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공주집 막내'가 낳은 '장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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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사전]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르게 태어났을 뿐 우열은 없다

[오마이뉴스 임지윤 기자]

"여자는? 잘 주는 애들로."

참 부끄럽다. 남자라서 면목이 안 선다. 필자 또한 이런 표현에 물들어 있었기에 더 고개를 떨군다. 이 말을 한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는 '잘 노는 애들'을 잘못 입력한 것이라며 손사래 쳤다. 하지만 눈치 빠른 대중은 안다. 이들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에 '성'(性)과 '돈'이 내포돼 있다는 것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다시 부끄럽다. 남자로 태어나 다행이라고 치부하기엔 여자들이 짊어져야 하는 굴레가 너무 크다. 장손으로 집안 사랑을 독차지한 내가, 7공주집 막내딸 박열이씨의 아들이란 점은 아이러니다. 아들이 태어나길 바라는 집안 어른과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뒤로한 채 태어난 어머니의 삶은 탄생 순간 희망 대신 절망을 다시 잉태했다. 우리는 모른다. 사랑받는 나를 있게 해준 어머니들이 져야 했던 태생적 멍에를.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고발했던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의 열악한 풍조는 소설가 김유정의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낙비>에 잘 드러난다. 흉작과 빚쟁이의 위협에 야반도주한 남편 춘호는 노름판에 뛰어든다. 밑천 2원이 필요해진 춘호는 아내를 때리며 돈을 구해오라고 내쫓는다. 마을 부자 이주사에게 몸을 맡기고 노름돈 2원을 얻어온 춘호 처의 삶에서 폭력이란 권력에 자신의 정체성을 팔던 '여인'의 처절함이 묻어난다.

춘호는 아내를 매춘으로 내몬 '어금니 아빠'의 83년 전 복선(伏線)과도 같다. 지난해 터진 사회 각 분야 미투는 물론 버닝썬, 고 장자연, 김학의 사건 속 대한민국 여인들의 자화상이 '소낙비' 속 춘호 아내의 이미지와 겹친다. 
   
▲ 정준영-승리, 시간차 경찰 출석 가수 정준영과 승리가 14일 오전과 오후 각각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와 '성접대 의혹'과 관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 이정민

역사적으로 여성이 처음부터 약자는 아니었다. 신석기 농사 문명의 발원지 가운데 하나인 터키 차탈회위크에서 출토된 비너스 상의 풍만한 몸은 '섹슈얼리티'와 거리가 멀다.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지모신(地母神)의 '건강'을 담았다. 울산 신암리에서 대서양 연안 프랑스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금속이라는 생산수단의 등장으로 빚어진 계급사회 국가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종속물로 곤두박질친다. 프랑스 여성해방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 <제2의 성>(Le deuxieme Sexe)에서 이런 종속적 삶을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으로 규정한다. 7공주 집 막내딸인 나의 어머니는 태어나는 순간 '인간'의 존귀함이 아닌 '여성'의 속박과 차별 속에 내던져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르게 태어났을 뿐 우열은 없다. 남성이 누려왔던 장손 같은 알량한 기득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두자. 그래야만 여성이 겪는 '7공주 집 막내딸'의 아픔이 진정으로 가슴에 들어온다. 페미니즘의 여성 인권운동을 여·남의 갈등이 아닌 '성 평등' 속의 조화로 승화하자는 결기 속에 보부아르의 지적을 되새긴다. 

주어진 현실 세계를 자유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이 숭고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녀가 그 자연의 구별을 초월해서 분명히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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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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