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유 루터 생명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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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자유 루터 생명의 말

  • 저자
    마르틴 루터
  • 번역
    추인해
  • 출판
    동서문화사
  • 발행
    2010.05.01.
책 소개
『그리스도인의 자유 루터 생명의 말』에는 그의 3대 종교개혁 문서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그리스도계의 개선에 대해서 독일 국민의 그리스도교 귀족에게 말한다'의 두 가지가 실려 있으며, 로 묶인 것은 그의 발언 및 기타 문서, 성경에 대한 강의록들이다. 이의 기록들을 통해 독자들은 마틴 루터가 제안한 종교개혁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인간이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 은총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책 정보

책 정보

  • 카테고리
    교양인문
  • 쪽수/무게/크기
    8671204g152*224*40mm
  • ISBN
    9788949706610

책 소개

『그리스도인의 자유 루터 생명의 말』에는 그의 3대 종교개혁 문서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그리스도계의 개선에 대해서 독일 국민의 그리스도교 귀족에게 말한다'의 두 가지가 실려 있으며, 로 묶인 것은 그의 발언 및 기타 문서, 성경에 대한 강의록들이다. 이의 기록들을 통해 독자들은 마틴 루터가 제안한 종교개혁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인간이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 은총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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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그리스도만이 영원하리라
루터가 아우크스부르크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루터여, 영원하라”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루터는 “아니, 그리스도만이 영원하리라”라고 대답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리였던 사랑과 믿음이 변질되고 그 실행을 위한 계율이 되레 악행을 위한 도구가 되자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이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독일 종교개혁의 진두에 섰던 마틴 루터이다.
사실 루터는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사실을 발견하거나 탁월하고 새로운 지식을 쌓아올린 것은 아니다. 또한 저서에 있어서도 ‘《신곡》은 단테 자신이고, 《파우스트》는 엄밀한 의미에서 괴테의 전인격’이듯이 ‘이것이 바로 루터이다’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굳이 그의 역작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그 정신의 깊이와 풍요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업적은 바로 성서의 번역일 것이다. 루터라는 인물을 제대로 알려면 그의 언동을 비롯해 그가 남긴 문서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 사람의 종교개혁자로서 발언하고 저작하며, 행동하고 존재했던 자가 바로 마틴 루터였던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기초를 세운 개혁자
1505년 수도사가 되어 종교의 길에 입문한 루터는 끊임없는 공부와 강의 등을 통해 점차 자신의 종교사상을 완성시켜 갔다. 성경 자체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하느님에 대한 투철한 견해를 세우게 되고, 하느님과 대조되는 인간의 존재 이유, 인간의 모습이나 그의 활동 의의가 분명히 형성된 것이다. 그는 성경과 달리 사치와 허영에 찌들어 있는 로마 교황청을 보며 사회의 문제를 깨닫는다. 그러던 차에 교황청이 면죄부를 판매하여 일반 민중의 쌈짓돈을 긁어모았다.
이에 대해 심사숙고한 루터가 발표한 것이 바로 ‘95개조의 논제’이다. 그는 여기서 죄의 용서는 하느님의 의사에 의한 것이고, 교회법이나 면죄부에 의한 것이 아님을 반복하고 있다. 교회법과 교의를 논하고, 신도의 생활태도를 바르게 하자고 가르치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교회의 미움을 사 파문되기에 이르지만 그는 굽히지 않고 오히려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루터가 성경의 독일어 번역에 힘쓰는 동안 농민전쟁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벌인 전쟁이었다. 그들은 하느님이 내려준 권리에 의거하여 가톨릭교회에 대한 십일조 세를 거부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권리를 찾기 위한 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루터는 농민의 편을 들다가 농민전쟁이 폭동으로 바뀌자 그들의 박해자가 되었다. 이는 그의 생애에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 자기 스스로도 농민 대학살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책하였다.

