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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왕 창왕이 정말 신씨의 자식인가요
고구려의후예 조회수 10,233 작성일2014.07.17

우왕 창왕이 왕씨가 아닌 신씨라는 논란이 일고있어요.

창왕을 옹립하였던 온건파세력들이 대거 무너진것만 봐도

창왕은 신돈의 자식이라는 음해였는데 이게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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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n****
물신
한국사 26위, 사회, 도덕 84위, 전통 예절, 의식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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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이 우왕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여 궁안에 들이고  '강녕부원대군'에 봉하여 자신의 후사로 인정한 것은 맞지만, 정황상 의심스러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왕의 아명은 모니노로, 신돈의 가노였던 반야의 아들입니다.

 

공민왕은 신돈을 처형하고 난 이후 당시 9세였던 모니노를 궁안으로 데려와 어머니 명덕태후에게 자신에게 아들이 있음을 고하였는데요, 노국공주가 죽고 난뒤 공민왕이 후비를 가까이 하지 않는 바람에 노심초사하던 명덕태후는 의외로 몹시 못마땅해합니다.

 하지만, 공민왕은 모니노에게 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강녕부원대군에 봉하였고,

공민왕이 죽고 난 뒤 우는 이인임의 주도로 즉위하였습니다.

 

이인임은 자신의 질녀 이씨를 우왕에게 시집보내었고, 이씨가 창을 낳았으니,  창왕이 됩니다.

 

사실,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는 기록은 조선초기에 쓰여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기록인데요,

워낙에 조선의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악의적 왜곡이 많은 책이라, 액면 그대로 믿긴 힘드나,

의문점은 많습니다.

 

왜 자식이 귀했던 공민왕은 수명의 후비를 뽑아들이면서도 모니노의 존재를 숨겼을까요?

이인임과 명덕태후는 우왕의 생모가 공민왕의 후비인 한씨라고 주장하였고,  이에 저항하던 반야를 임진강에 던져 죽여버렸습니다.

게다가 북원에 있던 심양왕 탈탈불화는 우왕을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고려왕의 지위를 노려, 고려측에선 두번이나 사신을 보내 이 사안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습니다.

 

우왕이 누구의 자식이든, 당시 우왕이  정말로 공민왕의 아들이냐 아니냐를 놓고 시끄러웠던 것은 사실인듯 하지만, 사실 오늘날도 친자확인은 DNA테스트를 통하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니...

누구도 맞다 아니다를 단언할 수 없습니다.

 

공민왕은 살아생전 모니노를 궁안에 데려오면서

신돈의 집에 아이를 잘 낳을 듯 한 여자가 있어 여러차례 찾아 모니노를 낳았다...라 주장했지만,

 남겨진 기록은 승자들의 왜곡된 시각에서 남긴 기록뿐이니,

 

공민왕도 신돈도 반야도 우왕을 공민왕의 자식이라 주장했으니, 그리 믿어야지요.

사실 우왕이 공민왕의 자식이 아니다,,,란 주장의 기록들은

증명된 사실들보다는 '카더라'통신에 의존한 것들뿐이니까요.

 

고려사, 고려사절요 기록에는

단순히 신돈의 아들이다...라는 설을 넘어선 소문을 하나 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모니노는 공민왕의 자식도, 신돈의 자식도 아닌 주워온 아이라는 거죠.

신돈은 비첩 반야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 모니노란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승려라는 신분적, 도덕적 제약때문에 반승 능우의 어머니에게 보내어 아이를 키우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죽어버립니다.

능우의 어미는 두려워 이를 말하지 못하고, 다른 집의 아이를 훔쳐 온 뒤 아이가 병이있어 성밖에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결국 반야가 아이를 다시 만났을땐 오랜 시간이 흘러 이미 자라버린 아이가 제자식이 아닌지도 모르고 키웠다는 거지요.

신돈은 아이를 아껴 공민왕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아들인데, 능히 왕의 양자로 들일만하다하였고,

공민왕도 기꺼워하다, 신돈을 죽인 뒤 그 아이를 몰래 양자로 데려왔다는 소문을 수록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읽기에도 참 황당한 음훼성 기록입니다. ^^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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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o9****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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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의 자식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공민왕이 신돈과 자신의 부인과 잠자리를하게했다는얘기가있어요
또 공민왕은 관음증?환자라 그걸 지켜보는걸 즐겼데요
왕비와잠자리를한 사람은 신돈뿐이 아닌걸로알고있습니다 그니까 우왕창왕은 아버지가..누군진 몰라도 적어도 공민왕자식은아니니까 고려 왕실의 대가 끊긴거구요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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