’ 등이다. 인형 조종술사는 직접 나무로 인형을 만들고 대화 형태의 대본과 노래를 손수 준비하여 인형을 조종하면서 대본을 외워 연기한다. 줄 인형극이 연행될 때는 소규모 밴드가 음악을 연주한다. 공연은 공동체를 위한 행사이다. 인형극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공동체의 평화로운 공존에 꼭 필요한 세계관이나 핵심적 가치를 어린이들조차도 이해하기 쉽도록 재미있게

  • ‘둠바라 라타 칼라라(Dumbara Ratā Kalāla)’의 전통 공예는 하나(Hana, 용설란)의 식물 섬유를 이용하여 문화적 의미를 지닌 모티프와 디자인으로 꾸민 벽걸이 장식품, 태피스트리, 쿠션 커버용 매트를 제작하는 전통과 관련이 있다. 하나의 식물 섬유는 본래 이 지역에서 전통적 섬유로 이용하던 식물인 니얀다(Niyanda, 산세베리아 젤라니카(Sansevieria zeylanica))가 20세기 초에 희귀해지자 이를 대체하여 이용하게 된 것이다. 날카로운 나무 막대로 자른 잎사귀를 통나무에 대고 눌러서 다육 부분을 긁어내면 섬유가 분리되는데, 이 섬유들을 씻어서 햇볕에 말린다. 말린 섬유는 아이보리-화이트 색인데 이것을 빗질하여 타래로 묶는다. 날실은 나무 방추를 사용하여 잣는다. 실 잣는 사람은 왼쪽 어깨에 섬유 다발을 걸쳐 올려 섬유 다발을 가슴 주위로 늘어뜨리고, 그 다발에서 섬유 가닥을 당기면서 돌려서 감아 실을 잣는다. 잣지 않은 섬유 가닥은 씨실로

  •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 기록 중 하나인 '마하밤사(Mahavamsa)'는 이런 종류의 기록들 가운데서 남아시아의 것으로는 최초이며, 기원전 6세기부터 연대기 순으로 스리랑카의 역사를 서술한 성숙한 역사학적 전통이 개시됨을 보여준다. 문서 내용들의 진정성은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실시된 고고학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부처님의 일생, 아소카 황제, 불교가 세계종교로 부상하는 것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남아시아의 중요한 사료이다. 이 기록물은 동남아시아의 불교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인도 역사에서 아소카 황제의 정체성 확립에 상당히 기여했다. 여러 나라에 마하밤사 사본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 글이 여러 동남아시아 및 유럽 언어로 음역 및 번역된 된 사실은 이 기록물의 엄청난 역사적 · 문화적 · 문자적 · 언어적 · 학문적 가치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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