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비슷한 시기에 안토시아닌의 왕, ‘킹스베리’라는 별칭의 아로니아가 떠올랐다. 2010년 전후로 새로운 소득작물이자 대체작물로 아로니아 열풍을 부추겼다. 방송사마다 아로니아를 소개했고 식품학계는 논문으로 아로니아떡, 아로니아막걸리 등에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며 과학으로(!) 증명하기에 바빴다. 불로장생의 꿈을 실현시켜줄 과일에 사람들은 매혹당했다. 마땅한 대체작물을 찾지 못한 농민들도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들었다. 농업 기관에서도 아로니아가 괜찮은 소득작물이 될 것이라 검증해주었다. 정부가 하라는 것만 안 하면 된다는 농촌의 오랜 지혜를 거스르고 아로니아 농사에 뛰어든 것이다. 귀농인들도 큰 기술이 필요 없고 소득작물이라며 귀농교육 기관에서 권유를 받았다. 묘목도 지원해주고 수매도 해주겠다 하고, 무엇보다 고소득 작물이라는데 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단양군 같은 곳에선 군수까지 나서서 아로니아 권작을 하고 전용 가공센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아로니아 생과는 시고 떫고 쓰다. 몇 년 전 충남의 아로니아를 비롯해 구스베리니 커런트니 입에도 잘 안 붙는 베리 농사를 짓는 농가에 취재를 갔다가 아로니아 몇 개를 집어먹었다. 웬만하면 농민들 앞에서 아무거나 다 먹지만 아로니아만은 뱉어냈다. 블루베리와는 달리 생과로는 섭취가 애초에 불가능해서 가루나 즙을 내어 2차 가공을 해야 하는 작물이다. 아로니아 농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던 꿈은 원대했다. 아로니아즙, 식초, 술을 담가 팔고 천연비누나 식품에 첨가해 부가가치를 올린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근래에 연락을 해보니 “진즉에 접었지유”라고 한다. 제대로 팔아본 적도 없고 유럽 베리 산업의 중심지인 폴란드산 아로니아가 홈쇼핑을 통해 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정부의 FTA 피해 품목이 아니란 말만 믿었건만 당연히 가공품 형태의 아로니아 시장은 손쉽게 열려버렸다.
그나마 이 농가는 빨리 집어치워 품값이라도 아낀 것에 위안을 삼고 있었다. 지금 전국의 아로니아 농가들은 키워놓은 나무를 뽑느라 포클레인 공임비마저 날리고 있다. 아로니아 메카로 만들겠다던 단양의 아로니아 가공센터는 지역 갈등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로니아 농사를 부추긴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매번 속으면서도 아로니아 헛소동에 휘말려 폐원 비용이라도 보장하라는 농가의 요청에는 구걸하지 말라며 서늘한 댓글들이 달린다. 아로니아의 검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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