청렴한 종교인이 설파한 영혼의 고백
이 책에는 그의 3대 종교개혁 문서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그리스도계의 개선에 대해서 독일 국민의 그리스도교 귀족에게 말한다》의 두 가지가 실려 있으며, 로 묶인 것은 그의 발언 및 기타 문서, 성경에 대한 강의록들이다. 이의 기록들을 통해 독자들은 마틴 루터가 제안한 종교개혁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인간이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 은총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왕족이나 귀족, 장군이나 정치가가 아닌 일개 수도자가 끼친 영향은 세계사의 조류 속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의 종교적 활동은 문화적ㆍ정치적ㆍ사회경제적인 면에도 거대한 파급효과를 불러왔으나, 중심에는 종교개혁에 대한 숭고한 의지가 담겨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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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그리스도인의 자유
예수…12

루터 생명의 말
머리말…47
1월…49
2월…111
3월…167
4월…231
5월…291
6월…353
7월…409
8월…463
9월…519
10월…573
11월…631
12월…687

수난…745
부활절…767
성령강림절…783
대강절?성탄절…797

루터의 생애 사상 저작…825
루터 연보…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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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글작가
종교개혁자이자 개신교 신학의 아버지인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만스펠트와 아이제나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교에 입학하여 1502년과 1505년에 각각 문학사와 문학석사 학위를 받는다. 출세를 열망하던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대 박사 과정에 진학하지만, 슈토테른하임에서 만난 뇌우 아래서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한다. 곧바로 학업을 중단하고 2주 만에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입회하여, 1507년 사제로 안수받게 된다. 1512년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로 성서학을 가르치며 발견한 ‘칭의’의 진리는 그로 하여금 종교개혁자의 길을 걷게 만든다.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당 정문에 내건 ‘95개조 논제’는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동시에 중세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 된다. 교황의 파문과 보름스 제국의회에서의 추방령(1521년), 농민전쟁(1525년), 수녀원에서 탈출한 카타리나 폰 보라와의 결혼(1525년) 등 1546년 2월 14일 63세의 나이로 고향 아이스레벤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논쟁과 굴곡의 시기를 거치지만,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목회자이자 말씀에 사로잡힌 신학자로서 개신교 신학의 대문을 열게 된다.독일어 성경번역을 통해 성경의 대중화를 이끌어 표준 독일어 형성에도 공헌한 루터는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교육, 문화, 사회복지, 법, 정치를 아우르는 종교개혁의 이론적 토대와 방향을 제시한다. ‘루터의 3대 논문’으로 꼽히는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교회의 바벨론 포로』『기독교인의 자유』(이상 1520년)가 종교개혁적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저술로 꼽히지만, 루터는 자신이 집필한 3천여 권의 책 가운데 『노예의지론』(1525년), 『대교리문답』『소교리문답』(이상 1529년)만을 수작으로 추천한다. 그중 『대교리문답』은 개신교 최초의 교리문답서이자 개신교적 성경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 각 교파 교리문답서의 지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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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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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이자 개신교 신학의 아버지인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만스펠트와 아이제나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교에 입학하여 1502년과 1505년에 각각 문학사와 문학석사 학위를 받는다. 출세를 열망하던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대 박사 과정에 진학하지만, 슈토테른하임에서 만난 뇌우 아래서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한다. 곧바로 학업을 중단하고 2주 만에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입회하여, 1507년 사제로 안수받게 된다. 1512년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로 성서학을 가르치며 발견한 ‘칭의’의 진리는 그로 하여금 종교개혁자의 길을 걷게 만든다.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당 정문에 내건 ‘95개조 논제’는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동시에 중세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 된다. 교황의 파문과 보름스 제국의회에서의 추방령(1521년), 농민전쟁(1525년), 수녀원에서 탈출한 카타리나 폰 보라와의 결혼(1525년) 등 1546년 2월 14일 63세의 나이로 고향 아이스레벤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논쟁과 굴곡의 시기를 거치지만,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목회자이자 말씀에 사로잡힌 신학자로서 개신교 신학의 대문을 열게 된다.독일어 성경번역을 통해 성경의 대중화를 이끌어 표준 독일어 형성에도 공헌한 루터는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교육, 문화, 사회복지, 법, 정치를 아우르는 종교개혁의 이론적 토대와 방향을 제시한다. ‘루터의 3대 논문’으로 꼽히는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교회의 바벨론 포로』『기독교인의 자유』(이상 1520년)가 종교개혁적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저술로 꼽히지만, 루터는 자신이 집필한 3천여 권의 책 가운데 『노예의지론』(1525년), 『대교리문답』『소교리문답』(이상 1529년)만을 수작으로 추천한다. 그중 『대교리문답』은 개신교 최초의 교리문답서이자 개신교적 성경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 각 교파 교리문답서의 지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